13년 8월 3일.
엄마가 사준 데님쇼츠와 좋아하는 라코스테 셔츠를 입고 지금의 '혜곰이'를 만났다.
대구에서 온 그녀는 서울의 지하철과 택시를 타고 어색한 나와의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인사동이 궁금하다고 했다.
대구의 아이는 쌈지길에 흡족해하는 듯했다.
나도 만족스러웠다.
짐숭1과는 오래도록 알아왔지만 그의 핏줄은 어색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 어색이 그렇게 오래까지 갈 줄 모르고..
인사동 커피빈, 그래 거기..
아빠의 소식에 짐숭은 빠르게 동생을 서울역에 내려주고 우린 집으로 향해 내려갈 방도를 마련했다.
그게 시작이다.
언니와 언니친구가 사는 서울에 놀러 한번 왔을 뿐인데 하필이면 내 진단결과, 섬유선종이 재발하여 수술을 해야 하는 마당에 부고 소식까지 겹쳐버린 게.
서로에게 강렬한 트라우마만 남기고 암묵적으로 발설하지 않는 룰이 생겼다.
따질 것 없이 그 아이의 잘못도 책임도 말할 것 없이 모두 아닌데 난 겁이 났다.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터..
시간이 지나 텍스트로 먼저 친해졌다.
언제까지 그날의 사건으로 죄 없는 아이를 그리고 나를 그 거리에 묶어둘 수 없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 아이가 오는 날은 8월의 토요일도 아니고 정해진 내 수술도 없고 엄마의 안전과 안정도 미리 확인해 놨다.
어색한 우리는 당시의 사라진 쌈지길처럼 어색함도 사라지길 무던한 노력을 했다.
그리고 코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수가 제한적이고 갈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으며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기저질환자는 닌텐도로 한 달을 갇혀 살면서
'내 나이가 어때섬'의 그녀와 내통하며 친목을 다졌다.
이럴 바에 만나자.
트라우마는 깨지라고 있는 거지 이제 우리도 친해질 때가 되었다.
그 아이가 오기 전 좋아할 만한 웰컴 선물을 준비해 놓고 인사동을 제외한 핫플은 모두 데리고 다녔다.
빵이며 커피며, 찻집, 백화점 원하면 어디든 함께했다.
이제 사계절을 모두 한번 이상 만나고 나니 아이도 나도 애착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아이는 내심 그날의 선택이 자신의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속으로 앓았고 나 역시 말로 꺼내지 못했던 그날의 징크스는 좋은 걸로 다시 덮어씌우기로 맘먹었다.
망할 놈의 긴 역병은 시간을 송두리째 가져가버렸지만 나는 그 아이를 얻었다.
곰이 되고 싶다기에 별명을 지어줬다.
'혜곰'
단 둘이 기차역에 배웅을 갈 정도의 친목이면 우린 물밑에서 어마어마한 발짓을 해댔던 거다.
함께 있었던 이유로 멀어져 버리고 말았던, 그리고 큰 결심으로 좋은 덮어씌우기로 마침내 여기까지 오고야 만 우리, 참 대견하다 해주자.
아빠 이야길 쓰면서 너를 꼭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숙제 같은 가시나..
혜곰아, 이제 숙제는 끝났다.
우리 너 좋아하는 더 현대 놀러 가자-
테일러커피 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