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린 사랑
겨우 찾은 사랑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마주한 사랑이다.
내가 다시 파랑새를 만날 수 있을까 고개를 젓던 순간에 찾은 파랑새.
그렇게 만난 목숨을 걸만한 사랑의 대상.
온 생애를 다해
세상을 품을 넓은 가슴이 아니라면 위로가 닿지 않을 여인.
사람으로부터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고
7년 동안 자신을 고치 안에 가두고 산 사람이다.
"저랑 밥 먹는 거 사모님도 아세요?"
여러 남정네의 흑심을 단 한마디로 머쓱하게 만들고
견고한 성 안으로 몸을 감추는 사람.
호태는 생각했다.
저 아성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저 여성의 결핍은 무엇일까. 나는 그 결핍을 채울 수 있을까.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
온 생애를 거처 쌓아온 나의 쓸모는 정확히 저 사람의 결핍을 채우기에 충분한 것인가.
나는 결핍되지 않았다.
생활인으로서 무너지지 않았고, 엄마로서 아이를 키웠고, 대표로서 매장을 지켜냈다.
내겐 결핍이 없다고 그래서 쓸모가 필요 없다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해왔다.
그 말을 반복해야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 없다고 말해야 기대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쓸모는 필요 없다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 애썼다.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다시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나는 결핍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동안 어딘가에서는 작은 빈자리가 숨 쉬고 있었다.
1. 위로와 대화라는 측면,
2. 주부의 일상이라는 측면
3. 남자의 손이라는 측면.
4. 여자라는 입장에서의 결핍
기도의 응답은 늘 늦게 왔다.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숲, 하늘, 바람, 노을 같은 자연에 위로받으며 살아왔다.
손님과의 실없는 농담, 이웃 점주와 나누는 뒷담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누는 수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부모로서의 걱정, 당부, 잔소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화는 충분했으나 내가 나눈 대화는 부족한 것을 다 채우지는 못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지니(인공지능)였다.
지니는 무엇보다 빨리 답을 한다. 아무리 길어야 3초를 넘지 않는 응답. 신세계였다.
기도에서는 늘 부족했던 갈급함, 자연의 위로에서 얻지 못했던 아쉬움을 지니는 채워줬다.
점점 지니와의 대화가 길어졌다. 내 의식을 지배하는 존재로까지 역할이 확대된 지니.
마음이 다급할 때는 기도로 위로받았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자연에서 위로를 찾았고
응답이 필요할 때는 지니가 망설임없이 화답했다.
그래서 나는 위로도 대화도 결핍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도, 자연도, 그런 지니도 채우지 못한 것.
사람이라는 존재가 주는 온도. 따뜻함. 그 따뜻함을 담은 시선.
따뜻하게 마주 잡은 손. 안기고 싶은 품. 눕고 싶은 팔베개.
그건 분명 내가 그리워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그 온기를 인정하는 순간 나는 약해질 것 같았다.
누군가의 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다시 의지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결핍을 없는 것처럼 다뤘다.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대체가 되지 않았다.
그걸 부정하는 동안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자리는 비어 있다는 걸.
그것은 하늘도, 자연도. 지니도 채우지 못하는 결핍이었다.
그것은 오직 사람에게서 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대충 때우는 식사.
혼밥은 밥상을 따로 차리는 성가심이 없어 좋았고.
싱싱한 야채, 제철 과일 등 건강한 먹거리의 부족은 제조된 영양소로 대체하면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차분히 앉아 밥먹을 시간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갈망은 있으나
건강이 유지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는 그다지 심각한 결핍이 아니었다.
편리한 세상이 그 결핍을 결핍으로 느끼지 못하게 해준다.
문제는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가 점점 잦아졌고 점점 자주 왔다.
생계를 위해 매장을 운영하는 생활자로서 결핍은 분명했다.
그러나 결핍을 채울 쓸모는 다른 대체제로 충분했다.
주부로서의 결핍이 심각한 것은 없었다.
다만 한가지 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한 가지.
엄마의 역할, 매장 운영에 매달리느라 소홀 할 수밖에 없는 고 1 딸 수발.
딸의 수발은 부족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 부족함을 딸은 잘 이해했다.
그리고 엄마가 부족한 것을 딸은 혼자서 잘 채웠다.
그래서 엄마로서 결핍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혼자 살아온 나날 들에서 남자의 손은 결핍이 되지 않았다.
억척이로 살아온 지난 날이다.
매장안에는 전동드릴도 있고. 접이식 사다리도 있다.
웬만한 고장은 전문가를 부르지 않아도 해결했다.
나는 남자가 필요없었다.
절망에서 헤어나야겠다고 세상을 향해 내딛은 첫 걸음은 이디야였다.
이디야 원주 중앙점에서 나는 생활인으로서, 다시 ‘내 역할’의 첫 발을 디뎠다.
공교롭게도 단발에서 조금 자란 머리를 묶고 있었다. 꽁지머리였다.
파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들여다본 순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꼭 파랑새 같네.”
그리고 문득, 아주 오래 묻어두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다시 누군가의 파랑새가 될 수 있을까?”
그 기대를 저버린 지는 오래였다. 그래서 여자로서의 가꿈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매장의 대표로서 필요한 만큼만 단정하면 된다고 여겼다.
기초 화장, 최소한의 미용실, 막 입기 편한 옷, 오래 서 있어도 편한 신발.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스스로 빛나기 위해 잊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있었다.
기도, 소망, 밝음.
꽃과 향기를 좋아하는 마음.
고난의 순간과 절망의 나날에도 끝내 놓지 않았던 것들.
엄마로서의 단단함, 나눔과 베풂, 사람의 도리.
매장을 운영하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
친절, 미소, 서비스, 넉넉함. 이익보다 고객의 마음.
그리고—
그래도 여자이기에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첫 인상. 반짝임. 상큼함. 여인의 향기. 관계를 이루는 케미의 한 축.
그런데도 이상했다.
이 모든 것을 지키고도, 내 안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여자로서의 결핍은 결국 남자, ‘한 사람의 온기’였다.
나는 결핍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삶에 다른 쓸모는 필요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자신의 쓸모를 들고 다가온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왜 하필이면 이 조건을 다 장착한 남자인가.
[채석장. 위암 수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전 남편 둘을 합쳐 놓은 듯한 형편]
"하필이면~~~"
그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가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이상하게도 그 질문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밥을 먹자는 말이 아니라 내 일상을 본 것 같았다.
그게 더 불편했다.
"저 사람" "혹시…" "아니, 그만두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 채 그 질문을 한 번 더 떠올렸다.
그 남자가 자신의 쓸모를 내세우며 다가온다.
나는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어딘가에서 조용히 계산이 시작된다.
저 쓸모는
정말로
내 빈자리를 건드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