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멋지다 연진아!

by vakejun


중2. 1학기 말쯤, 난 은따를 당했다.


가만히 자세히 보면 그럴만한 애들이 당하지 않아?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그러했던가? 라고 자문해 본다.


아니, 나는 아주 영악하고 질 더러운 나쁜 계집아이의 계략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내일 아침엔 죽어서 학교에가질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소심하고 염세적인 아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혹한 운명이었다.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중1 때는 친하지 않았고 중2 때는 그 계집아이의 초등 단짝이 같은 반이 되면서 그 둘을 중심으로 아이들 하나둘이 붙기 시작하더니 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아이들이 12명.

그 아이를 필두로 모인 그룹은 한 명씩 돌아가며 은따를 당했다. 딱히 이유도 없었고 그럴싸한 명분도 없이 단순한 그 아이의 변심이나 재미가 이유라면 이유였다.

내 차례가 돌아왔다. 당할 게 못되었다. 음악시간 체육시간 같은 이동수업이나 짝이 있어야만 하는 수업시간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나보다 미리 당한? 아이에게 물었다. 너 참 기분 더러웠겠다고.. 그 아이가 말했다.

“쟤 초등학교 때도 그랬어..”

아, 난 보기 좋게 걸려든 희생양이자 먹잇감이었구나..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다음 타깃이 자기가 될까 봐 다들 몸을 사리기 바빴고 이미 그룹이 형성된 분위기에서 내가 낄 만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놓고 당하는 왕따의 무엇이 아니라 은근한 따돌림이란 그랬다.

내가 사라져 버리는 기분. 하지만 사라진 대도 모를 아무렇지 않은 사건이랄 것도 없는 일 딱 그 정도.

그 계집아이의 심사가 어디서 뒤틀려버린 건진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단순한 은따의 공포에 휘말려 2학년 1학기를 잡 쳤 다.


여름방학, 그나마의 숨이 트였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말할 곳도 없었던 내 은따 시절의 잠깐의 휴식이 끝나간다. 개학이 서서히 다가오자 목을 조이고 숨통을 조여 오는 기분에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개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 계집아이의 집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대뜸 말했다. 우리 2학기때는 잘 지내보자!

계집아인 대답했다.


“그래~!”


... 열이 쳤다. 이를 악물고 웃으며 개학날 보자며 전화를 끊고, 난 내 비굴함에 그 계집아이의 어이없는 말에

부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이유를 대지 그랬어. 내가 재수 없었다던가 그냥 뭐가 됐든지 간에 그 어떤 이유가 널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지 그랬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평온하게 언제 그랬냐는 듯 ‘그래’라고 말하는 그'년'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래.. 란다. 그래, 그럼 개학날 보자. 나 역시 아무 일 없단 듯이 너를 대해주리라.

이 어이없고 근본 없는 은따의 막을 내리고 이 악물고 잘 지내보리라.

웃으며 보자. 언젠간 너도 되돌려 받는 날이 오겠지. 나중엔 실소가 터졌다.


개학 날. 난 그 그룹에 아무렇지 않게 낄 수 있게 되었고 타깃은 바뀌었다.

열둘이나 되던 그룹은 쪼개지고 분산되어 머릿수가 줄었고 끝까지 날 모른 체하던 그 그룹의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난 무난한 2학기를 보냈다. 아, 그 한 명! 중요한 인물이지. 짝으로 시작해 끝까지 내 화해 시도에도 꿈쩍도 안 하던 그 아이. 결국 나중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내가 다른 아이와 노는 걸 보니 자기도 어울리고 싶은데 자존심 때문에 말 못 했다고.. 난 쿨한 척 화해의 편질 받아들였고 이제 나는 완전한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


중3, 또 같은 반이 되었고 편지의 아이는 옆반이 되고 날 끔찍이도 챙겼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쉬는 시간마다 날 찾아오는 그 아일 보고 우리 반인줄 알았다고 할 정도면 말 다했지. 날 은따시키던 그 아인 우리를 묶어 대단한 소속감을 부여시켜 가며 '친밀함'의 정도를 과시하길 좋아했다. 같은 고등학교를 지원하자고 난리부르스를 쳐댔으니 말이다. 옆반의 그 아인 다른 고등학교를 갔고 얄궂게도 난 그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같은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나에 대한 집착이 커갔고 어떻게든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난 부담스럽단 핑계로 그들과 멀어질 준비를 했다. 그러자 날 은따시켰던 계집아이와 편지의 아이는 뒤에서 내 얘길 했다. 좋은 빌미였다. 뒤에서내가 모르는 내 얘기가 나돌고 있었으니 난 그 빌미로 둘을 싸잡아 내밀었다.


통쾌했다. 지긋지긋했던 연을 스스로 끊어냈던 날 난 해방감을 맛보았다.


모르고 저질렀던 실수였다고 말할래?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넌 알고 있다. 아니까 하는 거다. 얼마나 못되고 악질적인 행동인지.

너흰 웃고 떠들었겠지 타인의 불행을 수치를 단순한 재미 삼아.. 모른다면 저지를 수 없는 행동이다.

인간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집에서, 학교에서 배우잖아. 뻔한 거. 모른다면 참담하다.


내 꿈은 네가 아니었지만 너보단 멋지게 살아가볼게.

알 리 없는 십 대 후의 네 미래는 보잘것없을 것 같아 반어법을 써봤어.


맘에 드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