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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읽기

안녕하신지요?

by 새벽

“If someone asks you how you are, you are meant to say FINE. You are not meant to say that you cried yourself to sleep last night because you hadn't spoken to another person for two consecutive days. FINE is what you say.” (Honeyman, 2017, p. 113)


백퍼 공감하는 quote다.

누군가 물어오는 안부에 긍정의 답을 하는 사람 중 정말로 잘 지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누군가 묻는 ”How are you? “에는 그저 습관적으로 “Fine, thank you.”로 답하는 것이라 배운 것 같다. 나도 다른 답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 안녕한가?


소설 『Eleanor Oliphant is completely fine』(Honeyman, 2017)의 주인공 엘리너는 좀 별난(quirky) 인물이다. 그녀의 일상은 당신과 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10%쯤 빠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그녀는 시종일관 혼자다. 일주일에 한 번 전화 통화를 하는 엄마가 있다고 하지만, 그 엄마도 실체가 별로 없다. 물론 주변 인물은 있다. 회사 동료도 있고 스쳐 지나치는 이웃도 있지만 그들은 배경에 불과하다.


그녀의 하루, 일주일엔 다른 등장인물이 없다.


위탁가정(foster family)을 전전하며 자랐고, 현재는 작은 디자인 회사의 경리부서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녀는 그럭저럭 자립이 가능한 이 상태가 만족스럽다고 여긴다. 몇 페이지만 읽어도 독자는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게 왜 그렇게 어색하고 어리숙한지 금방 이해하게 된다.


완전히 무해하지만 어딘가 불편해서 가벼운 대화만으로도 뭔가 찝찝함을 남기는 사람.

약간 기이하단 느낌을 주기도 하고 때론 불쾌하단 느낌마저 들게 하는 사람.

하지만 지긋이 보다 보면 대인 관계 지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어쩌면 친구가 절실히 필요할지도 모르는 사람.


우리는 보통 그런 사람들을 불편해한다. ‘사람은 착한데....’라고 시작하는 묘사 뒤에는 꼭 but이 따라오고, 그 사람과 선뜻 친구가 되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까지... 나 살기도 피곤한데...


아마 그래서 엘리너는 늘 혼자였을 거다.


먼발치에서 본 한 로컬 밴드의 리드 싱어가 운명의 짝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사로잡혀 그와의 자만추 순간을 모의하는 모습을 보면... 서른 살의 어른인데... 안타깝기 그지없단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에 대한 허상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순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시는데 (독자는 처음부터 그녀가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참... 다행인 건, 레이먼드라는 진짜 친구를 갖게 된 일.

골치 아파질 수 있고, 귀찮을 것을 알지만 친구라는 이유로 그녀 옆에 있어 주는 사람...

좋은 사람...

그리고, 진짜 친구...

일생이 외롭고 안쓰러웠던 엘리너의 옆에 신이 머물렀던 짧은 순간...


엘리너란 인물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서인지 아이패드를 놓을 수 없게 한 소설이었는데 결말은 좀 섬뜩했다. chronic depression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던 엘리너는 PTSD와 여러 복합적인 이슈를 갖고 있었다. 어쨌든 서서히 깨어난 그녀는 자신의 과거 트라우마를 마주 보기 시작한다. 그녀가 방어기제로 오랜 시간 구축해 온 환각을 깨고 엘리너로 온전히 서는 데는 아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도 내 안의 엘리너를 자주 발견한다.

나는 레이먼드처럼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내겐 레이먼드 같은 친구가 있나?

가끔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사정 얘기를 나누는 친구? 중 레이먼드처럼 내게 손을 내미는 친구는 과연 있을까?


이미 용기 있게 자신의 이슈를 마주 보고 있는 엘리너가 반드시 길고 힘든 치료 과정을 마치길 응원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레이먼드가 되어 주고 싶다.


그녀는 결코 completely fine 하지 않지만,

결국엔 completely fine 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을 살아내길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정말로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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