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호태-4)

춘천. 그다음 공공의 부엌

by 또 래 호태

「의학적 소견, 그리고 해방의 문」

2020년 11월 3일(수술한 지 만 2년이 되던 날)

세종충남대병원.

병원장은 고교 시절의 절친이었다.
친구의 배려로 호태는 어려움 없이 세 가지 정밀 검사를 마쳤다.


닷새 후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날,
그는 조용히 담당 선생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모니터를 보던 선생이 고개를 돌렸다.


환한 웃음.

그 미소 하나에 호태의 어깨가 스르르 내려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은 말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이제 책 쓰세요.”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호태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 두 단어가 2년의 고행과 기도를 대신했다.


진단실을 나서며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내 암중일기는 끝났다. 그리고 새로운 일기가 시작된다.’

그는 병원 문을 열며, 마치 세상 문을 여는 기분을 느꼈다.



「이름 없는 무공훈장」

호태는 군인으로서 받지 못한 훈장을 하나 받았다.

그 훈장은 다름 아닌 2년 만의 관해 판정이었다.

최단 시간에 암을 이겨낸 자신의 의지와 결행, 주치의가 인정한 오직 자신만의 자연 치유법.
그 모든 결과가 합쳐져 탄생한 훈장이었다.


생존율이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은 암투병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의 생존은 훈장처럼 반짝였다.

그 훈장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수여한, 단 하나의 생존 훈장이었다.


호태의 머릿속에 서울을 떠나올 때 남겨둔 보라매 공원의 아침 햇살이 떠올랐다.

그 빛은 여전히 그를 따라와,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고 있었다.



「대령숙수(待令熟手)」


대령숙수는 호태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별명이었다.

‘대령숙수’란 임금의 입궁 영을 기다리며 궁 밖에서 대기하던 남자 궁중 요리사를 뜻한다.

요리를 좋아하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나누는 일을 즐겨하는 호태에게 그 이름은 참으로 잘 어울렸다.
요리를 즐기는 예비역 대령 — 그것이 바로 대령숙수였다.


호태가 고흥에서 2년 만에 관해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의지나 행운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손끝에서 비롯된 바른 섭생(攝生)이 가져다준 치유였다.

오랜 세월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그는 자연스레 요리를 익혔다.


식탁은 그의 실험대였고, 조리도구는 그의 생명 유지 장치였다.

건강한 밥상에 대한 그의 오랜 습관은 그때부터 길러졌고, 결국 그것이 그를 살려냈다.


그리고 춘천.
그의 삶은 다시 한번 새로운 조리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2012년 춘천」


부대 근처에 작은 식당이 하나 있었다.

숙성된 김치 양념으로 주문 즉시 버무려 내는 김치맛이 일품이었다.

첫맛은 시원했고, 뒷맛은 깊었다.

호태는 그 맛에 이끌려 어느새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주 들렀다.


단골이 되었고, 자진해서 식당의 홍보실장이 되었다.

그의 선한 영향력 덕분에 식당은 날로 번성했다.

사장님은 종종 말했다.

“대장님 덕분이에요. 우리 가게도 숨 쉬고 저희도 숨을 쉬게 됐습니다.”


호태는 웃으며 대답했다.

“김치가 숨 쉬는 식당은 절대 문 닫을 일 없는 거 아시지요?”


양주로 발령을 받고 춘천을 떠나던 전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사장님이 말했다.

“대장님,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제 김치 비법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오세요. 대장님은 저희의 은인이시니까요.”


호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 비법이라니, 그건 사장님 생존의 비밀 아닙니까?

배울 수만 있다면 영광이지만… 글쎄요, 그런 날이 올까요?.”


그때는 몰랐다.
정말로 자신에게, 세상에 나갈 무기가 필요하게 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재회, 그 약조는 몇 해 뒤 그의 삶을 구원하는 열쇠가 되었다.

8년 만의 재회였다.
사장님은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한 얼굴로 호태를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대장님. 대장님 덕분에 이만큼 커졌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호태는 미소로 답했다.
“맛있는 김치, 배우고 싶어 다시 왔습니다.”

“좋습니다. 기꺼이 알려드려야죠.”


그 말과 함께, 한 달 반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천일염의 간수를 빼는 법,

배추 꼭지를 돌려 깎는 손질 요령,
수백 포기의 배추를 일정 농도로 절이는 기술.

찹쌀 풀을 쑤는 손길의 온도,
부추를 고명으로 올릴 때의 알맞은 길이,
손님이 오면 즉석에서 김치를 버무려 내는 노하우까지.


그 모든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세월의 감각과 인내의 결과였다.

손끝의 힘이 빠지고, 팔에 통증이 번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호태는 깨달았다.

그동안의 요리 실력은 그저 흉내에 불과했다는 것과
음식은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그린 후 가슴으로 느끼며 정성을 다해 익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즉시 제자의 자리로 돌아가 맛의 정수와 숙성의 비밀을 배우고 익혔다.


