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_ 멈춤의 조건
업무 보고가 끝나자 회의실 공기가 느슨해졌다.
정세린은 노트를 덮지 않았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문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확인 없음.
그때 강호태가 말했다.
“정선생.”
정세린이 고개를 들었다.
“내 방으로 잠깐 갑시다.”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정세린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보고서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호태의 표정을
이미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태의 방에는 서류가 쌓여 있었다.
연도별, 사안별, 사고 전·중·후로 분류된 파일들이었다.
이 자료들은 호태가 공공기능 검증관으로 근무하며
2년간 직접 수집·검토한 현장 기록이었다.
자료가 방대했다.
"거동이 불편하시던데~~~"
"내근으로 자리를 옮겨 정리할 수 있었어요."
잠시, 침묵
"정선생."
"이 기록들, 공통점이 뭔지 보입니까."
정세린은 가장 위에 놓인 파일을 집어 들었다.
현장 점검 결과, 조치 내용, 관계 기관 보고까지
모두 정리돼 있었다.
“결론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호태가 고개를 저었다.
“결론은 있습니다. 통과시킨 근거가 없을 뿐입니다.”
정세린이 시선을 들었다.
“확인을 안 했다는 말씀이군요.”
“정확히는,”
호태가 말을 이었다.
“확인이라는 행위를 권한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겁니다.”
정세린은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호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헌법적 가치라고 말합니다.”
호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런데 그 둘이 작동하려면 뭐가 먼저 있어야 합니까.”
정세린이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안전이요.”
“그렇죠.”
호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동체의 안전입니다. 사실상 최상위 가치입니다.”
호태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중요한 가치가 왜 권한으로, 절차로, 법으로는 정리돼 있지 않았을까요.”
정세린의 미간이 조금씩 좁아졌다.
호태의 질문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호태가 낮게 말했다.
“저도 검증관으로 일하기 전까지 이걸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보고서를 가볍게 두드렸다.
“사고가 나면 우리는 늘 결과를 물었습니다.
왜 통과시켰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정세린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제도화되지 않았던 거군요.”
“예.”
호태가 단정했다.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정세린은 그제야 자신의 어머니 얼굴이 스쳤다.
기다리다 놓친 수술 일정.
설명은 있었지만 확인은 없었던 시간.
정세린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늦었네요.”
“많이 늦었습니다.”
호태가 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늦출수 없는 시점입니다.”
“코로나 때문이군요.”
“그렇습니다.”
호태는 단호했다.
“초기 혼란은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확인 절차가 없어서 생겼습니다.”
호태는 정세린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정선생.
확인권은 새로운 통제가 아닙니다.
멈추게 하는 권한도 아닙니다.”
정세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결정을 통과시키기 위한 최소 조건입니다.”
호태가 마무리했다.
“이게 없으면 공동체는 계속 운에 맡겨집니다.”
정세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는 걸
이제야 인식한 표정이었다.
“그럼…”
정세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답은 하나겠네요.”
“법입니다.”
호태가 먼저 말했다.
“권고가 아니라 *통과 조건으로 고정하는 법.*”
정세린은 일정표를 떠올렸다.
손에 든 펜으로 날짜를 짚었다.
“이틀 뒤에 확인권 제정 관련 최종 토의가 있네요.”
그리고 시선을 들었다.
“그럼 이 기록들은…
그 자리를 위해 모아둔 겁니까.”
“예.”
호태의 대답은 짧았다.
“지금 시급합니다.”
정세린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코로나 때문이죠.”
호태는 답하지 않았다.
정세린이 이어갔다.
“방역 지침이 바뀔 때마다 현장은 흔들렸고,
확인은 없었고, 책임만 남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호태가 대답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부위원장님이 비상임에서 상임으로 임명될 때 조건을 거셨어요.”
“확인권 제정.”
“예.”
“국공위가 기능하려면 권고 기관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맞습니다. 확인 기관이어야 합니다.”
호태는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대통령실에 초안 보고는 들어갔습니다.”
“보고회의는요.”
“곧 잡힐 겁니다.”
정세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남은 건 하나네요.”
“뭡니까.”
“확인이 무엇인지 지금 여기서 정리하는 것.”
호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선생.”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내일 교실을 보셔야 합니다.”
정세린은 일정표를 열었다.
내일 일정이 표시돼 있었다.
* 초대교실 방문 *
호태가 말했다.
“확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아이들이 보여줄 겁니다.”
호태는 문을 열며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국밥집입니다.”
“누굴 만납니까.”
“이 기준을 교실에서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정세린은 가방을 들었다.
아직 모든 개념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해졌다.
“만나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