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지 않는다.
자의적인 것 치고 뻔뻔하네.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럽진 않다.
몇 가지 구차하게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의 문체가 있어 보이고 괜찮아 보여서
나의 뇌리에 남는다면,
그것은 언젠가 한 번은 나의 글에, 메모에 쓰이고 말 것이다.(라고 생각)
영화에서 총이 나온다면 반드시 한 번은 쏘게 된다라는 것처럼.
유명한 작가도 많고 SNS만 훑어도 멋들어진 글귀는 넘친다.
같은 밥 먹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남기나 싶다.
책을 좋아하는 짐숭들에게 쌓여 그들의 열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는 그저 짜져 있다.
모르는 만화책, 서적이 없고, 작가가 없다.
대단하다.
너희의 공통분모에 끼지 못해 분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내 생각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는 기능정도만 하면, 그 기능마저도 좋아서 웃어주니 그걸로 만족.
만족은 약간의 게으름과 거드름을 낳은 것 같다.
생각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아까지 성찰해 가며 무언가를 바꿀 욕심이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독서’라는 고상한 취미가 없다.
작가의 취향을 탈만큼 독서량이 많지도 않고 기껏 좋아서 읽었다 해도 영화가 주는 편리한 감동의 언저리를 건드려 주지는 않았다.(고 느낌)
전시회를 봐도 마찬가지.
일러스트에 빠져 살 때 ‘내가 그려도 저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라는 요망한 뻔치와 오만방자함이 ‘이걸 돈 주고 봤네?’에 대한 알량한 자존심이 퇴락한 예술가? 나부랭이로 만들었다.
그럼 너도 하던가?
짐숭2가 화요일마다 받아보던 ‘영하의 날씨’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건 자랑이니까 제대로 읽어주면 좋겠다.
꽤나 ‘맛깔나게 읽어주는 소질’이 있는 편이다.
웃었고, 울었고,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글귀를 멀리 하던 나는 그저 재미가 없어서였을까, 어려워서였을까, 고깝게도 내 취향이 아니었던 걸까..
아, 나 에세이 좋아하네.
내 글에는 우울한 온도가 숨어있고 가끔 ‘그걸 다 기억해?’라는 오묘한 시간이 흐른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읽은 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뭐 여러 가지 이슈로 인해 게으름보다는..
여유로움을 모색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생각해 둔 카운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만 아는 거라서 나 혼자 자축할 거니까 덤벙대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변명이란 자고로 누추하게 늘어놓아야 동정표라도 사는 건데 나의 구독자님들은 고매하시어 안심이 된다.
+ 원래 변명이라는 걸 하는 휴먼이 아님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