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젊은 작가의 소설집 (김기태, 2024)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와 구매했다. 물론 강호에 숨은 고수들이 많아, 꼭 무슨 무슨 문학상 같은 타이틀을 달고 있지 않아도 좋은 글,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고 많지만 그래도 ‘그랜드 슬램’이란 단어는 역시 힘이 센 단어인가 보다.
에....
우선 기막히게 효율성을 강조한 문장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문단이 이루어졌는데, 그 안에는 뉴밀레니엄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의 특징이 또 기막히게 잘 요약돼 있었다. 리듬감 있고 약간 겉멋이 느껴지는 문장을 잘 쓰는 능력 있는 작가란 인상을 준다.
게다 그가 하는 얘기 얘기가 참.... 너무나 시의적절하다. 끊임없이 ‘소통,’ ‘다양성,’ ‘연대’ 같은 단어로 포장하는 사회 안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며 오히려 ‘해체,’ ‘고립,’ ‘위기’ 같은 단어가 더 떠오르게 하는 개인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두 주인공인 김 니콜라이와 권 진주는 중 2 때 같은 반에서 만나 서로를 ‘봉투 받는 아이’로 기억한다. 하얀 봉투를 전해 준 담임은 “둘이 친하게 지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며 두 아이를 돌려보낸다. 물론 두 아이가 친해질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게 끝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기립하시오. 당신도!” 콘을 보내고 같이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이가 된다.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p.134)
하지만 스물일곱의 니콜라이와 진주의 삶은 아주 버거워 보인다. 나름대로 살며 만남의 끝에는 각자의 궁색한 거처로 돌아가던 두 사람은 어른(꼰대?)들이라면 동거라 표현하겠지만 사실상 생존을 위한 ‘연대’인 ‘함께 살기’를 시작한다.
서로를 ‘친한 사이’라고 정의한 채...
왜 ‘인터내셔널’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두 주인공이 자주 쓰는 ‘기립하시오. 당신도!’ 콘이 혁명 가요인 ‘인터내셔널’에서 파생됐다는 점도, 고려인 후손 김 니콜라이와 한국인 권 진주란 두 다른 국적자의 만남도... 여러 사상가들이 인간은 각자 자기만의 세계를 형성한다고 했으니, 니콜라이와 진주라는 두 인물 = 두 다른 세계를 품고 있는 인물???
아마 작가는 여러 중의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삶이 버겁고 외로운 두 인간의 연대, 어울림, 사랑이란 얘기로 다가왔다. 뮤지컬 『빨래』의 솔롱고와 나영처럼...
나영이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을 노래하는 솔롱고의 손을 잡은 데는 혼자 버티는 버거움, 외로움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솔롱고는 나영의 사소한 문제 하나에도 시원스러운 답을 주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녀 옆에서 함께 버텨줄지 모르니까... 혼자가 아니라 그와 함께 버틴다면... 이런 서글픈 희망도 나영이 솔롱고를 끌어안게 한 이유 중 일부가 되지 않았을까?
내겐 이 이야기도 역사와 identity가 다른 두 사람 니콜라이와 진주가 서로를 끌어안는 이야기로 읽혔다. 함께한다고 해서 눈에 띄는 차이는 결코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게 현실이니까... 거소신고증을 들고 다니는 니콜라이는 여전히 한국 영주권 신청 자격인 연봉 삼천팔백만 원과는 요원한 삶을 살 것이고, 진주는 바라고 바랐던 9급 공무원의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열이 치솟아 오를 때 해열제를 사다 주는 서로가 있어 버거운 삶이 1 만큼이라도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친한 사이로...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p.143)
그 외 다른 작품들도 아주 쑥쑥 잘 읽혔다. 작가가 써 내려간 약간 건조하면서 기막히게 효율성 높은 문장들 때문에 오랜만에 형광펜으로 줄을 벅벅 그어가며 읽은 기쁨을 누렸다.
그가 「전조등」에서 그린 평범함이 내겐 굉장히 달성하기 어려운 삶으로 느껴져 엄청 쫄리긴 했지만, 나 역시 “근대 소설은 영웅이나 기사, 왕족이나 귀족보다 옆집에 살 법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풍부한 이야기가 있음을 발견했다.”라는 그의 주장에 백퍼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