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인의 편지』, 『감정의 혼란』
『낯선 여인의 편지』
그의 다른 노벨라처럼 단숨에 독자를 끌어당긴다.
유명 소설가 R은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께”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받는다. 60페이지 정도의 소설 전체가 낯선 여인이 보낸 편지 내용이다.
“제 아이가 어제 죽었습니다. 사흘 낮, 사흘 밤 저는 이 작고 가녀린 생명을 위해 죽음과 필사적으로 싸웠답니다.....”
“저에게 전부였고 여전히 전부인 당신이 아니면, 이런 절망의 순간 누구한테 털어놓겠습니까!.... 저를 전혀 모르는 나의 사랑이여.”
“당신의 부드러운 친절이 오직 저를, 저 하나만을 향한다고 생각했지요. 짧은 순간 제 안에서, 미성숙한 제 안에서 한 여인이 깨어났고, 그 여인이 영원히 당신에게 속하게 된 겁니다.”
“어둠 속에서 당신 곁에 있던 저는 누구였을까요? 지난날 한 때 사랑으로 불타오르던 소녀였나요? 당신 아이의 엄마였나요? 아니면 낯선 여인이었나요?”
깔끔하고 평탄하게 일생을 살아온 유명 작가에게 전달된 편지에는 낯선 여인의 굴곡진 인생이 쓰여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당신을 평생 사랑했다는 고백. 그리고 자신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이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유언의 말.
많은 여성을 만나고 헤어지던 R이 편지의 주인을 기억할 리 없다. 하지만 편지를 읽으면 그녀는 R의 주변을 무던히도 오래 떠돌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거리의 여자가 되어서는 그와 밤을 보낸 적도 여러 날 있었다. 여자는 그의 아이를 낳았고, 십 년 후에 다시 그와 만나지만, R은 십 년 전에 여러 날을 함께 보냈던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번번이 느끼지만 츠바이크의 디테일한 심리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프로이트가 엄지 척을 했다고 하는 게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라는 걸 여지없이 증명한다. 스토리 또한 어찌나 재미나게 전개되는지. 물론, 불편한 구석도 아주 많다. 왜... 여성이 이렇게 그려져야 했나. 남자에겐 왜 그렇게 관용적이기만 사회인 것인지. 그들의 이중적 삶의 태도는 왜 그리도 당연하듯 그려진 것인지...
R은 어쨌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는 사람 같다. 얼마나 의미 없는 만남을 많이 하며 살아왔으면 젊을 때 이웃집 소녀였던 여자, 한 때 여러 날을 함께 보내 자신의 아이를 낳고 키워온 여자, 그리고 십 년이 지나 사교 클럽에서 다시 만난 같은 여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할 수 있을까. 자신이 인연을 맺고 살았던 사람에 대해 저렇게까지 무관심할 수가 있다니. 여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이고 유언이었던 편지를 읽고 그의 세계가 흔들리며 슬픔과 절망에 힘겨워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마지막을 상상하고 싶지만... 왠지 그는 또 같은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갈 것만 같아져 씁쓸하다.
『감정의 혼란』
<추밀고문관 R폰 D교수의 사적인 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야기는 한 노교수가 다른 학자들이 자신에게 헌정한 논문집을 보며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나 자신조차 잊어버려 사라졌다 생각한 모든 것이 이 책자에 가지런히 간추려 저 초상화처럼 되살아난다.”
“이것이 정말 내 인생이었을까? (...)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뜻을 품고 지긋하게 굽잇길을 걸어 올랐을까?”
“우리는 무수한 순간을 체험하지만 내면세계 전체가 들끓는 순간은 단 한 번이다. (...) 이러한 마법의 순간은 수정의 순간과 마찬가지로 단 한 번 체험할 뿐,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비밀로 각자의 인생의 내면에 따뜻하게 간직된다.”
회상에 젖은 교수는 책자에 있는 모든 내용이 자신의 인생이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이 빠져있다며,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방황하는 청춘이었던 교수(청년)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베를린을 떠나 작은 지방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셰익스피어 세미나 수업을 하던 한 교수를 알게 된다. 그 후 청년은 교수의 윗집에 세 들어 살며 밤마다 그와 열정적인 토론을 한다. 교수 덕분에 학문에 대한 열정을 얻게 된 청년은 학구적이고,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교수와 일상을 함께하며 학자로서의 길을 찾아간다.
“젊은이 여러분이 한 나라를 이해하고 한 언어를 정복하고자 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가장 열정 넘치는 청춘기의 활기찬 형태를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먼저 시인들의 언어를 들어야 해요. (...)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며, 셰익스피어이며, 셰익스피어 시대 작가들이니까요. (...) 이 시대에는 세상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청춘이 약동해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까? 갑자기 글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말들이 수백 년 동안 나를 찾았던 듯 춤추며 달려들었다. 시행들이 너울너울 불길을 일으켜 나를 휩쓸면서 핏줄로 밀려오자, 날아가는 꿈을 꿀 때처럼 관자놀이에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교수는 주기적으로 괴팍함을 드러내며 청년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거기에 교수의 젊은 아내까지 청년의 일상에 끼어들어 그의 일상은 마치 교수와 아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보이는데... 무언가 청년을 세게 누르는 듯한 긴장감이 몰려든다. 무어라 정체를 꼬집어 표현하기 어려운 이상스러운 중압감. 자신의 모든 감각이 교수로만 향하는 듯한 집중과 변화를 청년 자신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 조금만 더 오래 지속된다면 뚝 끊어질 것만 같은 정신의 긴장.
“나에게 선생의 말은 복음서 저자의 말처럼 은총이자 율법이었다.”
“젊은이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므로 아름다운 모습이 필요하지 않다. 지나치게 활력이 넘쳐 비극적인 것으로 치달으며, 아직 순진한 탓에 우울함이 자신의 피를 달콤하게 빨아먹는 것을 기꺼이 허락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부인의 입술에는 마른번개가 억눌린 채 맴돌았으니, 분노를 터뜨리거나 분별없는 말을 하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부인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감추고 있는 어떤 비밀이 있으며...”
변덕스럽게 나타나는 교수의 괴팍함. 부인의 차가운 태도. 그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청년에 대한 뛰어난 심리묘사, 츠바이크는 독자에게 심장이 쫄깃해지게 하는 극적 순간을 안기는데 아주 능한 작가가 분명하다.
훗날 자신 또한 노교수가 되어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는 그. 지난날 노교수의 사랑에 응답할 용기는 없었지만, 자신(그는 아내와 자녀가 있다)에게도 유일한 사랑은 노교수였다는 여운을 남기는 고백.
내가 더 늙어 살아온 날들을 회상한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하게 떠오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교수의 자문(自問)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뜻을 품고 지긋하게 굽잇길을 걸어 올랐을까?”
물론, 그런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많은 이들은 아마 그렇지 않았을 듯. 어찌어찌하다 보니 길 하나가 보였고, 그 길로 가다 보니 지금 여기에 이 모습을 하고 있게 된 것이 아닐지.
어쨌든... 하나도 드러내지 않으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글빨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글로 읽고 있는데도 마치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그 아름답고 가슴이 간지러워지는 느낌적 느낌에 빠지게 했던 수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