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합해 평균 60의 사랑

— 남은 것으로 시작하는 사랑에 대하여 —

by 또 래 호태

동이가 혼자를 택한 이유


사랑은 사람의 약한 결을 정확히 찌른다.

그래서 한 번 다친 사람은 조심하고, 두 번 다친 사람은 멈춘다.


동이는 멈춘 사람이었다.


두 번의 사별.

말로 하면 짧다. 그러나 그 안에 든 것은 짧지 않다. 첫 번째 상실 이후 동이는 다시 사랑했다. 그것 자체가 용기였다. 그러나 두 번째 상실이 왔을 때, 동이는 알았다. 이건 운이 나쁜 게 아니다. 이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떠난다는 것이다. 그 문장이 몸에 새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뒤로 동이의 하루는 조용했다. 혼자여도 아침이 오고, 혼자여도 밥을 먹고, 혼자여도 계절이 바뀐다는 것을 동이는 몸으로 익혔다. 적응이었다. 체념이 아니라, 무감각이 아니라, 살기 위한 적응. 동이는 그 적응 속에서 나름의 평화를 찾았다. 설레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으면 다치지 않는다. 혼자이면, 잃을 것이 없다.


그래서 동이는 혼자를 택한 게 아니었다. 혼자에 적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적응을 깨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동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동이의 몸이 기억하는 것


상실이 사람에게 남기는 건 빈자리만이 아니다. 경보 시스템이 남는다.


동이의 불안은 무슨 일이 생길까가 아니라 또 무너질까에 붙어 있었다. 좋은 일이 생겨도 마음이 먼저 물었다. 대가가 올 거야. 그래서 설렘이 기쁨으로 끝나지 않고 긴장으로 이어졌다. 누군가 다가오면 자동으로 계산했다. 언제까지 갈까. 말을 믿지 않고 패턴을 믿었다. 과거에 말이 먼저 오고 부재가 뒤따랐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된다.


동이의 의심은 상대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었다.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동이의 회피는 떠남이 아니었다. 과부하를 차단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감정이 커질수록 연락을 줄이고 거리를 만드는 건 무관심이 아니라,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동이에게 사랑은 행복이 아니라 위험 관리였다. 시간의 비용, 감정의 비용, 안정의 비용. 동이는 그 비용을 두 번 치렀다. 세 번째 청구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준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동이의 결론이었다.




호태의 설렘


호태는 달랐다.

그는 사랑이 충만한 것이라고 믿었다. 넘치도록 주고, 넘치도록 느끼고, 그 감정의 무게로 상대에게 닿는 것. 중년의 사랑은 지극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극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설렘은 그에게 증거였다. 내가 지금 제대로 살아있다는 것, 네가 나에게 진짜라는 것.


동이를 만난다는 생각만으로 호태의 마음은 먼저 달렸다. 약속을 잡기 전부터, 길을 나서기 전부터, 이미 안에서 설렘이 솟았다. 그 설렘은 그를 젊게 만들기보다 살아있게 만들었다. 하루가 다시 정렬되고, 말이 부드러워지고, 표정이 먼저 밝아졌다. 예순을 넘긴 남자가 약속 잡기 전부터 마음이 달린다. 그건 민망한 일이 아니었다. 그게 살아있음이었다.


호태는 확신했다. 이 설렘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녀는 내게 축복이다. 그래서 설렘이 계속 솟아오르면, 그 설렘이 마음을 밀어주고, 마음이 결국 사람을 움직일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호태는 곧 깨달았다. 사랑을 포기한 사람에게 설렘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 다른 언어


둘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호태의 언어는 설렘이었다. 동이의 언어는 안전이었다. 설렘은 다시 무너질 수 있는 감정이고, 안전은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하는 조건이다. 호태가 설레게 할수록 동이는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호태는 처음에 몰랐다. 자신이 주는 가장 뜨거운 것이 동이에게는 가장 먼저 꺼야 하는 불일 수 있다는 것을.


동이에게 설렘은 한 번도 나쁜 예감이 아닌 적이 없었다. 첫 번째 사람을 사랑할 때도 설렜다. 두 번째 사람을 사랑할 때도 설렜다. 그리고 두 번 다, 설렘이 가장 컸던 자리에 가장 깊은 구멍이 생겼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설렘이 오면 끝도 온다는 것을.


