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5권 3장-3)

임기를 마치며(2)

by 또 래 호태

'확인권'은 무엇을 끝냈고, 무엇을 열었는가


잠깐의 정적 뒤,
이겨레 기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이겨레 기자
“위원장님, 지금까지의 말씀을 종합하면
확인권은 단순한 제도 하나가 아니라
이전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장치처럼 들립니다.

확인권 제정으로 무엇이 이루어졌다고 보십니까.”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질문은 피하지 않았다.


“끝난 건, 사고 이후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입니다.”


그는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확인권 이전에는 문제가 생기면 늘 마지막 사람을 찾았습니다.”



신나라 기자가 바로 이어받았다.


신나라 기자
“그러면 확인권은 책임을 없앤 제도입니까.”


선지훈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는 말을 천천히 이었다.


“책임을 없앤 게 아니라, 책임이 발생하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지점을 만든 겁니다.”


이겨레 기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겨레 기자
“멈출 수 있는 지점이라면, 결정을 늦추는 권한으로 오해될 수도 있겠습니다.”


선지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래서 확인권은 속도를 늦추는 권한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는 아무것도 통과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정한 겁니다.”


신나라 기자가 질문을 밀었다.


신나라 기자
“그 원칙이 작동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선지훈은 짧게 답했다.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설명을 덧붙였다.


“현장에서 ‘이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 말이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겨레 기자가 다시 확인했다.


이겨레 기자
“그럼 확인권이 연 건, 권한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조건이군요.”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확인권이 연 건 결정의 문이 아니라, 멈춤이 허용되는 시간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남았다.


이 제도가 한 사회 안에서만 작동하는지,
아니면 더 큰 환경에서도 의미를 갖는지.


국제정세 인식과 지금 판단의 관계


이겨레 기자가 질문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선을 선지훈에게 고정하지 않았다.
질문은 이미 국경을 넘어가 있었다.


이겨레 기자


“위원장님, 지금까지의 설명은 국내 구조와 제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위원장님은 여러 차례 국제 정세를 이 판단의 배경으로 언급하셨습니다.
지금의 결정이 국제 환경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합니까.”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결돼 있습니다.”


그는 곧바로 선을 그었다.


“다만 국제 정세가 결정을 만든 건 아닙니다.
국제 정세는, 우리가 이미 내린 판단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를 확인해 준 요소였습니다.”


신나라 기자가 그 말을 받아 물었다.


신나라 기자
“그럼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지금의 결정은 외부 위협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이미 관찰해 오던 흐름의 연장이라는 뜻으로.”


“그렇습니다.”


선지훈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방향을 바꿨다.


“올해 대통령의 방중에서, 시진핑 주석이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그는 문장을 정확히 꺼냈다.


“‘역사의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하라.’”


회의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건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줄을 서라는 경고에 가깝습니다.”


이겨레 기자가 바로 끼어들었다.


이겨레 기자
“줄을 서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게 지금 국제 질서의 공통 언어입니다.”


그는 이번엔 러시아를 꺼냈다.


“푸틴은 최근
*‘러시아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규칙 설계자가 될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나라 기자가 즉각 되물었다.


신나라 기자
“규칙 설계자요?”


선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설명을 선택했다.


“쉽게 말하면 국제질서의 표준입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규칙은 어기면 끝이지만, 표준은 따르지 않으면 연결이 안 됩니다.
거래가 안 되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겨레 기자가 정리하듯 물었다.


이겨레 기자
“그러니까 푸틴의 말은,
전쟁을 이기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전쟁이 가능한 세계를 ‘정상’으로 만들겠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선지훈은 단호했다.


“지금은 누가 옳은가를 다투는 단계가 아닙니다.
무엇이 정상인가,
그 문명의 표준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를 두고 각축하는 단계입니다.”


그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우크라이나는 그 선언이 말이 아니라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를 압송할 수 있다는 카드,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병합하거나 강탈할 수 있다는 발상을
현실 정치의 언어로 끌어올렸습니다.”


신나라 기자가 조용히 정리했다.


신나라 기자
“푸틴은 규칙을 다시 쓰겠다고 하고,
중국은 줄을 세우려 하고,
미국은 힘을 써도 된다는 세계를 보여준다…
모두 같은 방향이라는 말씀이군요.”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문명의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경쟁입니다.”


이겨레 기자가 마지막으로 짚었다.


이겨레 기자
“그 경쟁 속에서, 대만은요.”


선지훈은 바로 답했다.


“대만은 다음 계산서입니다.
규범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이 감당 가능한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문장을 천천히 놓았다.


“그래서 한국에 필요한 건 줄 서기가 아닙니다.
푸틴의 규칙 재작성에도,
시진핑의 줄 세우기에도,
힘의 언어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문명의 표준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덧붙였다.


“그게 제가 말하는 부전승의 출발 조건입니다.”


부전승·태극 루트키가 현실 전략인 이유


신나라 기자가 질문을 이어갔다.


신나라 기자
“위원장님은 이 흐름에 대한 한국의 전략을
‘부전승’, 그리고 ‘태극 루트키’라는 말로 설명해 오셨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부전승이 정말 현실적인 전략입니까.”


선지훈은 고개를 들었다.
이번 질문은 피하지 않았다.


“부전승은 싸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말을 고르고 이어갔다.


“싸워야 할 상황 자체가 오지 않도록 상대의 계산을 바꾸는 전략입니다.”


이겨레 기자가 자연스럽게 받았다.


이겨레 기자
“계산을 바꾼다는 건,
군사력이나 제재 같은 전통적 수단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요.”


선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군사력은 결과를 바꾸지만, 표준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부전승의 핵심은
상대가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
이 행동은 감당할 수 없다는 전제를 먼저 깔아 두는 것입니다.”


신나라 기자가 물었다.


신나라 기자
“그 전제가 바로 태극 루트키입니까.”


“그렇습니다.”


선지훈은 단어를 천천히 설명했다.


“태극 루트키는 하나의 무기나 정책이 아닙니다.
국가가 위기 앞에서 같은 기준으로 멈출 수 있다는 신호의 집합입니다.”


이겨레 기자가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이겨레 기자
“그 신호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선지훈은 잠시 침묵했다가 답했다.


“상대는 우리의 의도를 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조를 봅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위기 상황에서
누군가는 멈출 수 있고,
그 멈춤이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이 보호받는 구조라면—”


그는 문장을 끝내지 않았다.


신나라 기자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신나라 기자
“—그 국가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국가가 흔들리지 않으면,
전쟁은 선택지에서 먼저 빠집니다.”


이겨레 기자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이겨레 기자
“부전승은 희망이나 도덕 선언이 아니라,
상대의 계산표를 바꾸는 문명 표준 전략이라는 말씀이군요.”


선지훈은 이번엔 분명히 말했다.


“그게 핵심입니다.”


그는 짧게 덧붙였다.


“우리는 싸움을 피하자는 게 아니라, 싸움이 성립하지 않게 만들자는 겁니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이 전략이
언제, 어떤 시간표로 완성 상태에 들어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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