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요!

by vakejun


1학년 1반, 1반이 전부다.

중학교를 가서 알았는데.. 무려 6반까지 있더라.

다른 학교는 더 많았지만 사립이었던 내 중학교는 그랬다.

초등학교는 6학년까지 1반이 전부였다.



드디어 피노키오 가방을 메고 학교에 입학을 했다.

가방은 늘 교과서로 무거웠다.

내 키가 더 크지 않은 건 책가방의 무게 때문이라고 엄마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모든 게 다 아는 것이었지만 시시해도 재미있었다.

모름지기 우등생의 삶이란 어린아이에게 과시욕을 드러내기 좋은 방도였다.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엄마는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절대 엄마와 선생님 앞에선 거짓말을 해서는 안돼!

나는 우등생이니까 철석같이 믿고 따른다.


담임선생님은 아빠 다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집에 가서 떠들었다.

아빠는 느끼셨을까.. 묘한 상실감?


담임선생님은 한없이 친절했고 아이들을 능숙하게 다뤘으며 항상 웃는 얼굴의 어른이었다.

수업 중엔 질문을 곧잘 하신다. 참여수업 같은 거지.

몇 안 되는 아이들은 "이거 대답해 볼 사람?"에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한다.


"저요!"

친절한 금자 씨의 "저 여깄 어요-"보다 신성하고 확신에 찬 대답을 드렸다.

내 이름을 호명하면 고개 숙인 아이들이 얼굴을 들고 대답을 듣는다.

잘 봐라, 이게 정답이다. 내 대답은 틀린 적이 없다.

당연하지. 난 늘 이 순간만 기다리거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100점짜리 시험지와 모든 시험들의 금상을 타고나면 주는 국화장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엄마의 달콤한 "고맙습니다"가 벌써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보통 이 단어가 나오면 약간의 문제가 생기고 만다.

그날 역시 기세등등하게 난 손을 들었다.

시선을 피하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럴 리가?! 지금 내가 안 보인단 말인가!!

더 이상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자 다른 아이의 이름을 콕 집어 질문의 대답을 하라신다.

처음 겪는 일이다. 그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이건 단순히 내가 투명인간이 되서가 아니라 계획된 거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일러바쳤다.

엄마, 선생님이 내가 손을 들었는데도 날 안 부르고 다른 애만 불렀어!! 엄마는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다른 애한테도 기회를 주시는 거야. 넌 다 아니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고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기회'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말고 다른 애, 그게 포인트다.

이제 나도 더 이상 선생님을 아는 척하지 않기로 한다.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다음으로 좋아한다는 거 취소야! 아빠는 무슨 심정이었을까.. 웃었던 거 같은데..


수업에 열중하지 않았고 질문에 손을 들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풀기도 우스운 시험지를 다 끝내고 돌아다니는 나에게 슬리퍼 소리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옆에 앉은 짝꿍이 질문의 대답을 하자 꼴 보기가 싫었다.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자리에 앉으려는 아이의 의자를 뒤로 빼버렸다. 또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오만방자함과 소심한 복수가 들키자 분에 차고 부끄럽고 악다구니가 바쳐 울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아냈다.


담임선생님은 남의 속도 모르는 바보천치였다.

다 안다더니 내 맘 하나 모르는데 엄마도 선생님도 다 거짓말쟁이임을 눈치채버리는 순간이었다.


잘했다고 칭찬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넌 됐고 다른 사람?이라는 비뚤어진 감정이 어린 내겐 줬다 뺐는 감정이랑 비슷했다.


전교생이 모인 아침 조회시간,

담임선생님은 조심히 다가와 한쪽손을 입가에 포개어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아, 이름을 부르면 '네'하고 큰소리로 대답하고 앞으로 나가."상냥하고 친절하다.

이런 맘 여린 스승님께 난 무슨 해코지를 했던 걸까..

스스로 반성하는 8살이었다.



어린아이는 세월 지나 '어른'이라는 책가방보다 더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선생님, 시골에서의 100점짜리 아이는 시내에서 그만 기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날고 기는 특출 난 인재들 사이에 저 같은 아이들이 한 반에 45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잘하는 걸 티 내면 잘난 체한다 하고, 조용히 잠자코 있으니 숙맥인 줄 아는 뭐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집단이었어요. 안다고 설치는 저 잠재워주신 거 감사합니다. 하도 잘 비꼬는지라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다시 말하지만 정말 감사하는 거예요.

도시는 살벌했습니다.

전교 부회장이나 했던 제가 거기에선 1등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들 학원을 다니더라구요. 덕분에 '오기'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님 이후, 좋은 은사님은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첫인상이 오래 남습니다. 아이돌 본명과 똑같아 존함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선생님께서도 필시 저 같은 학생들을 위해 부러 지어진 이름이 아닐까 하고 괜스레 연관 지어 봅니다.


꾸짖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참스승님이셨어요.


제자 올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