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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읽기

청설

by 새벽

청설, ‘이야기를 듣다,’ ‘내 말을 듣다,’ ‘내 말을 들어주세요?’


대만 영화 『청설』의 리메이크 작품이라고 한다.


포스터만 봐도 풋풋한 초여름 같은 청춘영화란 느낌이었는데, 역시나... 인생의 초여름을 살고 있는 예쁜 사람들의 파릇파릇한 영화였다.


용준은 바로 옆집에 살 것 같이 친근해 보이는 청년이고, 조금은 달라? 보이는 여름도 하루 24시간을 촘촘히 나누어 쓰는 어여쁜 젊은이다. 동생과 수어로만 대화하는 여름을 보고 용준은 수어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다양한 영화적 기술도 역할을 했겠지만, 용준과 여름의 조용한 대화는 오히려 보는 사람을 더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아니, 어쩌면 수어가 원래 그런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숨은 의미를 읽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기울이게 (눈을 기울이다?) 하는 언어. 그래서 어쩌면 상대방이 말보다 더 많은 걸 읽게 할지도 모르는 언어...


극 중 용준의 엄마가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은 괜찮겠어?”

“뭐가?”

“용준이가 사귀는 애가 청각 장애인인 거”?

“그게 왜? 사람만 좋으면 됐지. 멀쩡해도 말 안 통해서 답답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야?”


와!!! 와!!!


연식이 오래된 나는 학생들을 만날 때 그 뒤에 보이지 않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부모의 모습을 그려 볼 때가 많다. 무서운 편견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아이들이 현재의 모습을 갖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그 이미지를 지우는 게 쉽진 않다.


철학과를 졸업하고 딱히 할 일이 없어 부모님의 도시락 가계에서 배달을 하는 용준이란 청년이 내 앞에 서 있다면 난 그를 어떻게 읽을까?


과연 저런 대화를 나누는 부모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부끄럽게도 난 철벽처럼 굳건히 쌓아 올린 편견으로 타인을 보고 평가하는 사람인 게 분명한 것 같다.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란 용준을 ‘천천히 상대방의 얘기에 귀 기울여주는 고운 청년’ 일 거라고 생각하기보단 도시락을 배달하는 젊은이로 먼저 볼 게 분명하니.


저런 대화를 하는 부모의 아들인 용준은 분명 반듯하고 좋은 청년일 것이다. 여름이 하는 말이 소리든 싸인이든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천천히 자신의 말도 건네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서로를 더 알게 되는 용준과 여름에겐 파릇파릇한 초여름을 건너 눈이 시리도록 새파랗고 열기로 타오르는 여름이 올 것이고, 어쩌면 함께하는 가을도, 겨울도 있을지 모른다. 그 여름, 가을에도 서로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그들이길 바라본다.


나는 가족, 친구들과 통하는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의 말을 듣지도 보지도 않으면서 들었다고, 보았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여름이 너무 극한으로 변하고 있어 다가올 여름이 벌써 두렵지만, 사실 여름은 여러 시인들이 찬사를 늘어놓은 것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계절인지 모른다.


푸르고 생명으로 가득 찼으니...


내 옆의 그(녀)와 지긋이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면서...

극한 여름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기를....



눈을 맞춰 보세요. 그리고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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