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마치며(3)
신나라 기자가 질문을 이어갔다.
이번엔 단어를 먼저 꺼냈다.
신나라 기자
“위원장님은 이 흐름에 대한 한국의 전략을
‘부전승’, 그리고 ‘태극 루트키’라는 말로 설명해 오셨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부전승이 정말 현실적인 전략입니까.”
선지훈은 고개를 들었다.
이번 질문은 피하지 않았다.
“부전승은 싸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말을 고르고 이어갔다.
“싸워야 할 상황 자체가 오지 않도록 상대의 계산을 바꾸는 전략입니다.”
이겨레 기자가 자연스럽게 받았다.
이겨레 기자
“계산을 바꾼다는 건,
군사력이나 제재 같은 전통적 수단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요.”
선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군사력은 결과를 바꾸지만, 표준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부전승의 핵심은
상대가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
이 행동은 감당할 수 없다는 전제를 먼저 깔아 두는 것입니다.”
신나라 기자가 물었다.
신나라 기자
“그 전제가 바로 태극 루트키입니까.”
“그렇습니다.”
선지훈은 단어를 천천히 설명했다.
“태극 루트키는 하나의 무기나 정책이 아닙니다.
국가가 위기 앞에서 같은 기준으로 멈출 수 있다는 신호의 집합입니다.”
이겨레 기자가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이겨레 기자
“그 신호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선지훈은 잠시 침묵했다가 답했다.
“상대는 우리의 의도를 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조를 봅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위기 상황에서
누군가는 멈출 수 있고,
그 멈춤이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이 보호받는 구조라면—”
그는 문장을 끝내지 않았다.
신나라 기자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신나라 기자
“—그 국가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국가가 흔들리지 않으면,
전쟁은 선택지에서 먼저 빠집니다.”
이겨레 기자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이겨레 기자
“부전승은 희망이나 도덕 선언이 아니라,
상대의 계산표를 바꾸는 문명 표준 전략이라는 말씀이군요.”
선지훈은 이번엔 분명히 말했다.
“그게 핵심입니다.”
그는 짧게 덧붙였다.
“우리는 싸움을 피하자는 게 아니라, 싸움이 성립하지 않게 만들자는 겁니다.”
신나라 기자
“위원장님, 왜 하필 지금 광개토연구소로 갑니까. 도피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선지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피가 아닙니다. 목적은 하나입니다.
태극 루트키 달성 요건을 조기에 앞당길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자리를 옮기는 게 아니라, 전략의 중심을 옮기는 겁니다.”
이겨레 기자
“‘조기에 앞당긴다’는 말이 강합니다. 무엇을 앞당긴다는 겁니까.”
선지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부전승 달성 요건의 핵심인 시민의식 성숙입니다.
그 성숙을 ‘기다리는 과정’으로 두면 2030은 늦습니다.
그래서 속도전으로 설계하겠다는 겁니다.”
신나라 기자
“방금 속도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속도전의 대상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선지훈이 이번에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사람을 바꾸는 속도전이 아닙니다.
합의를 만드는 속도전입니다.
‘확인’이 정상이고,
‘함께 이바지’가 정상이라는 사회적 기준의 채택 속도입니다.”
이겨레 기자
“그건 결국 여론전 아닙니까.
감정을 움직여서 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선지훈이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론이 아니라 설명 모델입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개념과 절차로 설계하는 겁니다.”
신나라 기자
“학교에서 시작한 ‘함께 이바지’가 이미 있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합니까.”
선지훈이 말했다.
“학교는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학교만으로는 세대 전체를 짧은 시간 안에 바꾸기 어렵습니다.
지금 시민 성숙도를 늦추는 요인은 교실 바깥에 있습니다.”
이겨레 기자
“교실 바깥이라면 무엇입니까.”
선지훈이 결연하게 말했다.
“어른 세대의 마음에 남아 있는 증오·원한의 앙금입니다.
그 앙금이 남아 있는 한,
아이들이 배운 ‘함께 이바지’는 사회 전체에서 속도를 얻지 못합니다.”
신나라 기자
“‘앙금’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뜻합니까.”
선지훈이 부연했다.
“정책 반대 여론이 아닙니다.
정권 비판도 아닙니다.
원한이 원한을 낳는 시선,
그게 공동체의 기본 반응이 되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이겨레 기자
“그럼 이걸 언급하는 건,
감정을 통제하겠다는 말로 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선지훈이 말했다.
“통제가 아닙니다. 해석을 바꾸는 절차입니다.
앙금을 ‘정쟁의 연료’로 두면 더 깊어집니다.
저는 그 앙금을 국민이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개념과 절차로 바꿉니다.
즉, ‘누구 탓’의 언어를 ‘무엇이 통과됐나’의 언어로 전환하는 겁니다.”
신나라 기자
“광개토연구소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완성하겠다는 겁니까.”
선지훈이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세 가지를 완성합니다.
개념, 절차, 메시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국민 설명 모델입니다.”
이겨레 기자
“그게 완성되면, 실행은 어떻게 갑니까.”
선지훈이 그제야 표정이 그제야 누그러졌다.
“그래서 국민 참여 로드맵으로 갑니다.
밀실에서 문서를 발표하는 방식으로는 속도가 없습니다.
공감대가 확산돼야 하고, 합의가 붙어야 합니다.
그래서 후임 국공위원장 후보 추천을 국민 공모로 설계했습니다.
그게 국민 참여 로드맵의 첫 단추입니다.”
신나라 기자
"국공위원장 후보자를 국민 공모로 추천하는 일은 위원장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선지훈이 잠시 숨을 고르며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여러 감정이 겹쳐 있었지만, 문장은 흐리지 않았다.
“저에게는 국가 공공기능 정상화위원회에서의 제 마지막 업무입니다."
선지훈이 곧 일어날 일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 인사혁신처에서
국공위 위원장 후보 선출 공고문을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보자 선출이 진행되는 과정은
유쾌하면서도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
위원장이 두 기자를 부르며 말했다.
"신나라. 이겨레 기자님, 두 분도 많이 바빠질 것입니다."
두 기자의 표정은
분주하게 될 일에 대한 부담감의 예감이 아니라
선지훈 위원장의 문장에 담긴 새로운 파장을 기대하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