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5권 6장-1)

대한민국 하나 됨의 신명 대축제(1)

by 또 래 호태

광개토연구소 첫 내부회의


회의를 연 사람은 광개토연구소장(선지훈)이었다.


“오늘 회의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그는 탁자 위를 가볍게 짚었다.

“이름을 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자리입니다.

이름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호태를 봤다.


“전략책임관(강호태)이 준비한 개념서를 먼저 공유합시다.”


호태는 문건을 열지 않았다.
이미 다들 읽어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가 가져온 원형은 가칭입니다.”

그가 말했다.

“‘대한민국 하나 되기 프로젝트’.
이건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려는 게 무엇인지 묻기 위한 이름입니다.”


선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논의부터 합시다.
통합의 전제는 무엇입니까.”


정병문(세계 한민족 무궁화 연합 총재)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통합은 결과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 결과를 요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윤필순(글로벌 모두 한가족 재단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사건은 지나갔지만,
희생자와 유가족,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간은 아직 멈춰 있습니다.
그 감정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강한국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게 균열입니다.
겉으로는 잠잠해 보여도, 아래에서는 계속 응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선지훈이 정리했다.


“그럼 통합의 전제는?”


호태가 답했다.


“치유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선지훈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치유란 무엇입니까.”


정병문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전통적으로는 씻김입니다. 한풀이죠.
말로 풀고, 억울함을 드러내고,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는 과정입니다.”


윤필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씻김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상처는 부정당했다고 느낍니다.”


강한국이 바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씻김은 늘 말을 늘립니다.
말이 늘어날수록 설명이 필요해지고,
설명이 시작되는 순간 편이 갈립니다.”


정병문이 짧게 덧붙였다.


“그게 증오의 대물림입니다.
형태만 바뀌지, 감정은 계속 살아남습니다.”


선지훈이 질문을 바꿨다.


“그럼 묻겠습니다.
씻김만으로 증오의 대물림이 정말 끊어집니까.”


아무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호태가 깼다.


“그래서 저는 2002년을 떠올렸습니다.”


강한국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의 상처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호태가 말을 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같이 움직였습니다.”


윤필순이 조용히 말했다.


“말보다 몸이 먼저 갔죠.” “그게 신명이었습니다.”


호태가 말했다.


“설명이 아니라 반복이었고, 합의가 아니라 경험이었습니다.”


정병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치유는 씻김으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선지훈이 그 문장을 받아 적듯 말했다.


“치유는 씻김으로 시작하고, 신명으로 완성된다.”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여기까지 오면 아직 이름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호태가 미소도 없이 말했다.


“맞습니다. 이제야 다음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선지훈이 물었다.


“우리가 하려는 건 ‘하나가 되자’는 요구입니까,
아니면 ‘하나가 되어버리는 순간’을 만드는 겁니까.”


정세린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말했다.


“운영 관점에서 보면 요구는 관리 대상이 아닙니다.
상태만 관리할 수 있습니다.”


강한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되자’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 이건 캠페인이 됩니다.”


정병문이 덧붙였다.


“캠페인은 동원을 부릅니다.”


호태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하나 되기’를 목표로 삼지 않겠습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건 사람들이 나중에 돌아서서
‘그때 이미 같이 움직이고 있었구나’라고 말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선지훈이 천천히 말했다.


“그러면 이름은 요구가 아니라 결과를 남겨야겠군요.”


회의실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강한국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건 통합 행사가 아니라 축제입니다.”


정병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씻김을 통과한 뒤의 신명은 의식이 아니라 축제의 형식을 띱니다.”


윤필순이 덧붙였다.


“누구도 참여를 강요받지 않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몸을 내놓는.”


호태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서 저는 ‘하나 됨’이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명령이 아니라 나중에 남는 상태로서.”


선지훈이 조용히 결론을 정리했다.


“좋습니다. 프로젝트의 명칭은 이렇게 도출됩니다.”

그는 천천히 읽었다.


“대한민국 하나 됨의 신명 대축제.”


선지훈이 말을 이었다.
“부제는 설명이 아닙니다. 분위기입니다.”


호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The 신나는 대한민국*. 의무를 제거하고, 즐거움만 남기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시간이 모두에게 동시에 떠올랐다.


'Again 2002! Begin 2026!


회의는 그 문장에서 멈췄다.


누구도 손뼉 치지 않았고, 누구도 결의를 말하지 않았다.


선지훈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제 이름은 정해졌습니다.
다음 회의에서는
이 이름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논의합시다.”

작가의 이전글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5권 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