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되어서 사랑하게된 나
중년이 되어서 사랑하게 된 나
48세인 중년에 교회에서 이미 상담공부를 하는 집사님의 권유로 상담대학원에 입학하여 상담학 박사가 된 나는 내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나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니 타인을 이해하는 시선도 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나아가서는 꿈이 생겼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시골에서 청소년기까지 살았다. 지금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큰 오빠가 아버지 집에 살기 때문에 1년에 최소한 한번은 시골인 친정집에 간다. 가보게 되면 어렸을 때 느꼈던 시골 정서와 밤하늘의 별과 산은 그대로지만 집은 옛날 집들이 아니라 새로 개량한 집들이 보기에 좋기도 하지만 낯설기도 하였다. 우리 친정집도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전형적인 시골집이었으나 큰 오빠가 정년퇴직하고 부모님 집에 사시면서 편리하게 구조변경 하였다.
나는 4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큰오빠가 나보다 16세 많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오랜만에 온 부모님의 지인이 ”이 집에 이렇게 어린아이가 있었어요? “라고 물었을 때 우리 엄마는 ”그냥 생겨서 낳았어요. “라고 한 말이 그때는 못 들은 척 지나갔는데 그 말이 내 무의식에는 저장되었던 것 같다. 결혼 후 어느 날 그 말이 생각났다. 생각 난 것은 결혼 후지만 ‘그냥 생겨서 낳았어요.’라는 말이 성장 과정 나의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내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나쁜 말은 잘 하지 않는 아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만 싸울 줄 모르는 착한아이였던 것 같다.
결혼 후 하나님을 믿게 된 나는 나의 생명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은 계획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이 계획하여 우리 부모님에게 생명을 잉태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당당하며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사랑하는 습관이 되지 않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나의 감정과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하기보다 참고 표현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해야 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중년의 나이에 상담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인간 이해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차츰 나의 감정과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나의 성장 환경이 오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만큼 다른 사람이 이해가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유교 사상과 가부장적이며, 남아선호사상이 심하였다. 막내로 태어난 딸이 예쁘기도 했겠지만 ‘예쁘다’ ‘사랑한다’라는 표현보다는 여자가 다소곳해야 하고, 웃음이 담을 넘어가면 안 되고, 남자를 이기려고 목소리를 높이면 안 되고, 남자 옷을 타고 넘거나 밟아도 안 되고, 오빠들 밥상은 여자인 네가 차려줘야 되고, 밥 먹을 때 물심부름도 네가 해야 하고, 등등의 요구사항이 많았다. 나는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옆집에 사는 명자네 도 그렇다고 하였고 종화네 도 종순이 네도 다른 친구들도 그렇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부모님의 양육 방법에 익숙하여 별생각 없이 살았다.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부엌일과 설거지 청소 빨래는 여자가 하는 것으로 알고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님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그것 떨어진다’라고 했다고 하면서 부엌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였다. 걸레로 닦는 일은 더 싫다고 하였다. 친정에서 워낙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것으로 훈련된 나는 남편의 그런 생각과 행동이 기분 나쁠 정도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집 남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앞집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남자를 보고 알게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신기한 것을 본 것 같이 ”여보 앞 동에 아빠가 빨래 널고 있는 것 봐“라고 하면서 빨래 널고 있는 장면을 남편을 데리고 가서 보게 했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도와줄게.’라고 하지 않고 웃고 말았다. 그때 ‘웃음의 의미가 뭐야?’ ‘당신도 저렇게 도와주면 좋겠어’라고 궁금한 것과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한참 후에야 알아차렸다.
부모님의 양육 방법과 남아선호사상은 나의 의견을 주장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중년이 되어 상담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상담공부는 나의 정체성과 나를 알고,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과제이며 아는 만큼 삶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내가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 상담공부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남편의 인식이 변했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더니 아이들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