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이 처음 나올 당시엔 귀가 없었다.
지금은 아무리 작게 속삭여도 몰래 듣고 광고를 띄어준다.
모두가 인스타그램을 모르던 카메라모양의 UI디자인 시절, 저장을 목적으로 업로드만을 했던 게
오늘날 거대한 SNS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간결했던 나의 돋보기는 고작 해봐야 발레, 고양이, 좋아하는 외국 모델 언니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없는 게 없다.
저 사람이 간 곳, 입은 옷, 먹은 것들이 유명해지고
유행을 하고 재미와 더불어 삶의 행복도도 떨어졌다.
대부분 멋진 삶들이라고 생각한다.
멋있고 이쁘면 뽐내고 싶은 게 당연한 심리.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나, 이런 류의 것들이 주는 자극은 '난 그렇지 못해 불행해, 하지만 알기라도 해야겠어'가 작용.. 안타까운 모순이다.
나의 팔로우는 40명을 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면 원칙. 주기적인 피드 없이 놀고 있는 것은 빛의 속도록 삭제, 스토리만으로 연명하는 팔로워들도 삭제.
그렇게 간결해지면 어느 정도의 광고와 편의만 제공받으면서 나름의 취미와 좋아하는 스타일만 유지할 수 있다. 귀찮지만 튀어나오는 관심 없는 광고에 일일이 '관심 없음'을 눌러가며 신고를 누르는 작업도 공들여한다.
그러다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건지 뇌가 흔들리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것을 눈치챈 인스타는 수많은 명언 덩어리들을 돋보기에 제공했다.
'약점을 드러내지 마라. 누군가는 그 약점을 이용할 것이니-'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문구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일목요연하게 정리, 전달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생각은 너도 하고 나도 하는데 내 생각은 어디 가고 저런 지침이 나의 행동을 통제하는가?
'해라, 그리고 하지 마라'
입증을 거친 수많은 명언과 지식인의 품위 있는 글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배신당하지 않으며 상처받지 않고, 이길 수 있는지, 성공할 수 있는지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생각과 충돌한다.
생각은 나도 한대도?
내가 해온 방식이 잘못돼 후에 어떠한 화살로 내게 꽂히게 될지 괜한 두려움에 모든 '삶의 지침서'에 눈알을 굴렸다.
누구의 사고로 살아가고 있나?
잘 살고 싶은 것인가, 내 것이 아닌 공식으로 풀이는 가능한가?
잠식당한 건 나인가 삶인가 통제력인가.
물음표만 남았다. 방해물이다.
사람들은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 같다.
알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욕구의 소모는 더 이상 상호 간의 충족이 되지 못한다.
광고 하나 없던, 유명인딱지 하나 없던 인스타였는데,
이젠 좀 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