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으로 인한 다툼

사랑이 깊어지는 일

by 또 래 호태

뭐든지 돕고 싶은 마음


뒷문을 열면 테라스가 나온다.

정확히는, 테라스였을 공간이 나온다. 깨진 화분 잔해, 유리 조각, 사기 파편, 화분 속 충진재들. 한때 무언가를 키웠을 자리가 오래 방치된 채 굳어 있었다. 언제 저걸 치우나. 볼 때마다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는 일이 있다. 결심이 서지 않아서가 아니라, 혼자 하기엔 막막하고 같이 하자고 말 꺼내기엔 어쩐지 민망한, 그런 일. 그래서 먼저 말을 꺼냈다.


"같이 해요. 내일 내가 시간 내서 올게요."


내 말을 듣고 그녀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 표정을 보는 내 마음이 다시 부풀었다. 이게 내가 쓸모 있어지는 순간이구나. 남들은 엄두도 못 낼 일, 나는 할 수 있다. 은근히 그런 마음이 들었다. 채비를 단단히 했다.


당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기준으로 마무리할 건지 미리 얘기를 나누지 않은 채로 시작했다. 그냥 시작했다.

화분 잔해는 재활용 마대에 담으려면 먼저 잘게 부숴야 했다. 망치를 가져다줬다. 손 조심하라며 라텍스 장갑도 꺼내 주고, 따뜻한 커피도 챙겨줬다. 그 살뜰함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쭈그리고 앉아 망치질을 했다. 허리가 뻐근할 법도 했는데 이상하게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 우쭐해지는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어쩜 그리 꼼꼼해요?"


"청소 전공이잖아요."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두 달 전까지 채석장에서 청소부로 일했다. 컨베이어벨트가 한 번 멈추면 어마어마한 양의 잔해가 쏟아져 산처럼 쌓인다. 그 앞에 서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그런데 어쩌겠나. 일단 첫 삽을 뜨는 수밖에.


그 시절에 온몸으로 배운 것들이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티끌 모아 태산. 책에서 읽은 말이 아니라, 몇 시간을 삽 한 자루 들고 그 많은 잔해물을 퍼 나르던 매일이 가르쳐 준 것들. 뭐든 마음먹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무념의 상태로 끝까지 가게 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녀도 틈틈이 나와 손을 보탰다. 손끝이 야무지고 매웠다. 그 모습이 경이롭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애처롭기도 했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혼자 감당해 왔을까. 모진 시간을 버텨낸 흔적치고는 가슴이 많이 아팠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뒷마무리까지 끝냈다고 생각했다. "어때요?" 묻고 싶었다. "잘했죠?"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순간, 한쪽에 남아 있던 마른 잡초들을 치우고 있었다. '어? 저거 그냥 놔두면 거름도 되고 오히려 좋은데....'


그건 내 생각이었다.

그 사람 눈에는 당장 보기 싫은 것이 남아 있었다. "이것도 다 치워야 돼요." 거기서 우리의 생각이 갈라졌다.

작은 일이었다. 잡초 몇 줌의 문제였다. 그런데 사소한 틈에서 감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라난다. 그날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랑한다는 말로 시작하는 반성문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더 쉽게 상처를 준다.

배려심 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한 것처럼 굴기도 한다. 이 글은 그런 날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내가 그 하루를 어떻게 망쳤는지에 대한 고백이다.


연인 사이에서 관계를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오래전부터 소유욕과 집착이라고 생각해 왔다. 상대를 내 뜻대로 통제하려는 욕심, 혹은 내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태도. 두 번째로 위험한 것은, 상대도 내 생각과 똑같아야한다는 착각이다.


'함께 시작했으니 끝까지 함께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왜 미처 떠올리지 못하는 걸까.


그날 내가 잘못한 건 정확히 그 지점이었다.


"내 할 일 다 했으니 나 먼저 들어갑니다."


순간 그녀가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굳어졌다.

상대가 순간적으로 굳어졌을 때, 나는 바로 위험신호를 알아채야 했었다. 가볍게 웃어넘기든, 먼저 사과를 건네든. 그게 최선이었을 텐데. 그 순간 나는 상대보다 나를 먼저 생각했다.


'나는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 일인데, 왜 굳이?'


그 생각이 머릿속에 박여 버렸다. 나는 내 몫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쯤 들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랬다.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상대도 그걸 알아줄 것이다.'


사실은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혼자 고생하는 걸 보고 안쓰러워서 일부러 시간을 냈고, 불편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했는데.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 그러니 칭찬해 줘야 해. 그런 마음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 '이런 일을 기꺼이 같이 해줄 사람이 나 말고 또 있겠어?' 자기 과신이었다.


평소의 그 사람이었다면,

눈치가 빠른 그 사람이었다면, "이건 내가 마무리할게요. 고마워요." 한 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나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대신 돌아온 건 굳어진 표정이었고, 상황은 조용히 기울기 시작했다.


"당신 마음, 풀 생각 있어?" 내가 먼저 물었다.

그녀는 단호하게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걸어 나갔다. 논쟁보다는 각자 생각할 시간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몇 번 '서로 다름'에서 비롯된 작은 다툼에서 배운 교훈 때문이었다. 무겁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앞에 그 사람의 차가 서 있었다. 다른 길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가웠다. 진짜로.

하지만 내 행동은 오기가 앞섰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지나가자. 그런데 계속 따라왔다. 이쯤에서 고집을 꺾었어야 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와 기다린 것인데. 차에 탔다. 거기가 화해의 첫 번째 기회였다.


차 안에서도 서로 자기주장만 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요." "이 기분으로 밥 먹으면~~~" "일주일 내내 피곤할 텐데 일찍 들어가요." 그 말을 남기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후회는 늦었다. 차가 벌써 저만치 우회전을 하고 난 뒤였다.


'밥'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응했으면 그다음은 해피엔딩이었을 텐데. 두 번의 기회를 그녀가 먼저 내밀었는데, 나는 두 번 다 놓쳤다.


내가 사람을 대할 때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게 있다. 저 사람의 본성을 한번 인정하고 나면,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바로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저 사람의 이 행동은 왜 나온 걸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이해하려는 태도.


반대로, 그 과정 없이 바로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사람을 보면 낯설어진다. 평소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이것도 서로의 다름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 과정 자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딪히고, 생각하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꼭 필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아까 나는 칭찬받고 싶었어요. 그 기대가 무너진 순간의 충격이 컸어요. 그래서 평소답지 않게 화가 났습니다. 그게 다예요." 그런데 이어지는 주저리주저리.


"변명이 길어지네요. 억울해서 그랬나 봐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 화 풀어요."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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