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게도 설레는 첫 편지

by 또 래 호태

나의 쓸모를 고민하다.


호태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녀에게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


중년의 여성이 피하고 싶은 조건을, 나는 이상할 만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수술의 흔적이 있고, 채석장 청소부. 이런 조건은 호감이 아니라 경보를 먼저 울린다. 그래서 호태는 안다. 지금 당장 “나는 괜찮은 사람”을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 아프지 않다, 건강하다를 보여주는 일은 나중이다. 그건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그녀가 먼저 ‘보려고 하는’ 마음을 열어야 가능한 증명이다.


지금 급한 건 따로 있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콘크리트처럼 굳기 전에, 우선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뻔하다.


“왜 하필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그 의구심을 풀지 못하면, 어떤 설렘도 그녀에게는 위험으로 남는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중년 여인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마음을 흔드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안전하게 남겨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호태는 생각을 바꾼다.
가진 것은 없지만 부족함이 없는 삶, 그 사실을 자랑처럼 내세우지 않기로 한다.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를 변명으로 덮지 않기로 한다.


대신 그는 “나의 쓸모”를 이렇게 정의한다.

당신의 경계심을 충분히 이해하고, 당신의 일상을 존중하는 사람.


상실을 겪은 사람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매력이 아니라 태도다.

그래서 호태가 선택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손글씨 편지.

말로 흘려보내지 않고 시간을 들여 눌러쓰는 방식. “나는 가볍지 않다”는 태도를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


둘째, 열무김치.

거창한 선물이 아니라 밥상 위에 올라가는 현실. “나는 당신의 하루를 보겠다”는 접근. “내가 들어갈 자리는 당신의 마음 한복판이 아니라, 당신이 혼자 버텨온 일상”이라는 선언.


호태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설렘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위로와 안심이다.


그리고 그 안심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쓸모는, 화려한 능력이 아니라 묵묵히 전해지는 진심이다.

그래서 그는 편지를 쓰고, 김치를 담근다.


"손글씨를 쓴다든지, 열무김치를 담근다든지 하다 보면… 누가 알아요.
파랑새가 날아올지."




열무김치라는 쓸모


열무김치를 담그자고 결심한 순간부터, 호태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그건 “김치를 담근다”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일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중년의 남자가 직접 담근 김치를 받는 그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바빴다. 뚜껑을 여는 순간의 표정,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잠깐 멈추는 그 눈빛, “이거… 직접 하셨어요?”라는 말까지. 오래 갈고닦은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왔고, 그 솜씨를 인정하게 될 사람이 그녀라는 사실이 호태를 들뜨게 했다.


호태는 서둘렀다.

포천 농가에 전화를 걸어 어린 열무를 넉넉하게 주문했다. 넉넉하게, 그게 중요했다. 첫 작품은 아껴 담그는 게 아니라 기분 좋게 넘치게 담가야 했다. 호태는 오래전 기억 속에 넣어두었던 레시피를 꺼냈다. 삶은 감자. 보리쌀. 넉넉한 양파. 그리고 홍고추와 풋고추. 가물가물해진 양과 비율을 머릿속에서 다시 맞춰본다. 소금은 좋은 걸로. 절임은 살짝. 절임 시간은 정확히. 채수는 정성 들여 끓여야 한다. 물이 아니라 맛으로 담그는 김치니까.


들뜬 마음으로 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오랜만에 싱그럽다.

호태는 스스로가 이렇게 서두르는 게 웃기면서도 좋았다. 그런데 마트에서 첫 번째 고비를 맞았다. 홍고추가 달랑 한 봉지. 호태는 열무의 양을 떠올렸다. 최소 세 봉지는 있어야 색이 산다. 홍고추가 부족하면 때깔이 나지 않는다. 첫 솜씨, 첫 작품인데. 김치는 맛도 맛이지만, 색깔을 먼저 먹어야 한다.


호태는 잠깐 서서 고민했다. “음… 어쩐다.”
그러다 마음속으로 변명을 미리 준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오랜만이라… 마트에 물량이…”


핑계인데, 그 핑계마저도 즐거웠다.

누군가에게 변명을 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가 내 김치를 열어볼 거라는 사실이, 호태를 더 설레게 했다.


호태는 이미 머릿속에서 뚜껑을 열었다.
“아, 맛있는 냄새.”
그 냄새를 염두에 두고, 그는 시간을 계산했다.

주문한 재료 도착 시간. 손질 시간. 절임 시간. 채수 식히는 시간. 섞는 시간.

그리고 숙성 시간. 오랜만이라 손이 낯설고 머리가 낯설어 혹시 지체될 시간까지도 넉넉하게 잡았다.


그러다 호태는 자신이 배송 알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혼자 웃었다. 풋.
이런 설렘이 얼마만인가.
이런 설렘의 시간을 다시 갖게 해 준 사람이 그녀라는 사실이, 호태는 고맙기만 했다.




완성, 그런데 망설여지는 때깔


완성된 열무김치는 이미 맛이 있었다.
호태가 기억하던 그 맛, 오래 갈고닦은 손끝이 그대로 살아난 맛이었다.
한 가지만 빼고.