그래서 동이가 차가워지는 날이 있었다. 이유 없이 거리를 두는 날이 있었다. 그건 호태를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경보 시스템이 울린 것이었다. 또 좋아지면 또 잃는 거 아닐까 하는, 몸의 기억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호태가 그것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면, 둘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지극함의 방향


호태는 배워야 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다시.


지극한 사랑이 뭔지 호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이 앞에서 처음으로 다시 배워야 했다. 지극함은 뜨겁게 타오르는 게 아니라 꺼지지 않는 것이라는 걸.


호태가 해야 할 일은 불꽃을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불꽃이 꺼져도 관계가 남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동이를 설레게 만들겠다는 지극함이 아니라, 동이가 설렘을 강요받지 않도록 지켜주는 지극함. 설렘은 자기 것이다. 동이에게 요구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설렘은 내가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 동이에게 줄 것은 설렘이 아니라 오늘이 어제보다 덜 무거운 하루다.


그래서 호태는 나는 절대 안 떠난다는 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예측 가능한 자리에 있기로 했다. 연락 시간이 들쭉날쭉하지 않게. 약속을 지키게. 아무 일 없는 날에도 사라지지 않게. 동이가 물러날 때 쫓아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만 조용히 남기게. 그것이 동이에게 안전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걸 호태는 알았다. 그리고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일이라는 것도.




열무김치와 손글씨


호태가 동이에게 줄 수 있는 건 화려한 순간이 아니었다. 조용히 반복되는 편안함이었다. 손글씨처럼 시간을 들인 마음. 열무김치처럼 밥상 위로 올라오는 일상.


특별한 날이 아니라 특별하지 않은 날에 오는 것. 이유 없이 연락하는 것. 별일 없다는 말 한마디. 동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 그 기억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거창하지 않아도 되었다. 거창하면 오히려 동이의 경보 시스템이 울렸다. 작고 조용하고 반복되는 것. 그것이 동이의 몸에 다른 기억을 만들었다.


이 사람은 패턴이 있다. 이 사람은 오늘도 있었고 어제도 있었다. 동이의 몸이 먼저 알아챘다. 그게 설렘보다 먼저 왔다. 낯선 안도였다.




남은 것으로 시작하는 사랑


상실과 실패를 안고 다시 시작하는 사랑에는 좋은 것들이 있다.


처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른다. 한 번 잃어본 사람은 안다. 그래서 이 사랑은 함부로 쓰지 않는다. 말 한마디, 연락 하나, 같이 있는 시간 하나가 다르게 느껴진다. 좋은 말보다 꾸준한 행동을 보는 눈이 생긴다. 분위기보다 패턴을 보는 눈이 생긴다. 아팠던 사람은 상대가 힘들 때 티 내지 못하는 것도 알아챈다. 작은 것에 먼저 손을 내민다.


그리고 이상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곁에 있어 주는 것, 사라지지 않는 것, 오늘을 함께 버티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안다. 표면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만난 사람은 오래간다. 서로의 약한 부분을 먼저 보고도 남아 있기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설렘보다 단단하다.


예순의 사랑은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다. 남은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으로 시작하는 사랑은, 처음부터 시작하는 사랑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직 진행 중인 현재


평균 예순의 사랑은 뜨겁게 타오르지 않는다. 동이는 타오르는 걸 두려워하고, 호태는 타오르고 싶지만 혼자 감당한다. 그 사이에서 둘은 천천히 같은 온도를 찾아가고 있다.


동이는 아직 호태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 호태는 그것을 안다. 그리고 괜찮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설득으로 오지 않는다. 시간이 쌓이면서 오는 것이다. 호태가 할 수 있는 건 그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오늘도 예측 가능한 자리에 있는 것. 그것뿐이다.


동이가 어느 날 호태 옆에서 처음으로 생각했다. 오늘이 어제보다 조금 덜 힘들다. 그 문장이 떠오른 걸 동이는 한참 후에야 알아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설렘은 아직 목표가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목표가 아니라 보너스로 돌아올 것이다. 동이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설레도 괜찮다는 것을. 설렘이 반드시 끝을 데려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날이 언제인지 아직 모른다. 둘 다 모른다. 그러나 호태는 오늘도 예측 가능한 자리에 있고, 동이는 오늘도 조금씩 경보 시스템의 감도를 낮추고 있다.


상실이 남긴 건 빈자리만이 아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알아보는 눈,

그리고 진짜를 만났을 때 놓지 않으려는 마음도 남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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