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사람이라면

by 또 래 호태


**남편을 보내고 7년.**


나 또한 인생의 뒤안길로 접어든 나이다.

그 나이에, 사랑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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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은 젊은 날의 연애를 다시 연기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지나간 계절을 억지로 붙잡는 몸짓이 아니라,

지나온 계절들이 내게 남긴 흔적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일이었다.


나는 두 번 사랑을 잃었다.

남편 둘의 기일이 같다는 사실은 세상이 내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날짜는 달력 위에 무심히 박혀 있었고, 그 무심함이 오히려 잔인했다.


그래서 나는 믿었다. 사람으로부터의 위로는 불가능하다고.

위로가 있다면 오직 하늘에서만 내려오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하늘을 향해 눈을 들고, 땅을 향해서는 그저 버티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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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많은 것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냥 곁에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늦둥이 별이를 품에 안던 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울었다.

소리도 없이, 어깨를 떨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괜찮겠다.*


그 사람의 하루는 별이로 시작했다.

아침이면 별이 머리맡에 앉아 이름을 불렀고,

밤이면 별이가 잠드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눈을 감았다.

그 사람의 하루는 별이로 마무리됐다.

별이가 그 사람의 전부였고, 별이가 있는 그 일상이 우리의 전부였다.


별이가 첫걸음을 떼던 날도,

열이 나서 밤새 보채던 날도,

그는 늘 먼저 일어났다.

내가 미처 눈을 뜨기 전에.


그 시절이 내 생에 가장 안온했다.

거창한 행복이 아니었다.

그냥 따뜻했다.

그것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떠났다.

별이가 아직 어릴 때.

너무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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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는 마음을 잠갔다.


누군가 좋아 보이면 일부러 흠을 찾았다.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이유를 의심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병원에 가고, 혼자 명절을 났다.

익숙해지면 된다고 했다. 익숙해졌다.


봄이 오면 꽃구경 가자는 말에 "괜찮아요" 했고,

생일을 챙겨주겠다는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했다.

거절이 습관이 됐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잃을 것도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아버린 것이다.


가끔 밤에 혼자 TV를 보다가

드라마 속 누군가 손을 잡아주는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7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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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렵다.

두 번의 상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사랑하면 잃는다는 공식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떠난다는 것.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떨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리고 이 사람마저 떠난다면.

내가 아파서가 아니라, 나 때문에 이 사람이 떠나는 것이라면.


세 번째 상실은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세 번째 사랑도 없어야 한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 운명이 그리 정해진 것이라면, 이 사랑은 시작하기 전에 포기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머뭇거렸다.

한 발짝 다가서려다 두 발짝 물러섰다.

마음이 열리려 할 때마다, 두 번의 기일이 달력 위에서 나를 붙잡았다.

*또 사랑하면 안 돼. 또 잃으면 안 돼.*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아무것도 아닌 듯 말했다.

*"별이한테 좋은 어른으로 보이고 싶어요. 서두르지 않을게요."*


별 뜻 없는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말이, 그 눈빛이, 그 태도가

내가 쌓아 올린 두려움의 벽을 소리 없이 넘어왔다.


억지로 넘은 게 아니었다.

문을 두드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새 내 안에 있었다.


*아.*

*이 사람이라면 괜찮겠다.*


논리가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두려움보다 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더 커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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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은 대개 조용히 시작된다.

"너무 좋아요" 같은 말보다 먼저 오는 것은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이다.

설렘보다 앞서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다.


이 사람이 내 삶의 방식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 아니라,

내 삶을 그대로 두고도 곁에 있어 줄 사람인지.

내 슬픔을 덮어버리려는 사람이 아니라,

슬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존중해 줄 사람인지.


내가 그를 보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두근거림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그는 넘지 않았다.

사람을 흔드는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말 한마디를 건넬 때도, 내 자리와 내 원칙을 먼저 살폈다.


나는 그 태도에서 한 가지를 알아챘다.

*아, 이 사람은 사랑을 '얻으려'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지키려' 하는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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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사랑이 "나를 봐줘"라면,

중년의 사랑은 "당신을 흔들지 않을게"에 가깝다.


그래서 중년의 사랑은 서두르지 않는다.

삶이 신중해진 사람들끼리는 속도를 재촉하는 법이 없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빨리 손을 잡는다고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큰 말이 있다고 마음이 큰 게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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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중년의 사랑은 작은 것에 무너진다.

"점심은 잘 챙겨 먹었어요?" 같은 문장 하나.

추운 날 문을 닫을 때 손이 먼저 나가 주는 습관 하나.

하지 않아도 되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침묵 하나.


중년의 사랑은 그런 침묵 속에서 자란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확인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것.

나는 그걸 *묵계*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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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설렘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년의 설렘은 다르게 온다.

심장이 뛰는 설렘이 아니라, 심장이 편해지는 설렘이다.


어떤 사람 앞에서 나는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았고,

어떤 사람 앞에서 나는 더 예뻐져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사람 앞에서는, 그냥 나로 있어도 괜찮았다.


이것이 중년의 사랑이 주는 놀라움이었다.

사랑이 나를 꾸미지 않아도, 사랑이 나를 충분하게 만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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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

사람도 하늘만큼 위로가 될 수 있다고.


하늘이 주는 위로가 "버텨라"라면,

사람이 주는 위로는 "함께 버티자"일 수 있다고.

나는 이제야 안다. 그 둘은 서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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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은 인생의 뒤늦은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새로운 문장이다.

더 단단해진 말, 더 짧아진 변명, 더 적어진 욕심, 더 넓어진 이해로 쓰는 문장.


나는 여전히 하늘을 믿는다.

다만 이제는 안다.

하늘은 때때로 사람의 얼굴을 빌려 내게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무엇을 주는지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 곁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사랑의 진짜 증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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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오래간다.

그리고 그 '오래감'은, 수십 번의 계절을 통과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내리는 작은 선언 같다.


*"당신의 삶을, 그대로 존중할게요."*

*"그 존중 위에, 나는 조용히 사랑을 올려둘게요."*


그게 내가 지금, 동이와 호태의 삶에서 배운 중년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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