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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회사가 망했으면 좋겠다.

by vakejun


23살? 즈음이었다. 그 일을 겪은 건.


지방 전문대 산디과를 졸업하자마자 난 집안에 선전포고를 했다.

4년제 편입을 시켜주지 않으면 난 당장 서울에 가고야 말 것이라고..

아빠의 입장은 분명했다. 다른 지방에 있는 작은 아빠댁에서 다닐게 아니라면 학비를 대 줄 생각이 없다.

난 보증금만 마련해 달라고 반시위를 하다시피 해 서울에 작은 전셋집을 얻었다.


처음엔 호기롭게 회사를 다니면 시간이 없을 테니 지금 미리 면허증을 따두자! 그리고 여태 신분증으로 쓰고 있다. 암튼 그렇게 첫 직장을 연신내, 우리 집과 완전 끝과 끝인격인 직장을 그렇게 얻었고 서울에서 지하철 타고 한 시간 이내면 괜찮은 편이라니 그냥 다녔다. 당시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끽해봐야 CDP나 노래 3~40곡이 겨우 들어가는 MP3가 전부였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운이 좋아 앉게 되면 어김없이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메모. 끊임없는 메모. 카피라던지 내 생각이라던지 아이디어 그리고 스케치.


그땐 그게 재미있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내게 선물을 줬다.

나에게 부리는 사치로 질 좋고 있어 보이는 검은색 양장의 스케치북을 사서 그것을 낙서와 메모로 꽉 채웠다.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는 써먹겠지. 나에게 거름이 되어 줄거라 확신했다. 지금도 버리지 않고 쌓아놨지만 거름으로 쓰기에 너무 낡았다. 저만치의 거름은 이젠 수단 좋고 머리 좋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이미 써먹고도 남았을..


그렇게 첫 직장을 몇 개월 다니고 관뒀다. 이유는 많았다. 그렇게 직장을 몇 번 옮기고 하기 싫으면 관두고 부당하면 관두기를 반복했고 그 작업에 아무도 나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서도 너에게 돈을 벌어오라 시킨 적 없으니 힘들면 내려오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난 나약한 결정에 힘을 실어 과감한 결정에 내 정당함을 부여했다.


그러다 나도 학연, 지연, 혈연이란 단어를 내 인생에 써먹게 되었다.

서울에서 놀고먹는 막내딸이 가여워 스스로 취업준비를 하는 게 딱하니, 아빠의 친구분께 아는 디자인 기획사에 소개를 좀 해볼까 하는 취지였다.

처음엔 반감이 섰다. 그 정돈 내가 알아서 잘하는데 왜 그런 치사한 방법을 써야 하는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돈은 떨어져 가고 스스로 취업을 준비하고자 하는 맘도 시들해졌을 때 자존심도 고개를 숙였다.


위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라는 데로 그저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갔을 뿐.

나머지의 기억만 생생하다. 겉보기엔 별다를 게 없는 작은 기획사.

인터뷰를 하려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훑더니 '네가 걔냐?' 하는 영락없는 눈치에,

'아 시발 여긴 아니구나' 했다.

내 성질대로라면 아마 그냥 나왔을 것이다. 아빠의 아는 분 소개만 아니었더라면.. 그런 더러운 기분으로 인터뷰를 강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초장부터 너의 기를 죽여주겠어하며 실장 같은 사람과 다른 부원 하나가 나를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질문은 간단했다.


- 여긴 어느 대학교예요?

- 대학교 아니고 대학입니다. 전문대요.

- 아, 난 4년 제인줄 알았네.


그때부터 날 졸로 봤다.

여긴 클라이언트가 어디 어디인데 우리 회사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는데 너 같은 쪼렙이 들어올 곳이 못되는데 이렇게 바쁜 우리가 지인 소개로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씩이나 봐주는 걸 넌 영광으로 생각해야 해.


참자.

