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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감각

by vakejun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의심한다.

어딘가 쿡 처박히게 떨궈버리고 못 찾는 걸 수도 있다.


열이 났을 때라던가 홍역을 앓으면서,

독하게 마음을 먹고 다른 것들을 내주었던 수많은 날 중 하나라던가.



그렇게 기능을 상실한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친 거다.



본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딱히 증명할 길은 없다.


눈높이가 달랐던 시절의 방향이래 봐야 지금의 골목과 건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오로지 눈에 탁 트인 한 길로 직진만 하면 되는 난이도라고는 없는 쉬운 길 뿐이었으니.



언제부터일까?

이 불확실하고도 애매한 점을 추궁하자면, 환경을 떠나 난 분명 인지능력이나 지각감각, 방향감각이 지금처럼 무디지는 않았을 거라는 묘한 추측이 물음표를 낳는다.


혼자 길을 찾아 나설 때 난 내 감각을 전적으로 믿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인터뷰를 하러 나서는 초행길, 미리 계산한 시간에 헤매지 않고 도착하기!

그 길을 역행해 온전하게 돌아온 것이 방증이다.


넌 지금 잘못 가고 있단다-하는 이가 없으니 그때의 나를 믿어주는 건 나 정도쯤은 베풀어줘도 될 믿음 아닌가.



저질체력과 함께 이런 소소하고도 필요했던

눈치채지 못했던 나의 기능적인 면의 소실은

거지 같던 내 사회생활이 안겨준 산물이란 생각을 하니 더럽게 맛없는 커피를 비싼 돈 주고 사 먹은 구린 기분이 든다.



애석하게도 나이가 듦에 놓쳐버린 것들이 못내 아쉽다.

어른이 되면서 좋아하게 된 것들은 어릴 때의 나를 잊게 만들었다.



혼자 나서는 길은 온몸의 세포에게 어서 일을 해!

라고 부추기지만 애초에 부추기는 일은 잘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므로 실수가 잠복돼 있다.


아차! 하는 순간 멍해진다.

아, 또 헤매고 말았구나!

잘못된 걸 아는 것도 어쩌면 다행이다.

자만할 정신머리가 아닌 걸 아는 것도 공황장애를 이겨버리는 방법이다.


방황하는 건 이제 익숙하다.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저혈증세가 아닌 걸 보면 자각은 하고 있다는 것.



경복궁 3번 출구,

나를 안도하게 해주는 동공 네 개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라고 한다.

이 정도면 모로 가도 잘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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