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다. 오빠가 지붕을 넓게 드리워 주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자매가 옷 같은 문제로 아옹다옹 싸우는 모습이 소모적이고 피곤하면서 찌질한 비극? (어쨌든 희극같이 보이진 않았으니까)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자매들의 전매특허인 이런저런 이슈엔 정말 무심하고, ‘애교’나 ‘끼 부리기’ 같은 유용한 기술과는 담을 높게 쌓고, ‘뺏기기 전에 빨리 먹기’, ‘온몸으로 내 물건 사수하기’ 같은 신체 기술을 단련하며 오빠의 남동생답게 씩씩하게 자랐다.
하지만 늙어가면서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진다. 물론 자매들끼리 싸우고 아예 안 보고 사는 친구들도 더러 있지만, 보통은 네 살 먹은 언니나 세 살 어린 동생이 다 베프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우정? 은 더욱 돈독해지며 거의 한 몸처럼 변해가는 것을 많이 본다. 부모님이 주신 ‘끝까지 가는 내 편’이 있다는 게 어찌 부럽지 않을 수 있을까.
내 편이라...
말만으로도 힘이 나는 단어다.
드라마의 제목 『아수라처럼』은 갈등하고 싸우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작가나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는 질투하고 싸우면서도 결국 서로에게 기대는 가족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드라마 작가인 무코다 구니코 원작으로 TV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으로 수차례 공연된 유명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최애 감독 중 한 분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넷플렉스 드라마(2025년)로 보았다.
가족이 밥상에 모여 함께 먹는 장면이나 소소한 일상의 얘기를 조곤조곤 나누며 까르르 웃는 장면처럼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 익숙하게 나오는 장면들이 많다. 감독의 작품에서 주로 어머니로 등장했던 키키 키린(2018년 유방암으로 사망) 배우는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대놓고 싸우거나 이혼하는 대신 섬뜩하고 귀여운 복수로 뒷머리가 찌르르해지는 반전을 만드는 앙큼한 인물(?)을 많이 연기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 출연했던 마츠자카 케이코 배우가 키키 키린 배우 같은 엄마로 분했다.
엄마는 든든하게 가정을 지키면서 네 딸들의 일상을 온전히 지켜주었지만, 남편의 오래된 외도를 잘 알고 고통받으며 살았다. 197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까?) 암암리에 알고 고통받으면서도 파탄으로 몰고 가지 못하는 ‘불륜’이란 비틀어진 관계가 극 전체를 관통한다. 아버지의 외도, 둘째 딸이 의심하는 남편의 외도, 첫째 딸의 불륜, 셋째 딸이 남편을 만나게 되는 계기, 넷째의 원나잇 등등... 누구도 입 밖으로 내서 문제시하지 않지만, 누구도 이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극, 비극,
그것도 참... 거시기한... 찌질한 비극들로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같다.
하지만 도서관 사서인 셋째가 인용한 나츠메 소세키의 『우미인초』에서는 살고 죽는 것만이 비극일 뿐 그 외 인생 면면은 다 희극이라고 했다. 네 자매의 각 가정사를 들여다보면 다분히 콩가루, 막장 같은 단어가 어울릴 법한 비극이지만, 자매들끼리 모여 어린 시절, 부모에 관한 얘기를 하며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장면을 보면 작은 미소를 짓게 하는 희극 같다. 특히나 아옹다옹 싸우다가도 어려움이 닥치면 한편이 되는 모습은 ‘저게 가족이지’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아마, 이것이 이 드라마가 그리고자 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아수라처럼’ 으르렁거리며 싸우다가도 밥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품평하고, 함께 모여 배추를 절이고, 이러쿵저러쿵 살아가는 일상의 시트콤 같은 희극.
비극도 희극도... 원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게 아니더라.
희, 비극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나름 균형을 잡고 살아간다면,
열나 버티다 가끔 웃을 수 있다면,
기왕이면 비극적인 순간도 가볍게 희극으로 치부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살 수 있다면 된 거 아닌가 싶다.
하나 더 바란다면 ‘아수라’ 같은 모습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좀... 보기 좋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편안하고 따뜻해 보이는 모습으로.
그래서 여자 형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그녀가 늙어가는 모습이 나와 비슷할 테니 말이다.
그 얼굴을 보며 내 모습은 어떤가? 비극 속에서만 헤매고 있진 않나? 아님, 희극을 느끼며 가끔은 웃고 있나?를 쉽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을 테니.
하지만 내겐 자매가 없다.
그러니 스스로 내 모습을 관찰하며 살아야 한다.
혹시 ‘아수라’ 같은 모습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