이별의 시간 그리고 비법의 전수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담근 김치를 맛본 사장님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엄지를 들어 올렸다.

“대단하세요. 이 짧은 기간에 제 맛을 거의 완벽히 구현하셨어요.”


호태는 웃으며 답했다. “살아내야 하니까요.”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디 가서 ‘대령숙수’라 불려도 부끄럽지 않겠네요.”

그녀의 말에 호태는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제 김치가 대장님 재기에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제 영광입니다.”

떠나기 전날, 사장님은 고이 접은 메모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양념 재료의 비율과 김치 종류별 숙성 비법이 적혀 있었다.

“이건 영업 비밀이에요.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면 드릴게요.”


호태는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건강이 최곱니다, 대장님. 그리고 언제든 궁금하시면 다시 오세요. 기꺼이 애프터 서비스 해 드릴게요.”


그 말에 호태는 깊이 머리를 숙였다.
감사와 겸허가 동시에 밀려왔다.

‘살기 위해 배웠던 김치가, 다시 나를 살려내겠구나.’


그때 그는 몰랐다.
이 김치가 훗날,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그다음 세상을 구하게 된다는 것을.



「잠시, 삶의 숙수(熟手)로 살다.」


관해 판정을 받은 호태.
그는 암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였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여전히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싸움을 이어가는 수많은 암 환우들이 있었다.


2021년 2월.

방장님의 권유로 포천에서 머무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환우 단톡방에 짧은 글 하나가 올라왔다.

“양배추 김치를 담갔는데 너무 맛이 없어요. 결국 다 버렸네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절망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호태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다짐이 되살아났다.

‘더 아픈 환우,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자.’


그 순간, 기억의 문이 열렸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보름째 되던 날,

보라매 공원에서의 목격했던 경이로웠던 장면.

조금 덜 나이 든 여인이 조금 더 나이 든 노파를 부축하며 천천히 트랙을 걷던 모습.


“그러니까, 너도 걸어라.”

지금이야말로 ‘공공, 함께 이바지’ 철학을 행동으로 옮길 때였다.

조금 덜 아픈 자신이 조금 더 아픈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그것은 김치였다.


이윽고, 호태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제가 양배추 김치 맛있게 담글 줄 압니다. 좀 나눠드릴 수 있는데~~~”

그 한 줄이 올라간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단톡방은 북새통이 되었다.
신청이 순식간에 백 건을 넘겼다.


방장이 급히 말했다.

“대령님, 너무 많아요. 스무 분만 선별해서 나눔을 하시죠.”

호태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방장님. 원하시는 분 다 신청받아 주세요.
저로서는 덤으로 사는 목숨입니다. 덤으로 사는 사람은 더 베풀어도 됩니다.
그리고 제가 덜 아프잖아요, 은혜를 갚아야지요.”


그렇게 그는 다시 삶의 숙수(熟手)로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기쁨 —
그것은 그가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가장 그 다운 방식이었다.



「108명에게 김치를 보내다」


신청 인원은 108명.

호태는 서른여섯 명씩 세 차례에 걸쳐 무료 나눔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치 종류는 세 가지. - 배추김치, 백김치, 양배추 김치 -

1인당 각 1kg씩, 총 3kg를 보내기로 했다.


먼저 김치 양념을 숙성해야 했다. 양념이 제 맛을 내기 위해 필요한 기간. 최소한 2주.

모든 재료는 직접 손질했고, 숙성까지 홀로 진행했다.

50Kg 가까이 되는 업소용 맷돌을 샀다.


손이 모자랐지만, 마음이 앞섰다.

그가 담근 김치는 단순한 김치가 아니라 아픈 이웃에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였다.

그 소식이 퍼지자 유방암 환우 단톡방은 순식간에 ‘김치 무료 나눔’ 이야기로 도배됐다.

감사와 궁금함이 뒤섞인 댓글들.


그리고 뜻밖에도 도우미를 자처하는 손길이 이어졌다.



「공공(共供) 부엌의 진용」

친구가 달려왔다. 친구는 갑상선암 2기를 앓고 있었다.

미얀마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목사님 부부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코로나 때문에 더 이상 미얀마에서 머무를 수 없어 일시 귀국해 봉사할 곳을 찾던 중이라 했다.


남편인 목사님은 알츠하이머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상황이었고,
부인인 선교사님은 폐암 4기. 게다가 성대 절제로 목소리를 잃은 분이었다.

인공후두기(음성 보조기)를 통해서만 겨우 대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마늘하고 생강 다듬는 건 제가 달인이에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그렇게 네 사람의 인연이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공공(共供)의 부엌에 모였다.

호태의 손, 친구의 손, 그리고 선교사 부부의 손.

누군가는 마늘과 생강을 다듬고 누군가는 배추를 절이고, 누군가는 찹쌀가루로 풀을 쑤었다.


그날 호태는 생각했다.

이제 진용이 갖춰졌다. 함께 이바지할 팀의 진용.

비록 몸은 건강하지 않았으나 이웃을 향한 사랑, 스스로 짊어진 봉사의 사명 하나만큼은 곧고 강한 팀.

