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와의 공생
채석장의 하루는 먼지에서 시작해 먼지로 끝난다.
기계가 돌면 먼지가 먼저 날렸고, 기계가 멈추면 돌가루도 잠시 숨을 골랐다.
바람이 늘 그 자리에 있듯, 채석장의 공기 속에는 언제나 먼지가 떠다녔다.
피할 수 없는 존재였다.
호태는 처음엔 벗어나려 했다.
마스크를 바짝 조여 쓰고,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먼지는 틈을 찾아 들어왔다.
눈과 코, 목을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먼지는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마지막 장면.
거센 바람 앞에서 궁사는 계산하지 않았다.
견디며,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활을 놓았다.
바람을 없애려 하지 않고 바람 속에서 쏘았다.
영화 속 '남이'는 바람을 계산하지 않았고 바람을 극복했다.
호태에게 바람은 먼지였다. 통제할 수 없다면, 함께 가야 했다.
암투병을 하던 그때처럼, 그가 선택한 것은 공생이었다.
먼지를 적으로 두지 않는다.
먼지가 하루의 중심을 흔들지 못하게 한다.
먼지 속에서도 호흡을 잃지 않고, 리듬을 유지한다.
피하지 않되, 무방비로 서지도 않는다.
겨울 북풍이 몰아치면 채석장은 적지였다.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울 만큼 돌가루가 휘몰아쳤다.
덤프 기사들조차 장비 고장을 핑계로 스크린동 접근을 꺼렸다.
퇴수조치가 내려진 겨울, 물청소는 금지됐다.
기계가 멈춘 짧은 틈을 비집고, 오직 삽으로만 석분을 치워야 했다.
하루 400 삽의 분량이 늘어났다.
'걸어서 먼지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호태는 자구책을 세웠다.
회사에서 지급한 2급 방진마스크 대신, 그는 자비로 1급 방진마스크를 샀다.
가격은 두 배였지만, 숨은 훨씬 편했다.
마스크 안에 여유 공간이 생기자 호흡이 달라졌다.
삼사일을 써도 성능은 유지됐다.
군대에서 지급품 대신 사제품을 쓰던 군인처럼, 이번에도 선택의 기준은 하나였다. 내 몸이다.
눈을 찌르는 돌가루 앞에서는 방풍 안경이 필요했다.
채석장에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오토바이 헬멧형 방풍 안경을 찾아냈다.
그제야 시야가 열렸다.
보인다는 것은 곧 살아남는다는 뜻이었다.
먼지는 실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대기실 바닥에는 늘 안전화에서 떨어진 석분이 쌓였다.
그래서 호태는 틈만 나면 비질을 했다.
그리고 걸레질을 했다. 책상, 소파, 캐비닛, 냉장고, 거울 위까지 손이 갔다.
실내로 들어오기 전에는 에어건으로 안전화 바닥까지 탈탈 털었다.
내 몸이 소중한 만큼, 동료의 몸도 소중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천평 형, 늘보 형과 함께 쓰는 대기실에서 호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먼지를 걷어냈다.
그것은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의 자존을 살리는 일이었다.
호태는 먼지를 부정하지 않았다.
먼지를 피하지 않았고 먼지와 싸우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은 그저
자신과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했을 뿐이다.
호태는 말한다.
"먼지는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