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는 고독하다
고로 가장 자유롭다
끝없이 파생되는 생각을
잘 정리하다 보면 급기야 해결책을
얻는 순간도 찾아온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발가벗은 신체로
나를 대면한다
눈바디도 잊지 않고 체크한다
바깥에서 묻히고 접했을 오염, 내지는 기억
정해진 순서대로 오차 없는 30분간
뇌는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구별하는 작업을 한다
하루 중 가장 온전하게 집중하고 성의 있다
내 생각과 함께 깨어있던 육신의 오점은 없었는지
살피고, 싸우며, 충돌하면서
후회도 하고 결심도 얻는다
공들여 씻는 그 순간에도
뇌는 더 바쁘게
그리고 골똘히 움직인다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나열이 있었는데
머리를 털며 나오는 순간 잊어버린다
굳게 다짐한 어떤 목적만이
깨끗하게 남았다
과거는 꽤나 정면으로 보고 있다고
과한 처사였지 않은가-라고
그놈의 짐을 덜어내려
무진장 애를 썼다만
이게 고생해서 애쓴다고 바뀔 꼬라지였다면
이제 그만하자 싶은 거다
그만 받아들여라-
안타까운 모성애는 나의 건강과 우울이 염려되어
지나가는 말로 한 번씩 다독이신다
밝게 대답한다
- 당연하지. 이제 잘 지내
오늘의 본인에게 어떤 잘못된
꼬락서니가 있었다한들
이미 지나간 거다
최대한 몸을 깨끗하게 씻는다
정면으로 봐도 측면으로 봐도
나쁜 기억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욕조가 있었다면
아마 인생 통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 직장인이었던 눈깔은 퀭하고 뻑뻑했다.
종일 모니터만을 바라보면 눈알을 빼 수돗물에 헹궈 다시 끼워 넣고 싶었다. 이제는 백수여서, 라섹을 한 비싼 눈알이어서 인공눈물 샤워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