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메일 2

by vakejun



왔다 어제 편지.

잘 받았다.


생각이 많이 나더구나.

이것저것..


어쩌면 너와 나는 형제였으면 시스터 콤플렉스였지 않았을까 싶다.

비슷비슷하면서.. 한편으론 먹먹한 생각의 주기를, 또는 전차를 밟는다는 게 슬프면서도 기쁘면서도 위안이 된다랄까.. 이래 저래 뒤숭숭한 내 기분을

네가 풀어주었다는 거엔 한몫 톡톡히 한셈이다.


고맙다.

고마운 짐승이다 너는 참..

살면서 '너'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차피 '나'같은 '사람'은 희소성의 가치를 더 염두하는 편이니..

이대로만 유지된다면야 더는 없어도 될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에 'Danny Boy'가 무척 듣고 싶었는데..

듣고 있다 오랜만에.

좋으면서.. 싫구나.


집은..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이래저래..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너의 부재는 내려가서도 느껴야 되니

그래도 오면 얼굴 꼭 보도록 하자.

그동안 사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00이완 뜻하지 않게 빈번히도 심각하게 싸우기도 했고..

적었다가 다시 지운다.

그래 나머지 내 얘긴 돌아오면 하도록 하자.

안전하게.


영하의 날씨에 실내에서도 반팔차림이 어려운듯한 기숙사 생활인 것 같은데..

고생이 많다.

뜻한 바 있어 간 것이니 너도 몸소 느끼는터라 더는 말 안 해도 알기야 하겠다만..

그래.. 시기가 중요한 거다.

너나 나나.

주어진 시기에 감사하면서 살도록 하자.


사람이 무언가 움직이면서 흔적을 남긴다거나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사지 멀쩡히 오감각 멀쩡히 걸어 다니는 거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어릴 땐 참으로 많이 뒤처지는 거에 질색을 하면서 달려온 것도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회의감만 밀려오는지.

상대나 나나.. 난 진취적인 사람과 상황이 좋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떠밀려 왔는지 생각해 보면 알 것도 같은데

맘만 먹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친다는 뻔한 핑계로 앞을 보기도 거부하고 현실도 오로지 흘러갈 대로 가라는 마냥 넋 놓고 손 놓고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요즘은 잠이 안 와 미칠 지경이다.

새벽 2시에 전화해도 무관한 시간이었는데..


Lauryn Hill의 노랠 듣는다.

작년 겨울 한참 들은 것 같은데


음악을 들으면 말이다...

사람은 후각에 더 민감하다지? 어떤 특정한 냄새를 맡게 되면 당시의 기분, 느낌, 생각, 상황 모든 것들이

마치 그때로 돌아간 양 기억이 확 하고 떠오르는 그 순간 말이다.

음악이 그래.. 내 청각은 민감한 기관지의 탈보다 더 예민하다.

만일 내가 그림판 인생에 뛰어들지만 않았다면..

정말이지 음악에 미쳐 한번 살아보고 싶단 생각도 여러 번 들었었다.

한참 일을 하면서 그나마 나에게 위안이 된 건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고 음악뿐이었다.

xxxxxxx의 음악을 접한 건 정말이지 내 인생 최고의 음악이라 칭송할 만큼의 대단한 영광이었고

엄청난 그 무엇이었는데..

이젠 음악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고 흡사 무미건조한 예전의 나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

영 별로구나.


생각이 두서없이 나열되는터라 무작정 손 가는 대로만 쓰고 있는데 혼잡하진 않을런지 걱정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넌 알 수 있겠냐?

사실.. 난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추측해 보건대.. 확실한 건 늘 알맹이는 빼먹고 겉만 핥아주어도 눈치 빠른 너는

거르고 잘 걸러서 기억할 부분만 잘 저장하리라 믿는다.

너무 치우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내 주위에서 너만큼 날 잘 파악하는 인간형태도 없지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지만 너도 한참이나 어린 나이에 날 만났으니.. 네 성장에 내가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어쨌는진 모르겠다만 자라면서 옆에서 보아온 나이 많은 사람 중에 하나 아니더냐.

나 같은 어른은 이렇게 생겨먹고 저렇게 크구나.. 하면 되려나?

상당히 긴 편지를 쓰고 있으니 중간에 오류가 나 날려버릴까 두렵군.

서로 잘 안다고 혹은 모르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외면하더라도 본질이 바뀌긴 어렵지.

너는 무엇 때문에 나와 만나졌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생 너는 어쩌자고 거기에 나타난 거냐.

어쩌자고 말도 안 되게 어린 너를 나는 나이 많은 노땅이겠거니 하고 말을 텄을까.

그냥 길거리에서나 단체생활에서 널 봤더라면 분명 우린 친해질 그 어떤 연관고리도 아무것도 없을 텐데 말이다.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지?

너와 나도 00이도.. 가족들도..

어릴 때의 내 주변 구성원들은 별로였는데..

소위말하는 친구? 그래서 하나에 더 목메는 스타일이 돼버렸나.


어제는 EBS에서 'MOBY'의 'Porcelain'이 나왔다.

가만 보면 대중매체에서 내가 아는 희귀 음악이나 남들은 잘 모르는 장르의 음악이 나오면 '뺏겼다'란 기분도 심심찮게 들곤 하는데 문어대가리 moby가 들으면 eminem이 자길 씹은 대중가수인 난 뭐냐?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려던 얘긴 저것이 아니고, 어제 저 음악을 들었을 땐 다소 반가웠다.

xxxxxxx의 음악 말곤 어지간하면 지겨워지고 질릴 대로 들어서 더 이상 흥미 없는 가락들.

