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5권 4장-2)

계엄 정국 한복판에서(2)

by 또 래 호태

언론의 임무_미디어 신대국 편집국


편집국 스크린에는 두 줄이 붙어 있었다.
** 계엄 검토 중단. 내란 관련 수사 착수.**


단어가 커지는 속도는 언제나 현실이 먼저였다.

뉴스는 늘 뒤늦게 따라붙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달랐다.


오늘 밤 뉴스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오늘 밤 뉴스는 “다음에 무엇이 가능해졌나”를 미리 보여주는 경보였다.


강한국 대표는 스크린을 보지 않았다.

강한국은 화면 아래로 흐르는 표정들을 봤다.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누군가 서류를 넘기고, 누군가 손을 올리고 내리는 장면들.


정치의 본체는 말이 아니라 손에 있었다.

말은 흔들렸고, 손은 움직였다.


편집국 안에서는 “수위”라는 단어가 돌았다.

계엄, 내란, 종식.

그 단어들이 기사 제목에 올라가는 순간, 언론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니게 된다.


강한국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강한국은 오늘부터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중립은 오해가 아니라 의도된 회피가 되는 국면이 있었다.

오늘 밤이 그 국면이었다.


강한국이 키보드를 눌렀다.

제목을 쓰고 지웠다.

다시 쓰고 지웠다.


세 번째 삭제는 망설임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오늘 밤 독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핵심은 “누가 잘했나”가 아니었다.

핵심은 “무엇을 먼저 했어야 했나”였다.


강한국은 제목을 세 번 지웠다. 그리고 네 번째 제목을 남겼다.


"계엄 정국 한복판에서 ┃ 시행령은 칼이 아니라 질서다"


이건 편을 드는 제목이 아니었다.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박는 제목이었다.


계엄이란 말이 입에 오르는 순간, 정국은 이미 칼을 본다.
칼을 본 정국은 설명을 듣지 않는다. 칼을 본 정국은 “누가 잡았냐”만 본다.


그래서 필요한 언어는 하나뿐이다.
규칙, 순서, 기록, 책임.


강한국은 그 언어를 제목으로 던졌다.

시행령을 “편법”이 아니라 먼저 질서를 세우는 카드라고 못 박았다.


법은 늦는다. 국회는 시간이 걸린다.
뉴스는 더 늦는다. 터진 뒤에 따라붙는다.


하지만 시행령은 지금 움직인다.
오늘 밤에도 굴러가는 국가에 “잠깐”을 걸 수 있다.
아무나 마음대로 못 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제일 쉬운 도망, “그냥 했다”가 막힌다.
왜 했는지, 누가 승인했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그게 시행령의 의미였다.


강한국은 기사 첫 문장을 썼다. 강한국은 그 문장을 꾸미지 않았다.


계엄이 나오기 전에, 시행령이 먼저 나갔어야 했다.


그 문장을 고치면 오늘 밤의 진실이 흐려질 것 같았다.
강한국은 그 문장을 고정했다.


오늘 밤 언론의 임무는 설득이 아니었다.


오늘 밤 언론의 임무는 책임이 도망가지 못하게 기록을 박는 것이었다.



국공위는 시간표대로 움직였을 뿐


국공위 청사 안쪽 대기실은 작았다.

작은 방은 늘 그렇듯이 조용했다.

소리가 없는 게 아니라,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둔 조용함이었다.


선지훈 위원장은 그 조용함을 믿지 않았다.

조용한 방은 언제든 바깥의 소음이 한 번에 들이닥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TV 자막이 두 줄로 붙어 있었다.


* 계엄 검토 중단. 내란 관련 수사 착수. *


선지훈은 리모컨을 손에 쥐고도 TV를 끄지 않았다.

위원장은 습관적으로 “끄는 행위”를 늦췄다.

끄는 순간, 모른 척하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선지훈은 정치 언어에 능숙하지 않다는 설정을 그대로 안고 있었지만,

정치의 공기는 누구보다 빨리 맡는 사람은 또 선지훈이었다.

그는 설명보다 먼저 “판이 바뀌는 냄새”를 맡았다.


강호태 서기관은 TV를 보지 않았다.

호태는 자막을 보지 않았다.

호태는 자막이 만든 다음 단계를 봤다.


계엄이라는 단어가 뜨면, 누구든 자기편을 찾는다.

내란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누구든 상대를 죄인으로 만든다.

그 뒤부터는 절차가 아니라 감정이 먼저 달린다.

감정이 먼저 달리면, 확인은 늘 늦는다. 호태는 늘 그 순서를 알고 있었다.


둘은 계엄의 의도를 몰랐다. 진짜로 몰랐다.


국공위가 움직인 시간표는 다른 시간표였다.

국공위는 지난 1년을 결산하고 있었다.


G.E.D 1년 성과보고 자리에서

*국공위원장 해촉 건의*

*후임 위원장 국민공모 추천제 선발 *

그리고 *광개토연구소 이동 * 세 가지를 건의했었다.


