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하얗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면 모두가 그렇게 변했다.
빨갛거나 새카맣게 타거나.
노는 데에 집중?을 하다 보면 밥때를 놓친다.
엄마는 노는 게 그렇게 좋으면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친구 만들 기회는 왜 주시는지..
아랫마을 할머니네 손주들이 서울에서 왔다는 소식을 알려주셨다. 그중엔 귀한 동갑내기 여자애도 있다고 들었다. 안 가볼 수가 없다.
서울물은 다르다. 머리카락이 길고 나보다 더 마른 체형의 얼굴이 조막만 한 여자애와 통통하게 살 오르고 말갛게 하얀 여동생이 대형 튜브와 수영복을 입고 마당에서 날 맞이했다.
우린 금세 친해졌다. 통통한 여동생이 왜 자기는 안 끼워주냐며 질투할 정도로.
여자애는 나더러 넌 왜 사투리를 안 쓰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난 TV유치원을 두 개나 다니고 있었거든.
하여간 우린 열심히 놀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졸랐다. 수영복을 사달라고.
원하는 걸 처음 목놓아 졸라본 것 같다.
엄마는 등에 엑스자 모양으로 걸 수 있는 도트무늬의 원피스 수영복을 사주셨다.
드디어 갑옷이 생겼으니 전쟁터에서 두려울 게 없는 전사가 된 기분이다. 프릴의 치마가 좀 걸리긴 했지만..
다음 해 여름이면 또 보러 오겠노라며 아이들은 떠났다.
그렇게 두 번의 여름을 끝으로 그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남은 건 수영복이 전부였는데 그 마저도 얼마만큼의 키가 자라는 바람에 작던 것이 내리막길에서의 자전거 체인이 먹통이 되는 순간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수영복은 홀랑 체인에 휩싸였고 기름때 묻은 구멍이 나버렸다. 어리지만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걸 알았다. 수영복도 오지 않을 아이들도.
아랫마을 할머니는 후에 서울에서 병간호를 받으시다 돌아가셨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걸 얼핏 들었다. 정말 안 오겠지 싶었다.
가끔씩 생각나는 아이들의 행방은 후에 직접 물어봤지만 믿기 힘든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만난 몇몇 서울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젠체 없이 대해주던 아이들이었다.
커가면서 좋은 건 하나씩 가져가버리는 소실해 버리는 못된 사이클이 있다는 걸 교통사고가 나면서 깨달았다.
후로 '기도'라는 걸 하지 않는다.
손아귀에 꽉 쥐고 움켜잡은 기억과 생물, 그 무엇도 귀하게 여길수록 강박은 커져갔다.
기도가 안 먹힌다면..
대충 살자.
지금과는 다르게 좋았던 어린 날의 여름도 원하든 원치 않든 꼭 오고야 마는 것이라면 살짝 펴고 들여다보고 관찰하면서.
대충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