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 마르크, 2006)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의 독재 정권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삶을 감시하기 위해 대규모의 감청 요원을 양성한다. 주인공 비즐러에게 당대 인기 극작가인 드라이만을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그는 드라이만의 집 곳곳에 도청 장치를 설치해 극작가와 애인 크리스타의 매분 매초를 들으며 감시하게 된다.
비즐러는 매의 눈으로 타인의 삶을 감시하는 삶을 살지만, 임무가 끝나고 집에 오면 혼자 외롭게 시간을 때우는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 중년 남성이다. 그가 감시하고 있는 타인, 드라이만은 누군가는 언제나 누군가를 감시하는 숨 막히는 환경 속에서도 타인을 염려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한다. 감시 대상자가 자신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비즐러에게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는 단순한 감청 대상자 이상으로 자리 잡는다.
비즐리는 드라이만의 집에 들어가 ‘브레히트’ 시집을 훔쳐 읽기도 하고, 드라이만이 자살한 극작가가 선물했던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 악보를 꺼내 피아노를 연주하자 그 곡을 들으며 눈물도 흘린다. 더 이상 그는 최고의 감청 기술자로 학생들 앞에서 드라이한 목소리로 자신의 기술을 또박또박 강의하던 교수의 모습이 아니다.
드라이만은 레닌이 베토벤의 소나타 (열정)을 두고 “나는 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혁명을 완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던 것을 인용하며 “진정으로 이 음악을 들은 이가 나쁜 사람일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데... 이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변화하는 비즐러를 아주 잘 설명하는 대사가 아닐지.
독재 정권과 관음적 감청이란 불편한 소재로 정권 유지의 작은 도구로 살아가던 한 인간의 변화를 그렸다는 게 아주 신선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그가 감청하고 지켜보았던 ‘타인의 삶’뿐이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인간 냄새가 나던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듣다 보니 위험에 빠진 그를 살리려고 스스로 위험한 선택을 하는 비즐리.
훗날 드라이만이 출간한 책의 헌정 문구.
To HGW XX/7 in gratitude
결정적 순간에 드라이만을 구했던 비즐리는 결국 스스로를 구원한 것이 아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