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기 힘든 사실들이 몇 있지.
사라진 큰 그늘, 이제는 통과해야 할 터널이라는 것.
이토록이나 해왔건만 어쩌다 인슐린을 주입시키는 것을 잊어버리는 멍청했던 잠깐의 평범함 같았던 것.
그렇게나 칼같이 지켜왔던 '뭘 먹던 괜찮아! 인슐린만 꼭 맞아!'라는 주치의 말을 아주 철저하게도 지켰는데..9년 차였나? 인슐린을 두고 나왔다.
아.. 병신인가..
뭐, 한번 안 맞는다고 죽기까지야 하겠냐마는 나보다 더 떨면서 말하는 짐숭1과 혜곰이의 걱정에 나는 정말 괜찮아했고 괜찮았다.
"괜찮아, 안 죽어! 먹어 먹어-"
고급진 티타임의 찻집에서 오니기리를 먹을까 말까 이 탄수화물의 압축 덩어리인 스콘을 먹어도 될까?라고 고심했지만.. 진짜 이걸 먹고 당이 튀어도 죽진 않을 테니까.. 다소의 부작용은 있겠지만.
오래된 라섹의 결과인지 고혈당과 저혈당, 호르몬의 농간에 제일 취약한 신체의 약점인 시력이 컨디션에 따라 당처럼 널뛴다.
이젠 뭐 좋은 날이 더 없어서 놀랍지도 않다.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되려 편하달까.
당이 낮아 스타벅스의 딸기라테를 주문했다.
잊고 살았는데 난 딸기우유를 좋아했었다.
오래전 역 앞에서 팔던 먹기만 하면 배가 아프던 토스트에 딸기우유 먹기를 좋아했다.
너무 까마득한 기억이다.
잊고 산 덩어리가 얼마나 될까.
때로는 미더운 자식이라는 타이틀로 아주 가끔 무심한 엄마의 질문에 기분이 바닥을 친다.
엄마는 평소 입지 않던 청바지를 입고 그들이 맞춘 상의에 아저씨의 손주 돌잔치에 쓰일 가족사진 한가운데 아저씨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있었다.
보기 전엔 몰랐지만 궁금했다.
나와 동갑이라던 큰아들과 며느리의 얼굴이.
그냥 궁금증이 일었다.
사진 나오면 보여달라고 했지, 이렇게나 아침 일찍 주실 것 까지야.. 아저씨의 톡에 기분이 묘했다.
예전 아빠의 생일날 온 가족이 모여 가족사진을 찍고 일찍 찍어놓으면 오래 산다더라며 두 분은 영정사진을 찍어 놓으셨다. 아빠는 그 미신인지 뭔지 속세의 말을 듣지 않으셨다.
웃었던 것 같은 장례식장의 아빠 얼굴은 사실 웃지 않았었고 다른 가족들 가운데 섞인 엄마를 보자니 이유 모를 억장 같은 것이 무너졌다.
2번보다 1번이 낫다고 했다.
엄마 사진이 더 잘 나왔으므로. 다음 날 저녁엔 엄마에게 전활 하지 않았다. 괜히 심드렁해졌으므로.
아침에 전화가 온 건 엄마도 뭔가 미약하나마 눈치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지냈어요?"
정신과에선 보통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가기 전엔 도통 갈피가 잡히지 않아 84일간의 내 기분이 어땠는지 짐숭1에게 묻는다. 나 어떻게 지냈더라? 약을 증량하기 싫어 늘 그럭저럭이요-라고 했지만 이번엔 자신이 없다. 도통 모를 것 같은 기분은 아님을 감지했다.
우울하다면 그런 거고 아닌 거면 아닌 건데.. 오늘은 조금 싫다.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감정인데 어쩌다 고개를 들췄는지 싸대기를 날리고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생각만 들뿐 나에게 친근한 척 스며드는 기분 나쁜 스멀거림이 모든 걸 방전시켰다.
오늘은 만사가 귀찮아서 죽고 싶다.
늘 그렇다. 하찮은 이유가 이유인 것이다.
1~10 고르라면 9다.
나머지 1에 내가 걸어야 할 기대치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1 정도는 남겨두고 싶다.
썩어 문드러져도 직전까지는.
나는 여태 1로 버텼다.
그럼 된 거 아닌가.
14th. Jan.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