'때깔'


예상대로였다.
약간은 허여멀건한, 망설임을 불러일으키는 때깔이라니.
호태는 뚜껑을 한 번 더 열어보고, 다시 닫았다.
맛은 확신인데 색은 자신이 없다. 김치에서 이런 경우가 있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음… 어쩔 수 없다.”

호태는 이미 연습 삼아해 두었던 변명을 떠올렸다.
문제는 그 변명이 변명처럼 들리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호태는 말의 각도를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핑계가 아니라, 솔직함으로.
색깔을 감추려 하지 않고, 맛으로 설득하겠다는 태도로.


호태는 정성 들여 열무김치를 반찬통에 담았다.
국물까지 아끼지 않고, 열무 줄기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게 눌러 담았다.
뚜껑을 닫는 순간, 호태는 마음속에서 한 번 더 다짐했다.


“맛은 자신 있다.”


그런데 달랑 열무김치만 들고 가면 멋쩍을 것 같았다.
그래서 준비해 둔 것을 보태기로 했다.
삶은 감자 세 개, 옥수수 두 개.
그건 ‘추가 반찬’이라기보다, 그의 마음을 덜 어색하게 해 줄 작은 완충재였다.


호태는 보따리를 여몄다.
매듭을 묶는 손끝이 괜히 바빴다.


그녀에게 가는 길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발은 땅을 딛고 있는데 마음은 자꾸 떠올랐다.
뚜껑을 여는 손, 냄새를 먼저 맡는 순간, 표정이 잠깐 멈추는 그 장면.
호태는 그 장면을 너무 많이 상상한 나머지, 현실이 더 느리게 흘렀다.


이윽고 매장에 도착했다.
문을 열기 전, 호태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보따리 매듭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속으로 짧게 말했다.


“들뜨지 말자. 들키지 말자”


호태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글씨 편지의 쓸모


열무김치가 일상을 건드리는 방식이라면, 손글씨는 마음을 건드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상실을 겪은 사람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쉽게 열린 마음이 가장 먼저 무너진다.


그래서 호태는 “설명”으로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증명”으로 다가가려 했다.
다만 그 증명은 큰소리의 증명이 아니라, 시간이 들어간 태도여야 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종이 위에서 가장 분명해진다.
말은 흘러가지만, 손글씨는 남는다.
남는 것은 책임이 된다.


호태는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는 동안, 호태의 손은 자주 멈춘다.


멈춤은 망설임이 아니라 조절이다.
그녀의 경계심을 더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절,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조절이다.


호태가 건네고 싶은 첫 번째 진심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나는 내가 서로 위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 문장을 호태는 ‘고백’이 아니라 ‘방식’으로 전한다..




손글씨로 전한 첫 편지


To. 동이씨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손이 조금 떨립니다. 웃기죠. 나이 먹어서도 이런 두근거림이 있네요. 자판만 두드리던 손이라 글씨가 아니라 그림처럼 나오는데, 그래도 오늘은 이 방식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휴대폰 번호를 주고받지 않았다는 게…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번호를 알았으면 카톡 한 줄로 끝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번호를 모르는 지금, 제가 제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이것뿐이더군요. 그래서 손글씨로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열무김치도 조금 담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밥상 위에 올릴 수 있는 것뿐이라서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손글씨를 쓴다든지, 열무김치를 담근다든지 하다 보면… 누가 알아요. 파랑새가 날아올지요. (웃음)


오늘은 어제보다 표정이 밝아 보여서 좋았습니다. 매장에서 ‘사연’이라는 말이 잠깐 나왔을 때, 동이 씨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남았습니다. 누구에게나 곡절이 있겠지요. 그 이야기는… 언젠가 동이씨가 편해지는 날, 그때 듣고 싶습니다.


제가 이디야에 들른 건 당구 내기 때문이었습니다. 꼴찌가 밥을 사고, 2등이 커피를 사고, 3등이 게임비를 내는 규칙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내기가 저에게는 뜻밖의 ‘신의 한 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란 유니폼을 입은 동이 씨를 봤으니까요.


며칠 동안 제가 좀 웃고 다녔답니다, 동이 씨가 사장님 마음으로 전해주신 감자쿠키 하나요. 동이 씨에겐 작은 호의였겠지만, 저는 그날 이후로 마음이 자꾸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말로만 넘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담은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저 사람은 지 좋아서 저러는구나” 하고, 너그럽게 웃어 넘겨주시면 충분합니다. 저는 동이 씨가 말 한마디 건네주시고, 제 이야기를 잠깐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 대화가 저를 설레게 하더군요.


그리고 한 가지, 제 얘기를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고요.


‘영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과, ‘영감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오늘 매장에서 잠깐 앉아 글을 쓰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째서 이 단어가 이제 생각이 났을까" “아, 지금 손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네”


작가 지망생에게 영감을 떠오르게 하는 존재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일까요.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고맙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끝에 제안을 하나만 드립니다.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먼저 친구로요."


"매장 안에서만, 동이씨가 허락하는 만큼만요."


오늘 밤, 동이씨의 잠이 조금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도, 매장에서 뵙겠습니다.


2025년 7월의 마지막 밤에 From 호태




[작은 용기를 낸 흔적]


호태는 펜을 내려놓았다가,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들었다.


그리고 편지 맨 아래 여백 구석에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글씨로 자신의 이름과 번호를 덧붙였다.

이전 05화동이의 결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