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의 계절! 관계를 회복하다.

냉랭함을 걷어 낸 중재자

by 또 래 호태

봄이 왔다.

봄은 따뜻함의 계절이기도 했지만,

호태에게는 무엇보다 늘보 형과의 갈등을 풀어야 하는 계절이었다.


겨우내 쌓인 감정의 얼음덩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아무리 몸이 강해지고 일이 빨라져도 마음은 여전히 동절기일 테니까.
일이 풀려도 사람은 안 풀리는 상태. 그건 견고했다.


그런데 이런 건, 억지로 깨려 하면 더 단단해진다.
자연스럽게 녹여낼 사람은 따로 있었다.


현장의 리더, 열주임이었다.

그는 늘 그랬다.

큰소리로 훈계를 하는 대신, 상황을 한 번에 정리해 버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말이 아니라 판으로.


장소는 터널이었다.

쪼 크럇샤와 콘 크럇사를 잇는 통로.

두 대의 진동피더가 설치된 그곳은,

기상이 나쁘고 기계 이상까지 겹치면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잔해물이 쏟아져 내리는 곳이다.

현장은 막막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닥은 미끄럽고, 공간은 좁았다.

삽질을 해도 삽질을 한 티가 잘 나지 않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날.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열주임이 먼저 삽을 들었다.

말없이, 망설임 없이, 그냥 몸으로 들어갔다.

“누가 해?”가 아니라 “내가 한다.”라는 태도였다.

그걸 보면 사람은 따라가게 된다.


천평 형도 곧장 발을 맞췄다.

늘보 형도, 할 수 없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나도 삽을 잡았다.


넷이서 함께

삽을 들고, 퍼내고, 밀어내고, 쓸어내고,

산더미 같은 잔해물을 끊임없이 밖으로 퍼 날랐다.

삽날이 자갈에 걸릴 때마다 쇳소리가 났고,

진동피더의 떨림은 발바닥을 통해 몸속까지 전해졌다.


말은 거의 없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좁고 먼지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는 그저 호흡과 리듬으로 일했다.

누가 먼저 퍼내면 누가 비켜 주고, 누가 밀어내면 누가 뒤를 받쳤다.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맞아 들었다.


그리고 그 묵묵함 속에서,

겨울 내내 쌓였던 감정의 장벽도 조금씩 무너졌다.
미움이 사라졌다기보다, 미움이 들어설 자리가 줄어드는 느낌.

함께 땀을 흘리는 동안,

‘저 사람도 결국 같은 현장에서 같은 먼지를 마시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다시 보였다.


딱 그만큼만, 마음이 누그러졌다.


작업이 끝난 뒤, 열주임이 내게 다가와 슬쩍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늘보한테, 고맙다 한마디 해라.”

그 한마디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억지로 화해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든 노동의 결론을 말 한마디로 매듭짓자는 제안.


말은 없었어도 오늘의 노동이 보여 준 진심이 있었고,

그 진심이 서로에게 전달됐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날,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원망도 함께 녹아내렸다.


봄이었다.

계절도 봄이었고, 마음도 조금씩—조심스럽게—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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