국공위는 국공위의 리듬으로, 국공위가 정한 순서로 움직였다.

그 순서의 결과물이 바로 그 문서였다.
국무총리실을 경유해 대통령실로 올라간 국민공모 추천제 시행 안(개념서).


그 문서는 ‘정권’의 속도가 아니라 ‘절차’의 속도로 만들어진 문서였다.

위기를 이용한 카드가 아니라, 위기가 오기 전에 질서를 깔기 위한 카드였다.


국공위는 그 문서가 “정국” 한복판에 꽂힐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게 문제였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해도 칼이 검토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선지훈은 TV를 보다가, 잠깐 눈을 감았다.
위원장의 표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위원장의 표정은 계산도 아니었다.

위원장은 더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늦게 도착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얼굴 *


선지훈이 입술을 열었다.


“우리는… 우리 순서대로 움직였는데.”


말이 끝나지 않았다.

위원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위원장은 이미 결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공위가 정한 시간표는 정교했지만, 정치의 폭주는 그 시간표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호태가 그 말의 목적어를 정확히 붙였다.

호태는 직책상 아래였지만, 개념을 만든 사람은 호태였다.

호태는 위원장에게 보고하듯 말하지 않았다.

호태는 구조를 확인하듯 말한다.


“위원장님. 우리가 늦은 게 아닙니다. 바깥이 칼을 먼저 꺼낸 겁니다.”


선지훈은 ‘칼’이라는 단어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 단어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훈은 그 단어를 정치적 수사로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선지훈은 그 단어를 ‘국가 기능이 흔들리는 징후’로 읽었다.


선지훈이 물었다.


“대통령실은… 왜 저렇게까지 갔지.”


호태는 답을 아예 다른 곳에서 꺼냈다.

호태는 ‘사람의 마음’에서 답을 찾지 않았다.

호태는 ‘장치의 부재’에서 답을 찾았다.


“멈추게 할 장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태는 문장을 더 줄였다.


“확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선지훈에게 익숙했다.

선지훈이 지난 1년간 매번 듣고도, 매번 다시 들어야 했던 말이었다.

선지훈이 정책과 정치의 경계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문장도 그 문장이었다.


‘확인’은 옳다. 하지만 ‘확인’은 반발을 만든다.

그 반발이 정치로 번진다.

선지훈은 그 번짐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선지훈은 호태를 본다.

위원장이 실무책임관을 보는 눈이 아니다.

정책 집행자가 개념 창시자를 보는 눈이었다.

선지훈은 한 문장을 꺼냈다.


“우리 문서… 대통령 책상에 올라갔지.”


호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갔습니다. 국무총리실 경유로요.”


선지훈은 TV 자막을 다시 본다.

자막이 바뀌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자막은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 아니라, 단어가 굳었다는 뜻이었다.


선지훈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행령이 어떤 의미인지… 대통령이 알아차릴까.”


호태는 바로 대답했다.


“알아차립니다. 한탄부터 나올 겁니다.”


선지훈이 낮게 물었다.


“무슨 한탄.”


호태는 한 문장으로 끝냈다.

호태는 이 한탄이 독자에게도 필요한 문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계엄 카드 전에, 이 시행령을 먼저 했더라면.”


선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원장은 그 문장을 반박할 수 없었다.

위원장은 그 문장이 “정치적 공격”이 아니라 “질서의 후회”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호태는 이어서 설명하지 않았다.

호태는 설명 대신 문서의 성격을 다시 고정했다.

직책의 상하가 아니라, 역할의 분담으로.


“위원장님. 시행령은 버튼입니다.

버튼은 지금 누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튼만으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호태는 ‘누가’와 ‘무엇’을 명확히 했다.


“위원장님이 누르셔야 합니다.

대통령실은 결단을 내리겠지만, 현장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건 위원장님의 라인입니다.”


선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지훈은 호태가 건너뛰지 않는다는 걸 안다.

선지훈은 호태가 ‘개념’만 말하고 도망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호태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제가 해야 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선지훈이 물었다.


“뭐지.”

호태가 말했다.

실무책임관의 보고처럼 말하지 않았다.

개념 창시자의 선언처럼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해야 할 일을 말했다.


“2030 로드맵을 업그레이드해서,

‘확인 없는 통과’가 다시는 못 일어나게 만드는 일입니다.

GED를 국민통합으로 번역하겠습니다.”


선지훈이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선지훈은 TV를 끄지 않았다.

선지훈은 TV를 끄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먼저 떠올렸다.


이건 공포의 밤이 아니라, 절차를 먼저 꽂아야 하는 밤이라는 것을.


선지훈이 짧게 말했다.


“우리 시간표는 계속 간다.”


호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이제는… 늦지 않게 가야 합니다.”


선지훈이 TV를 껐다.
꺼진 화면에 두 사람의 얼굴이 잠깐 비쳤다.


두 얼굴은 같은 문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광개토연구소로 간다.


작가의 이전글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5권 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