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제4권 1장)

코로나 국면

by 또 래 호태

첫 출근 ┃ 기준 확인 책임관


건물 입구에서 출입자 전원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었다.
정세린은 출근할 때마다 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단순한 체온 측정이 아니라, 통과 여부를 가르는 첫 기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37도 이하입니다.”


방역 요원이 결과를 말하자마자, 다음 출입자가 앞으로 나왔다.
정세린은 스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바닥에 붙은 거리 유지 스티커 위에 발을 옮겨 놓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췄다.
탑승 가능 인원은 네 명으로 제한돼 있었고, 이미 세 명이 서 있었다.
정세린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누군가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봤고,
누군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 화면을 넘기며 확진자 속보를 읽고 있었다.


정세린은 그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 대신 숫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사망자 수.
입원 대기자 수.
가동 가능한 병상 비율.


그 숫자들이
추상적인 통계에서
구체적인 한 사람의 얼굴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안쪽에 서 있던 탑승자 한 명이 기침을 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누가 먼저 내리고,
누가 남아야 하는지는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 상황을 판단할 기준을
아무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세린은 그 장면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 상황이 어떻게 끝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기준이 없을 때,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하지 못하고
서로를 피하게 된다.


회의실 문 앞에서 손 소독제를 눌렀다.
비닐장갑을 끼지 않은 오른손이 잠깐 떨렸다.
그 떨림은 긴장 때문이 아니라, 아직 몸에 남아 있는 피로 때문이었다.


장례식이 끝난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세린은 검은 옷을 입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업무용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가 애도의 연장이 아니라 업무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회의실 입구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출근은… 너무 이르신 것 아닙니까.”


정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늦었습니다.”


그 말은 상중이라는 개인 사정을 기준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이미 여러 번 확인되지 않은 결정이 반복된 시간을 기준으로 한 말이었다.



[장면 : 실무자 보고]

* 배석 : 공공 기준 보전관(강호태)

☞ 배석 이유 : 정세린 직위(기준확인책임과) 대행 수행


회의실 안에는 이미 관련 자료들이 정리돼 있었다.
보고용 문서와 상황표, 변경 이력이 출력된 종이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실무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내용을 제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잠시 침묵


경과보고서 # 1

경미한 사고 이후, 조직은 무엇을 바꾸었는가



< 개 요>


큰 사고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2018년 11월, 한 경미한 사고가 있었다.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고, 보고서로 정리하기엔 익숙한 유형이었다.
그러나 그 사고 이후, 국공위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질문이 시작됐다.


“우리는 사고를 설명하는 조직인가, 결정을 확인하는 조직인가.”


아래는 그 질문이 어떻게 제도와 조직을 바꾸었는지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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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말 ┃ 경미한 사고 발생

• 사고 성격: 인명 피해는 경미

• 현장 상황: 지침이 대응 중간에 변경됨

• 문제 지점: 변경된 지침이 확인되지 않은 채 적용

내부 인식

• 사고의 크기보다
‘결정이 확인되지 않은 구조’가 핵심 문제로 재분류됨

• 기존 분석 방식(현장 과실·매뉴얼 미준수)의 한계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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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말 ┃ 국공위 내부 검토 착수

국공위 기능 점검

확인된 사실 : 사고 이후 분석 기능은 존재, 사고 이전 결정을 확인·고정하는 기능은 부재

핵심 인식

•“사람이 실수했다”가 아니라
“확인하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는 구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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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 외부 검증위원 대담

• (비상임) 부위원장 – 정세린 면담 진행

 • 목적: 개별 사건이 아닌 국공위 운영 구조 검증

대담 핵심

• 신규 직위는 ‘이미 마련된 자리’가 아니라 신설 검토 중인 자리로 전제

• 역할·책임·권한·기능 미확정 상태를 공식 인정

쟁점 정리

• 누가 결정을 확인하는가

 • 기록은 누구를 보호하는가

(삭제 불가, 국가 보존, 정권 교체 후에도 유지)

