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운명-각자의 삶(동이)

첫 번째 이별-1

by 또 래 호태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불과 스물세 살의 나이에.
아직 스물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내와 세 살배기 아이,
그리고 배 속의 한 생명을 남기고.



1991년 7월 28일, 일요일


배 속에는 예정일을 열흘이나 넘긴 둘째가 있었다.


오전 열한 시,

동이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만삭의 몸으로 예배실에 들어섰다.
시댁 근처의 작은 교회. 유아실도 없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예배실 문가, 신발장이 보이는 구석 자리에 아이를 앉혔다.
아이의 작은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아 공중에서 허공을 찼다.


동이는 아이의 발끝을 한 번 더 쓸어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배 속에서는 곧 세상에 나올 또 하나의 생명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딩엄빠」

남편은 동갑내기 교회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 만나, 이내 부모가 되었다.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된 셈이었다.


바로 위 언니의 권유로 나간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이성에 눈을 뜨며 막연히 그려보던 남편상에 꼭 맞는 사람이었다.
술을 멀리하고, 가정적이고,
쌍꺼풀은 없어도 눈이 큰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


청년부 활동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끌렸고
그 마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깊어졌다.


한순간의 열정이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는다는 걸
그땐 아무도 몰랐다.


겨울이 막 끝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졸업식 꽃다발은 이미 말라 있었고
책상 위에는 아직 반납하지 못한 교복이 걸려 있었다.


며칠째 속이 메스꺼웠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침마다 울렁거리는 속과 예민해진 후각이 이상했다.


작은 약국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테스트기를 샀다.
화장실 불빛 아래, 숨을 죽였다.


그리고 하얀 막대 위로
두 줄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세상이 멎었다.
손끝이 떨렸고 가슴이 툭, 내려앉았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속삭였다.
“하나님… 왜 저한테 이 생명을 주신 거예요.

창문 너머로 햇살 한 줄기가 들어왔다.
그 빛 속에서 아직 이름도 없는 생명이
조용히 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남자 친구를 불렀다.


학교 앞 골목길.
분식집은 문을 닫았고
버스 정류장 불빛만 깜빡였다.


떨리는 손으로 테스트기를 내밀었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진짜야?”
“응…”


길고 긴 침묵 끝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낳자.”


동이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우지 말자.
이건… 우리한테 온 생명이니까.”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였다.
통장엔 알바비 몇십만 원이 전부였고
미래는 안개 속이었다.


그럼에도 그날,
그들은 부모가 되기로 약속했다.


임신 소식이 알려지자 친정은 순식간에 폭풍이 됐다.

“부끄러워서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보냐.”


어머니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언니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내 너 연애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식탁에 앉아도 숟가락은 건너오지 않았다.

“그 집으로 가.
네가 택한 거니까.”


동이는 울지 않았다.
울면 약해질 것 같았다.


시댁은 읍내 끝 허름한 단층집이었다.
낡은 장판, 새어 들어오는 바람.


그래도 동이는 불을 지피고 밥을 지었다.

쌀 씻는 물에 눈물이 섞였다.


시어머니는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찌 키우려고… 이런 철딱서니들.”
그러면서도 덧붙였다.
“아이는 내가 돌봐주마.”


형편은 어려웠지만 어머니는 살가웠고 자애로웠다.
남편은 서툴렀지만 진심이었다.


밤마다 라면 하나를 나눠 먹으며 말했다.
“나, 일 더 구할게.
우리 아기 태어나면 더 열심히 살자.”


그 말에
동이는 울컥했다.

방 한편 낡은 전기장판 위에서

둘은 서로의 체온으로 겨울을 났다.


세상은 그들을 철부지라 불렀지만
그 밤만큼은 누구보다 어른이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동이는 작은 손가락을 쥐고 한참을 울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기쁨과 두려움,
그리고 결심이 뒤섞인 울음이었다.
‘하늘이 주신 선물.
보란 듯이 잘 키우겠어.’


남편은 공사장 막일을 시작했다.
겨울엔 손이 터졌고 여름엔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래도 그는 늘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기, 오늘 엄마 젖 잘 먹었대?”


그 한마디에
동이의 하루는 녹아내렸다.


첫째가 두 돌이 지날 무렵
둘째가 찾아왔다.


기쁨과 막막함이 동시에 왔다.

남편의 품에서 나는 흙냄새와 땀 냄새는
동이에게 세상의 모든 향기였다.


그 냄새는
‘살아냄’의 냄새였다.


예정일이 열흘 가까이 지나 있었다.

몸은 무겁고, 가슴은 답답했다.
밤마다 진통이 올 듯 말 듯하다 사라졌다.


전날 밤, 남편은 툇마루에 앉아 동이의 손을 잡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걱정 마. 다 잘될 거야.”


「운명의 날」

7월 28일, 일요일 새벽.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동이는 부엌에 불을 켰다.
냉장고 속 남은 반찬으로 허둥지둥 밥상을 차렸다.

“밥은 먹고 가야지.”


남편은 급히 밥을 삼켰다.
“오늘 일찍 올게. 병원 같이 가자.”


그는 모자를 쓰고

허름한 가방 하나를 들러매고 나갔다.


문이 닫히고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다.


동이는 그 자리에 앉아
배를 쓸어내렸다.


열하루 전,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친정어머니는
“첫째 태어났을 때는 너무 미안했다.

이번만큼은 내가 도와줄게”라며 미리 내려와 있었다.


예배가 시작된 지
이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각자 기도에 잠기는 시간.

동이는 늘 하던 기도를 올렸다.
“오늘도… 제발 안전하게.”


그때였다.
예배당 문이 벌컥 열렸다.

친정어머니였다.


얼굴은 사색이었고 숨이 가빴다.

“철이 아빠가… 응급실로 실려 갔단다.”

그 말끝에서, 엄마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동이는 알았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는 걸.



「응급실」

남편의 발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에는 인공호흡기가 끼워져 있었고
기계가 움직일 때마다 피가 거품처럼 섞여 나왔다.


의사는 차갑게 말했다.
“사망하셨습니다.”


그 말 한마디로
동이의 인생은
전과 후로 갈라졌다.


시어머니께는 아들의 사망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못했다.

대신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철이 아빠. 갔어요."


그녀는 울 수도 뛰어나갈 수도 없었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배속의 생명을 지켜야 했다.


동이는 병실 침대 위에서

죽은 사람의 아내이자, 아직 낳지 못한 아이의 엄마로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었다.


가슴은 터질 듯했고, 양수는 이미 불안하게 차올랐다.

남편의 시신은 병원 냉장실에 머물렀다.


장례는 5일 장으로 치러야 했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또 하루를 견뎠다.


이틀 뒤,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아들이었다.

둘째는 아빠 없는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이의 울음소리가 병실 가득 울려 퍼질 때,

동이는 비로소 흐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한꺼번에 한 생을 잃고 한 생을 얻는
잔혹한 운명이 쏟아낸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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