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못지않은 뜨거움
청춘의 사랑처럼 불타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뜨겁지 않은 것도 아니다.
동이와 호태의 열정은 불꽃이 아니라 지속되는 열이다.
젊은 날의 열정이 “터지는 마음”이라면, 이들의 열정은 “버티는 마음”에 가깝다.
더 정확히는, 서로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다시 살아내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동이는 사랑을 믿지 않기로 했던 사람이다.
두 번의 상실은 그녀에게 “사람은 결국 떠난다”는 결론을 남겼다.
그래서 동이의 열정은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는 힘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가올 때 도망치지 않는 힘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도, 과거가 먼저 몸을 잡아끈다.
또 잃으면 어쩌지.
그 두려움이 목을 조일 때, 동이는 이상한 선택을 한다.
예전 같으면 닫았을 문을, 이번에는 아주 조금 연다.
그 ‘조금’이 동이의 열정이다.
중년의 열정은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용기로 증명된다.
호태의 열정은 더 다르다.
그는 무너진 사람이었다.
명예도 관계도 몸도 마음도 쪼개진 채,
채석장 바닥에서 하루를 치우며 자신을 수습하던 사람.
그런 그에게 사랑은 사치였다.
그런데 동이 앞에서만은 사치가 아니라 태도가 된다.
호태는 이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얻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 “지키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동이의 하루, 동이의 원칙, 동이의 상처가 더 덧나지 않게.
그 지키려는 마음이 호태의 열정을 만든다.
열정은 소유가 아니라 보호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둘의 끌림은 화려한 유혹이 아니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관계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결핍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오래된 마음을 천천히 데운다.
동이는
호태의 말이 아니라 침범하지 않는 거리에 끌린다.
호태는 동이의 미소가 아니라 견딘 시간의 품격에 끌린다.
한 사람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 같은 남자”에게,
다른 한 사람은 “나를 비웃지 않을 것 같은 여자”에게 마음이 간다.
그것은 중년의 본능 같은 것이다.
이들의 열정은 밤에 더 선명해진다.
하루가 끝나고 혼자 남는 시간,
그래서 과거가 가장 크게 말을 거는 시간.
그때 동이는 문득 깨닫는다.
오늘은 덜 외로웠다는 걸.
그 이유가 누군가의 큰 이벤트가 아니라,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이었다는 걸.
호태도 깨닫는다.
오늘은 덜 초라했다는 걸.
그 이유가 돈이나 자리나 성취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가능한 사람”으로 바라봐준 눈빛이었다는 걸.
이 깨달음이 열정을 만든다.
서로를 향해 뛰는 심장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체온.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열정은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시간을 앞으로 보내는 힘이다.
젊은 사랑이 “지금”에 취한다면,
중년의 사랑은 “내일”을 만든다.
호태는 동이를 만나면 내일의 자신을 상상하게 된다.
동이는 호태를 만나면 내일의 하루를 조금 더 단정히 살아내고 싶어진다.
사랑이 인생을 방해하지 않는다.
사랑이 인생을 정돈한다.
그 정돈이야말로 중년의 열정이 가진 가장 뜨거운 능력이다.
그래서 동이와 호태의 열정은 이렇게 묘사될 수 있다.
두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손을 내미는 것
부족함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부족함을 빌미로 상대를 흔들지 않는 것
젊음을 다시 얻는 게 아니라, 삶의 남은 부분을 더 진실하게 쓰는 것
열정이란 결국 “불타오름”이 아니라 “불을 꺼뜨리지 않음”이다.
동이와 호태는 서로를 통해 그걸 배운다.
그들이 서로에게 이끌린 이유는 단순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