결론

사람을 먼저 앉히지 않는다

제도가 먼저 작동·검증되는 것을 합류 조건으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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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상반기 ┃ 내부 운영 원칙 정비

내부 합의 도출 : “확인 없이는 정상 절차로 인정하지 않는다”

• 지침 변경·예외 적용 시 사전 확인 필요성을 내부 원칙으로 고정

확인 기록 : 삭제 불가, 국가 기록으로 보존

조직 인식 변화

• 국공위는 ‘사후 설명 조직’이 아니라 결정 이전 확인 조직으로 재정의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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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하반기 ┃ 조직 위상 정비

국공위 성격 : 자문 중심 → 조정·검증 성격 강화

선지훈, 다음 조건을 전제로 상임 부위원장직 수락

권한은 개인이 아니라 제도에 귀속

☞ 성과 평가 대상 제외

☞ 확인·기록 중심 운영 유지

결과

• 일부 사안에서 확인 기능 시범 적용

• “왜 결정했는가”보다 “누가 확인했는가”를 묻는 관행이 형성됨 ----------------------------

2020년 초 ┃ 위기 국면에서의 검증

코로나 국면 진입

지침 변경·예외 적용 빈번

결과

2019년 정비된 확인·기록 구조가 실제로 작동

국공위는 :

결정을 내리지는 않되

결정의 기준·책임·기록을 확인하는 조직으로 기능

상태

• 제도·직무·권한·기록 체계 준비 완료

• 합류 트리거 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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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이 연대기는 큰 사고가 어떻게 조직을 바꾸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작게 어긋난 결정 하나가 확인되지 않았을 때, 조직은 무엇을 잃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 조직은 사람보다 먼저 확인을 자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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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 실무자 보고(계속)]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지금 이 상황에서는 차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세린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의자를 당기지도 않은 채, 테이블 맞은편에 서서 말했다.


“어디에서부터 확인이 끊겼습니까.”


실무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침 변경 시점입니다.”


정세린이 다시 물었다.


“그 변경 사항을 누가 확인했습니까.”


실무자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때는 긴급 상황이어서… 절차를 모두 따르기 어려웠습니다.”


정세린은 그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이어갔다.


“그 변경이
기존 기준을 공식적으로 변경한 것인지,
일시적인 예외 조치였는지,
그리고 그 판단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는지 확인되었습니까.”


실무자는 답하지 못했다.


정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는 놀람도, 분노도 없었다.
이미 여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해 온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때 호태가 조용히 말했다.


“확인하도록 설계된 절차 자체가 없었습니다.”


정세린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호태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반문도, 추가 질문도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시선만 있었다.


정세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병원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정세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출입 기준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바뀌었습니다.
누가 기준을 변경했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고,
그 변경 과정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정세린은 잠시 손을 내려다봤다.


“그 결과, 어머니는 보호자 없이 혼자 병동으로 들어가셨고
저는 병원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결정에 대해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회의실 안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정세린은 고개를 들었다.


“그 결정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그녀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 결정을
누가 확인했고,
누가 책임졌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정세린은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그래서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녀는 의자를 당겨 처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결정을 더 잘하자는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정세린은 말을 고르고 천천히 이어갔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그리고 집행되기 전에
그 결정이 기준을 통과했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호태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만든 겁니다.”


정세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지금 이 기능은 제도적으로도,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는 오늘부터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세린은 서류를 한 장 넘겼다.


“그리고 이 일은 개인적인 경험을 해소하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했다.


“제가 겪은 일처럼
확인되지 않은 결정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일입니다.”


정세린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확인 절차가 없는 결정은
집행될 수는 있어도 국가의 결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회의실 안에서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정세린은 분명히 알았다.


이 자리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다시는 혼자 판단의 결과를 감당하지 않게 만드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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