그들 넷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부엌을 만들고 있었다.



「공공부엌의 웃음」


조금 덜 아픈 환우가 조금 더 아픈 환우를 위해 김치를 담그는 현장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각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드는 순간, 생전 처음 만난 네 사람은 평생의 가족이 되었다.

배추를 절이는 동안 마늘 향이 부엌을 채웠고, 그 향 속에서 각자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


30년 가까이 교회를 멀리했던 친구가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우렁찼고 그 울림은 좁은 부엌을 가득 메웠다.

‘만남의 축복’이 이끌어 낸 목청이었으리라.


마늘을 다듬던 선교사님이 음성보조기의 높낮이가 없는 일정한 톤으로

“내가 목소리만 살았어도 쟤보다 훨씬 우렁찰 걸 “

그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선교사님은 빙그레 미소 지었고 나머지 셋은 포복절도했다.


그때 호태는 알았다.

진짜 유머는 건강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상처를 품은 사람에게서 피어난다는 것을.


그녀의 말엔 촌철살인의 통찰이 있었다.
그 통찰은 호태가 오래도록 믿어온 지도자의 덕목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무심한 듯 툭 던진 기계음 한마디가 부엌 안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단숨에 평정할 때마다
박장대소가 터졌다.


그 웃음은 단순한 흥이 아니었다.
살아 있음의 증거였고, 그리고 함께 있어서 더 커진 유쾌함이었다.


1차 무료 나눔 김치가
신청한 환우 36명의 집에 도착하던 날 단톡방은 감사와 찬사로 들끓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처음이에요.”


그때였다.

수십 개의 메시지와 답톡이 빗발치는 가운데, 하나의 글이 방 안의 공기를 멈추게 했다.

“곡기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보내주신 백김치 국물 한 모금을 겨우 넘겼습니다.
천국의 맛이더군요. 조금만 일찍 숙수님의 백김치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맥없이 곡기를 끊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천국에 가서도 방장님과 대령숙수님을 축복하겠습니다.”


단톡방은 한동안 정적에 잠겼다.
호태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 애타게 답장을 남겼다.

“제발 약한 말씀 마세요. 건강을 회복하실 때까지 얼마든지 보내드릴 테니, 기다려주세요.”


잠시 후, 짧은 답톡이 올라왔다.

“제게 보내주실 거, 더 아픈 분께 보내주세요.”


그날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 호태의 개인 톡에 문자가 도착했다.
환우의 따님이었다.

“엄마가 오늘 새벽에… 하늘로 가셨습니다. 유언을 남기셨어요. ‘그 김치 꼭 주문해라’ 하시더라고요.”


호태는 카톡 창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춘천의 맛’으로 단 한 번 맺어졌던 인연, 백김치 국물 한 모금의 생명은 꺼진 뒤였다.


그는 천천히 속삭였다.

“그래요. 당신께서 천국에서는 꼭 곡기를 이어가시길 기도드립니다.”

부엌 한편에서 양념 숙성통이 보글거렸다.
그 소리가 마치 기도의 숨결처럼 들렸다.


열흘간의 강행군 끝에, 세 차례에 걸친 108명 김치 무료 나눔이 마무리되었다.

이 나눔은 단순한 배달이 아니었다.
조금 덜 아픈 네 명이, 조금 더 아픈 환우들을 위해 손을 모은 일이었다.


그 유쾌하고도 눈물겨운 연대의 이야기는 훗날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책의 제목은 〈유쾌한 4명(使命)〉

단톡방의 환우들은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김치를 담갔던 사람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공공(共供) 부엌의 여운」


김치 나눔이 끝나고 단톡방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김치 판매 요청이 폭주한 것이다.

“이 김치, 비싸게라도 사고 싶어요.”
단톡방은 판매 여부에 대한 문의로 들끓었다.


모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김치,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찾고 있었다.

시중 김치에 대한 불신, 그중에서도 암 환우들의 불안은 더 컸다.


하지만 호태는 혼자였다.
혼자서 김치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신용 문제로 인해 김치 제조 허가를 받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결국 그는 단톡방에 저간의 사정과 양해의 글을 올렸다.

방 안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따뜻한 격려가 이어졌다.

“괜찮아요. 지금까지도 충분히 감사했어요.” “판매하시면 꼭 연락해 주세요.”


호태는 한 줄의 답장을 남겼다.

“꼭 다시 여러분 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살아계셔야 합니다.”

그 문장 안에는
감사와 미안함, 그리고 다짐이 함께 담겨 있었다.


호태의 첫 공공(共供) 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후, 그는 ‘항암배추 유통 사업자’와 손을 잡고
김.만.프 — 김치 만 포기 기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선의와 실행만으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프로젝트는 뜻과 달리 흘러갔고, 그는 억대의 빚을 떠안은 채
다시 정처 없는 삶으로 내몰렸다.


김치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다.

'세상 어느 변화의 꿈도. 내 것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렬한 깨우침이었지만

호태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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