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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제 노래가 맞습니다

by vakejun



귀가 예민한 편이다.

주변에선 말하겠지. 도대체 네 어느 부분 예민하지 않은 곳이 있겠냐고.


맞다.

하지만 특출 나게 예민하다고 우겨본다. 진짜다.

음악에 의존하는 비중이 상당한데 일을 하거나 외출준비를 하거나 이동을 하거나 혼자일 땐 무조건 음악을 듣는다.


한창 회사라는 조직에서 '일'이라는 것을 할 땐 이어폰을 한쪽만 꽂고 좋아하는 음악 하나에만 기대어 매진했다. 나름 고퀄의 디자인을 뽑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어느 매체에서 맑은 눈의 여성이 에어팟을 꽂고 '회사에서 이러지 맙시다 젊은이여'가 메시지인 것 같지만, 웃기게도 라떼는 그게 가능했다.

디자이너에게는 전지전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업할 땐 건드리면 'X 된다'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래, 그땐 참 편했다. 굳이 라디오를 켜는 실장과 영업맨이 있었지만 난 내 볼륨만 높이면 그만이었다.


당시에 참 희귀하고 내게 선택받은 노래들이 많았는데 노래 한곡을 찾기 위해 애쓰는 시간은 거의 두세 시간 평균을 웃돌았다. 그래서 지금 어떠냐고?

내 취향의 노래를 간파하는 능력치가 생겼지.


전주 5초. 내 노래이거나 아니거나.


주로 가사가 없는 시부야케이가 그러했고

가사가 있지만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밴드

그루브 있는 하우스 라운지

남들은 얘기해도 모르는 아티스트가 그러했다.

뭐 결국엔 대중적인 어덜트팝에 안착해 노래방에서 신나게 불러재끼는 흥 많은 민족이 되었지만..


지금은 닳고 닳은 노랠 지우지도 못하고 새로운 노래가 나오지도 못하는 그 프로듀서의 곡을 듣고 또 듣는다.

스타벅스에 닉네임이란 것이 도입됐을 시 난 망설이지 않고 그 님의 닉을 따왔다.

아무도 그 닉의 정체를 모른다. 간혹 나 같은 마니아층은 알아도 너무 잘 알아서 흠이지만.

참고로 누구인진 말 않겠다. 공유하고 싶은 맘이 없으므로 이해해 주길.


하나만 털어볼까?

대학 때였다.

'Dido'의 'Thank you'에 꽂히고 말았다.

아.. 내가 그때 어리석게 너란 인간에게 열변을 토하며 이 노래의 진가를 설명하는 게 아니었는데..

'Eminem'이 피처링을 했고 'Stan'이란 곡 또한 알고 있느냐, 난 그래서 이 좋아 마다하지 않는 이 신성한 곡을 내 컬러링으로 설정을 했다 이 말이다!

다음에 그 친구에게 전화할 일이 있어 걸게 되었다.

많이 듣던 노래..


- My tea's gone cold, I'm wondering why~


지금 말로 빡이 쳤다.

넌 주체도 없냐? 옷 입는 것, 머리 스타일, 말투까지 따라 하더니 이젠 별 걸..

어디 가서 또 자기가 원조인 척하느라 바쁘겠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궁금하겠지만, 있다.

그래서 손.절.했.다.

실로 웃긴 게 이런 사례가 회사를 다니면서도 있었던 게 가관이다. 다신 공유 안 한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거짓말'이 가장 큰 이유였고 대중없는 친구놀이에 자빠져 줄 나이가 지났을 때 관계를 접었다. 하나도 땡큐 하지 않은 마음으로 잘 가라고 했다.


원래 장르구별 없이 음악이라면 싸잡아놓고 다 듣고 보는 타입이었는데, 이게 나이를 타는 건지 시대를 타는 건지 모두인지..

어릴 땐 힙합에, 잡생각이 많은 시기엔 가사가 없는 멜로디 위주의 음악을 들었다면 일을 할 땐 거장의 음악을, 좋아하는 뮤지션의 한곡만을 무한재생했다.

linkinpark이 그랬다. 한 달 내내 2집 CD를 닳고 닳도록 들었다.

나중에 그의 비보를 들었을 땐, 내 플레이 리스트에 더 이상 그들의 음악이 없던 것과 찾지도 않았던 내가 슬퍼할 자격이나 있나라고 생각했다.


번외로 유일하게 듣는 몇 안 되는 한국 음악 중에 '자우림', '김윤아'님이 있는데 그룹명과는 다르게 나에겐 참으로 잔잔한 폭풍(?) 같은 음악이라 좋아한다. 언제 들어도 나를 위해주고야 마는 치유의 노래 비슷한..

'박효신'님의 '야생화' 또한 그랬다.

가사가 있는 음악을 싫어했던 이유는 내가 그걸 알고 해석하고 느끼고 하는 감정소모가 싫었다.

동감 시 되는 기분이 낯설고 동일시되는 기분 또한 특별하지 않아서 별로였다.

허세 쩐다.

'야생화'..

아 귓전을 때리는 가사에 울고 말았다.

나 위로받았네. 사람들이 말하는 그거 내가 느끼고 말았네.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그냥 났다. 근데 괜찮다고 해주는 것 같았다.

내 병도 쓰다듬어 줄 것만 같았다.

그 후로 편견 없이 음악을 듣는다. 좋은 계기가 되어 준 곡들이다.


여전히 새로운 곡을 찾아 5초 유목민 생활을 하고

아마 새로운 음악을 찾고 리스트에 보관하고 외출하기 전 재생하며 흥얼거릴 거다.

흥 많은 민족은 마침내 즐기는 민족이 되었다.

나의 애플 스테이션은 이제 편협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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