예전의 기분을 다시 한번 느낌과 동시에 한번 들어볼까란 의욕이 조금이나마 생기는 듯 해 들어본다.

요즘은 저런 거에도 의욕이란 단어를 쓸 만큼 흐지부지하게 살고 있다.

도통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나가도 별 다를 게 없고.

일을 안 해서인지.. 뭔지 잘은 모르겠다만.

요즘 같은 기분이면 전에 백수시절의 나보다 몇 배는 더 꼴값이고 나락이다.

죽고 싶은 기분이 들면.. 죽으면 그만 아닌가?

미련은 아닌데 사람이 한번 죽기로 결심을 하면 정말 죽어야 하는 건가?

골백번도 더 고쳐 죽은 철없는 십 대를 지나고 나니 현실적으로 부닥치는 공허함에서 오는 자괴감이나 괴리감.. 이질감.. 생각이 많으면 일을 그르친다고.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피터팬 콤플렉스'는 아닐까 생각도 해 봤는데..

글쎄.. 전문가가 아니니 건 잘 모르겠고.


혼자 밖에 나와 살면서 남들보다는 조금은 빨리 철이 들었다고 오만은 아니지만 스스로 그렇게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직 나는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튀지 않는 시민 중 하나인데.

하기야..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왜 사지 멀쩡하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면서도 해대는 꼬락서니가 이모양이냔 말이다.

그건 누가 시켜서도 아니니 남 탓을 할 수도 없고.

어릴 땐 환경 탓, 사회 탓, 심지어 나라 탓을 하기도 했다.

나라가 이 모양이니 뭘 하려 해도 도통 먹히기나 할 '뻔' 해야 시도를 해 볼게 아니냐고.

참 못난 발상이지.

뻔한 핑계밖에 없었을까 나는?

내 소망은 세상이 좀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싸우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고 훈훈한 경치에 물을 끼얹을 리 만무하니 그야말로 뭐든 안전빵 아니냐?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어쩌면 나는 계속되지 않는 생각들로 핑곗거리만 보태는 꼴.

현실을 즐기자니.. 꺼리가 없고.. 미래를 내다보자니 의욕이 없고.

돌아보면 후회만 가득하고.. 나 같은 어른이 또 있을까.

자멸감의 끝을 보여주는구나.

부러 자책하거나 땅 파는 기술은 이미 예전에 다 끝냈는데.

때아닌 병신 삽질이라니..

난 좀 단순해졌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밝고 경쾌한 사람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훌훌 털고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뭐든 맘먹기에 달렸다는데.

나는 부러 맘을 안 먹는 것일까.

그게 원래부터 어려운 일이었나?

왜지?

온갖 것들이 다 의문투성이다.

왜?라고 시작해서 결론이 나지는 꼴을 못 봐.

정말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어쩌자고 나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면 안 되는 건지.

뭐 땜에?

난 해탈하고 싶은 맘도 없는데.. 얼마 전엔 수녀원이나 절에 들어가야 되나라고 생각했다.

뭐 살면서 아주 가끔 들곤 하는 생각이긴 하다만.

사람이 뭔가 깨달음을 얻고자, 혹은 신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좇는다는 것도 가만 보면..

그게 다 무슨 소용?

왜? 뭐 때문에? 누굴 위해? 그러고 나서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무슨 목표를 가지고 살아들 가는지.

난 자꾸 봐도 살아져만 가는 것 같은데.

왜지? 살아지고 있으니 그냥 살아가질뿐인데.. 왜 나한텐 뚜렷한 목표나 의지 심지어 악이나 깡도 없단 말인가.

어릴 땐 평범한 게 싫더니 이십 대 초반이 돼서야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지고 싶다 하더니 이젠 욕구란 욕구는 거의 다 사라져 가고.. 그래.. 적어도 오늘 지금의 나는 그런 것 같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것을.

처음부터 다 알았더라면 난 좀 유쾌해졌으려나.


올곧은 건 고집이 심해서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건 지기 싫어해서이고 바른말만 하는 건 부당한 처살 내가 당하기 싫어서이고 이 모든 건 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의 때문인데.. 그렇다고 나 스스로 그렇게 해서 득 될 건 또 뭐고 해 될 건 또 뭐람.

그저 나는 그렇게 살아가졌을 뿐인데.

왜 자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져 가는지.

사는데 의심만 가득한지.


내가 대체 뭘 보고 들으려고 악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도무지.

푸념치곤 하소연치곤 꽤나 나이에 맞지 않은 짓거리야.

그렇지?

오늘은 좀 편하게 잘 수 있으려나.

편지는 받아놓고서 전화 한 통 안 해주고 형편없는 형님이다.

이따가 생각나면 해보마.


난 생각이 좀 많은 유형이라 사소한 것들은 그냥 제끼고 제발 고민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또 여간 쉽지가 않네.


머리 제법 많이 길었다 나.

간간한 내 소식이다.


참, 어제 네 편지인 줄 모르고 부리나케 나가다가 컴퓨터 책상에 잘못 부딪혀 죽을 뻔했다.

다행히 어찌하여 머리나 목 대신 팔로 대처하여 순간의 살의는 피해갔다만.

엄청난 부상을 입었다. 아직까지도 아프구나.

목숨 구하고 읽은 네 편지는 단비 같았다.

건조하고 메마른 증발할 것 같은 내게 말이다.


넌 좀 소나기 같겠구나.

원래 소나기란 예보 없이 맞는 게 제맛.

간간히 비껴간 탓에 전혀 낯설진 않을 거라 본다.

너무 놀라지 말고.. 어찌 됐건 다시 살아가지지 않겠냐?



11. 28. 20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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