내 화에 우리 아빠 체면이 달렸다. 되도록 불성실한 태도를 억누르고자 애썼다.

건성 한 대답에는 적잖게 그들도 '넌 뭘 믿고 그렇게 뻗대냐'는 눈치였지만 대놓고 내 기를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나이 많은 성인 남자 둘의 압력에 난 됐다 하고 공손하게 인사하고 나와버렸다.


와 씨 하늘이 엿같대.


그렇게 쓴 물을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었다.

나는 왜 편입을 하지 않았는가.

나는 왜 넙죽 거기에 갔을까.

나는 왜 그들보다 잘난 위치에서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했나에 대한 울분과 설움이 폭발했다.


그날 저녁 엄마 아빠와 통화를 하면서 어린 광분을 여과 없이 토했다.

"거긴 4년 제 만 뽑는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학편입도 안 시켜줬으면서 내가 거기서 얼마나 쪽이 팔리고 무시를 당하고 왔는지 그 지인은 왜 날 거기로 소갤 했냐고 마구 퍼부었다.

엄마 아빠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당신들이 하고자 하는 뜻은 그게 아니었는데 당한 날 보자니 억울하고 분하고 안쓰러우셨을게다. 나는 불효자였고 패배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 초년생 데리고 너 지인 소개니까 봐주긴 하는데 여긴 넘사벽이야-라고 초치는 그 잘난 꼰대들에게 야 너네끼리 잘 먹고 잘 살아! 했겠지만 그때의 난 너무 어리고 순진했다. 그렇다고 내가 인터뷰를 못 봤냐고? 그건 아니다. 이건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으면 이 챕터만 따로 쓰겠다. 지금은 울분의 시간과 꽤나 복잡한 내 과거 그 언저리의 이야기다.

지금도 생각한다.


난 그 회사가 '철저하게' 망했으면 좋겠다고.


애초에 거부했어도 됐을 인터뷰.

너희의 콧대가 그리 높으면 거절했어도 됐을 인터뷰.


우린 이런 회사니까 그런데 시간낭비할 생각 따윈 학연, 지연 다 떠나서 논할 가치가 없는 잘난 회사라~거들따도 안 보겠다고.

그들은 분명 날 앞에 앉혀놓고 시시덕 거렸고 내 커리어를 깠고 우습게 봤으며 즐겼음이 확실한 거지 같은 태도를 난 느꼈다.


씁쓸하고 개 같은 경우였다. 굳이 내 기분이 그리하여 망했으면 하고 바라는 건 아니다. 그런 썩어빠진 태도로 자신의 위치를 고고한 척 드러내며 즐기는 질 낮은 수준의 조직이라면 망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잘 벌어먹고 사시나요?

흙 파먹고 살지언정 그네들이 주는 월급으로 스케치북을 사진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자존심을 꺾어 본인들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종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망했으면 한다.


아, 누군가는 그러겠지. 얘는 자격지심이 있네..

별거 아닌 거에 지 주제도 모르고 엄한데 화풀이하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난 살면서 자격지심을 느껴본 적이 없다. 서울이 고향이며 퇴근하고 돌아오면 엄마가 차려준 집밥이 있는 그런 아이들의 타고난 복에 베알이 뒤틀린 적은 있어도 나 스스로가 누구에게 뒤처짐을 당했다고 나보다 잘났다고 느껴서? 아니. 없다. 난 내 생김새에 만족하고 내 태도에 자격지심을 끼워 맞춘 적 없다. 그러니 오해말길. 그냥 단순히 그런 인간들이 싫어서 망했으면 하고 바라는 간절한 읊조림이다.


망하라 빌기엔 오래된 난 알지도 못하는 소식이지만 뭐 어때.. 내 정의가 비뚤어졌어도 내 바람이 비뚤어졌다고는 하지 말자.

지금이라도 맘에 안 들면 뒤로 가길 누르고 이 글이 망하길 바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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