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올해 만 26세 중증 발달장애인의 엄마다. 아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아이와 분리된 경험이 거의 없어, 어쩌다 아이가 속한 프로그램에서 1박 2일 캠프라도 가면 오히려 내가 분리 불안을 느끼곤 한다. 어느 엄마가 그렇지 않겠냐만... 어쨌든 내 지난 26년에는 온통 그 아이가 자리하고 있다.
난 ‘장애’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보거나 읽는데 큰 결심이 필요한 사람인데, 그건 너무 과하게 공감한
나머지 간신히 굴러가는 일상에 균열을 만들까 두렵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쨌든 이 영화(『그녀에게』2024)를 클릭하는 데도 많은 예열이 필요했다.
영화는 잘 나가던 정치부 기자였던 상연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막연하게 걱정하던 아들 시우가 자폐성 지적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그녀의 인생은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때부터 가족 (특히 엄마)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진다. 4세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온 힘을 다해 치료에 전념하란 소리를 들은 상연은 시우를 데리고 여기저기 치료기관을 전전한다.
‘치료에 월 200을 쓰면 성인이 돼 서너 살 수준이 되고, 월 300을 쓰면 초등학교 1학년 생 정도는 될 수 있으니, 영혼까지 갈아 넣어 치료 또 치료를 받아야 ∼∼’
22년쯤 전 나도 여러 기관에서 같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머니,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됩니다!!’
잔뜩 겁을 먹은 나도 상연처럼 아들을 차에 태워 이화여대 후문 앞에 있던 조기교육실을 시작으로, 서초동
언어, 작업 치료실, 공덕동 음악치료실 등을 돌다 저녁때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쓴 돈은 계산하기도 힘들 정도였고 몸과 마음은 늘 방전 상태였다.
그런 간절함과 애씀이 내 아이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학령기가 돼서도 수많은 이슈 들을 마주해야 했고, 때론 악다구니를 쓰며 싸웠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 고비를 넘으면 저 문제가 산처럼 다가왔고, 저 문제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 ㅎㅎ 또 다른 어려움이 비시시 고개를 내민다.
지금도 물론 숨 쉬듯 자연스럽게 어려움과 마주한다. 하지만... 일상을 가득 채운 어려움들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온통 망쳐버리지 않는 정도까지는 내공이 쌓인 것 같다.
어려움, 이슈, 문제 들은.... 지겹도록 나를 따르리니... 완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그들과 혼연일체가 되지 말 것이며 그저 평행선 상태로 떼어 놓아야 하느니...
지금은... 이 정도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했고 영화 속 상연이 했던 것처럼 지금 누군가도 똑같은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왜?
대체 왜 내게?
이런 질문에 자주 따라오는 ‘벌’, ‘축복’ 같은 단어 들은 백퍼 개소리가 분명하다. 나도 아이에게 닥친 불행이 내가 잘못 산 ‘벌’ 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누군가 ‘거룩한 분께서 나를 엑스트라로 축복’하셔서 그렇다고 말하면, 혹시라도 내가 깨닫지 못하는 큰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갑자기 다가온 불행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부분적이라도 반영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우리에게 벌어진 많은 일 중 이해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그저 그렇게 흘러갈 뿐이라는 걸 말이다.
나와 아들의 이야기에 결말이 없듯이 이 영화에도 결말은 없다. 시우와 가족은 아직 계속 얘기를 써 가는 중이고, 나도 아직은 한참 더 얘기를 써야 한다. 지금까지도 특별할 게 전혀 없는 버둥거림으로만 채워진 얘기였는데 앞으로의 얘기에도 드라마틱하고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덧붙여질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좋다.
아들과 나는 비교적 평온하게 살고 있으니, 그거면 된 거다.
26년을 장애인 엄마로 살아온 현재, 난 10점 척도에 한 4-5쯤 되는 평안함에 이른 것 같다. 좀 더 살면서 한 7점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그 정도면 나와 아들은 나름 잘 산 게 아닐까 싶다.
이러고저러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믿으면서...
장애인(長愛人) ‘오래 사랑받아야 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