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간 7년을 깨운 건 예상치 못한 전화벨 소리였다.
늦은 밤이었다. 마감을 끝낸 매장은 아직 고요했다.
씻어내지 못한 커피 향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고, 창 밖의 가로등도 조금은 희미해져 있었다.
이 시간에? 누굴까.
동이는 잠시 벨이 울리도록 두었다. 받을까 말까.
그 짧은 망설임 속에 오늘이라는 날짜가 먼저 떠올랐다.
수화기를 들었다. 저편 목소리는 바로 들리지 않았다.
숨을 고르는 듯한 머뭇거림.
“저… 핫 카페라테입니다.”
자신을 메뉴 이름으로 소개하는 사람.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표현.
“아, 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늦은 시간이죠. 죄송합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세요.”
질문이 뜻밖이었다. 동이는 잠시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제때 먹기가 어려워서요. 대충 때우는 편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혹시… 저녁 식사 같이 할 수 있나 해서요.”
아, 또 이거구나. 익숙한 패턴. 익숙한 접근.
“감사합니다만. 손님과는 매장 안에서만 대화하네요.”
말은 단정했지만 톤은 낮게 눌렀다. 잠시 침묵.
“아… 그러시군요. 피곤하실 텐데… 편히 쉬세요.”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동안 귀가 따뜻했다.
하필 이 사람이야?
그런데…
왜 내 밥 먹는 걸 걱정할까.
추모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날이었다.
마음이 원래보다 더 예민했다. 내가 어디서 틈을 보였을까.
저녁 무렵이 떠올랐다.
당구 경기를 마친 세 남자. 왁자지껄하게 들어오던 발걸음.
동이는 그들의 주문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아 2. 핫 카페라테 1.
“그거 드리면 되죠?”
키오스크를 누르기 전에 먼저 말했다. 그녀 나름의 방식이었다.
손님을 기억하는 방식.
그게 혹시 틈이었을까.
처음 오는 손님께 드리는 감자칩. 취향을 기억해 주는 일. 말을 먼저 건네는 일.
그게 잘못이었을까.
낯선 전화는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자리가 잡히고 단골이 늘면서 괜히 떠보는 대화도 늘었다.
첫 번째 집적에는 “하실 말 있으면 매장에서 하세요.”
그래도 질척이면 “저랑 밥 먹는 거 사모님도 아세요?”
그 두 마디면 충분했다.
정중을 가장한 매몰참.
그 길로 발길을 끊은 손님도 있고, 여전히 빙글거리며 찾는 남정네도 있다.
매장을 인수한 지 3년.
마음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잡아가던 터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하필이면 이 사람이라니.
오늘 매장에서의 장면이 또 떠올랐다.
큰 형님이 손짓으로 불렀다. 말투는 거칠었지만 손님으로서는 깍듯했다.
그는 거두절미였다.
“핫 카페라테가 사장님을 좋아한대. 본인은 쑥스러워 말을 못 하겠대.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가진 건 두 쪽뿐이야.
7년 전 위암 수술했고, 지금은 채석장에서 청소부로 일해.
장교 출신인데 고추장을 많이 발랐어. 사람은 괜찮아.
내 역할은 이걸로 다했다. 둘이 잘해봐라. 이상. 끝.”
큰 형님 옆에서 그 남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말이 끝나자 그는 출입문을 박차듯 서둘러 나갔다.
짜증이 확 올라왔다. 하다 하다 이제는 이런 경우까지.
오늘은 원래도 울적한 날이었다. 기일. 겹겹이 쌓인 기억.
그런데 또 남자.
그가 처음 매장에 들어왔던 날을 떠올렸다.
아아 2. 핫 카페라테 1.
이 더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사연은 뭘까.
감자칩 쟁반을 내려놓으며 힐끗 봤다.
깡마르고 창백한 얼굴. 그런데 선해 보이는 눈빛.
큰 형님 말끝, “사람은 괜찮다.”
그 문장이 고개를 끄덕이게는 했다.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벤츠도, 아우디도 있었는데.
왜 하필.
첫 남편은 레미콘 공장에서 사고로. 두 번째 남편은 암으로.
그런데 이 남자, 채석장. 위암 절제 수술.
전 남편 둘을 합쳐 놓은 듯한 조건.
그래서 그 말이 또 튀어나왔다.
하필이면.
망설임 끝에 건 전화였다.
반기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밀어내는 톤도 아니었다.
“손님과는 매장에서만 대화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핫 라테는 묘하게 숨이 놓였다.
거절이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
그는 알고 있었다.
상처가 깊은 사람일수록 기준이 분명하다는 것을.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건 그만큼 자신을 지켜온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가벼운 말로는 안 된다. 가벼운 호의로도 안 된다.
제대로 가야 한다.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식사는 대충 때웁니다.”
그 말은 벽이 아니라 조심스레 남겨둔 빈칸처럼 들렸다.
안쓰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건 틈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제때 차려진 밥상"
그녀의 결핍은 거기에 있었다. 그 결핍은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자리였다.
치유 기간에 살아남기 위해 혼자 차려 먹었던 밥상들.
그 밥상이 이제야 쓸모를 증명할 기회로 다가온 것 같았다.
서둘러야 했다.
지금 그녀는 분명 자신을 돌아보고 있을 것이다.
저녁에 큰 형님이 사랑은 직진이라며 거두절미 무방비 상태의 그녀에게
상식 밖의 방식으로 내 신상을 털어놨다.
그건 폭탄이었다.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수척한 외모에 위암 수술했고, 채석장 청소부.
중년의 여자가 피하고 싶은 조건을 완벽하게 장착한 남자.
그 이미지가 콘크리트처럼 굳기 전에 다른 걸 보여줘야 했다.
나는 가진 게 없었다
그러나 오래 축적된 것이 있었다.
사람 냄새.
그리고 그녀의 결핍을 채울 쓸모.
지금은 첫 번째 쓸모를 발휘해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준비한다.
손글씨 편지와
열무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