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작가라면 부커상 파이널 리스트였던 작품 『저주토끼』(2022)가 대표작이겠지만, 내겐 연작소설집『지구 생명체는 항복하라』(2024)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녀가 선택한 ‘지구 생명체’는 문어,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 등 바다 생물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냐?’ 싶다가 좀 더 읽자 정신없이 낄낄거리게 됐고 곧 눈물이 났다.
‘나’는 외계 생명체들과 엮이게 되고, 그로 인해 국정원에 연행?이 되면서도 사전 예고와 보강 계획 없이 수업에 빠져 강사직에서 잘릴 것을 먼저 걱정한다. 그녀가 외계 생명체를 만나게 된 곳도 강사 노조의 농성장이었고, 그녀의 삶은 나처럼 비정규직 시간강사를 오래 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상어』편에는 아마도 그녀와 남편의 얘기일 것 같은 묘사도 짤막하게 실려있다. 중년에 만난 부부. 그들은 곧 자연스럽게 닥칠 노화, 질병, 돌봄,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 ‘언젠가’가 조금은 느리게 진행되길 바라며 함께하기로 약속한다. 그녀가 그린 노조 위원장님(남편)과의 장면 장면은 짧지만 깊고 솔직한 삶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뒷머리 쭈뼛 서게 만들었던 『저주토끼』보다 난 『지구 생명체는 항복하라』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어쨌든...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얘기다.
최근에 출간된『너의 유토피아』(2025) 역시 소설집이다.
‘너의 유토피아’라...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게 다분히 디스토피아적인 얘기일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그녀 특유의 유머와 골 때리는 반전도 기대했다.
역시나.... 기대하던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작품이었다.
『너의 유토피아』가 그리는 미래는 인간이 떠나버린 암울한 회색의 도시다. ‘비생물 지성체’인 ‘나’는 자신의 정체성(이동하는 존재)을 지키면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떠돈다. 우연히 뒷좌석에 태운 또 다른 ‘비생물 지성체’는 ‘나’와 호환되지 않는 체제로 운영이 되는 탓에 서로 원활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지만, 그가 건네는 질문에 답하며 유대감을 쌓는다. 기계들끼리 쌓는 인간다운 연대감이라니... 괴물의 공격으로 전력과 기능을 잃고, 친구마저 잃고 애도하는 장면에선 역시 사정없이 눈물이 뿜어져 나온다.
“너의 유토피아는 어때?”
“일어나”
“일어나 봐”
그 외 다른 작품들도 아주 재미있다. 물론 아주 소름 돋는 결말(『여행의 끝』)을 가진 작품도 있고. 그녀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150세가 되는 미래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을 그린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어떤 변화 발전이 있다 해도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들이 있을 것이다.
슬프지만... 그게 인간인 것 같다.
인간이, 그것도 따뜻한 시각을 가진 작가가 그린 미래는 온통 회색으로 기계 반 인간 반의 세상이지만 그조차도 차고 넘치게 인간 적이다.
그녀의 ‘결’과 ‘세계관’을 존중한다.
물론 그 엉뚱한 반전엔 사정없이 웃음을 날렸고.
“너의 유토피아는?”
“1부터 10까지”
그래서,
나의 유토피아 지수는 얼마일까?
분노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버둥거리고 있지만 여전히 생존하고 있으니 한 5쯤 되려나?
아직은 인간 위주인 세상인 게 왠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