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큰바위 얼굴의 꾸짖음_그래서 성자가 될 수 없는

by 또 래 호태

동료와의 갈등


내가 첫 출근한 7월 19일부터 소동이 있은 이 날까지, 스크린동(棟) 청소는 늘보 형이 전담했다.

물론 중간중간 공치사도 빠지지 않았다.


11월 14일 아침, 출근길은 유난히 설렜다.

채석장 근무 4개월이 다 돼가는 시점.

바야흐로 채석장 100% 즐기기를 만끽하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열주임의 파란만장한 인생담에 박장대소하던 순간, 대기실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늘보 형이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아니 18. 석분 더미 좀 사전에 치워달라는데, 여기서 시시덕거리면 어떡해?”


금시초문이었다. 못 들었다. 열주임도 거들었다.

“내가 계속 같이 있었는데 그런 얘기 없었다.”

증언까지 나왔지만 소용없었다.

늘보형은 “다시는 스크린동 물청소 안 해”라고 선언하더니, 출입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열주임이 혀를 찼다.

“큰일이네. 쟤 한 번 삐지면 1년도 가는 녀석인데….”


사실은 천평 형이 늘보 형의 요청—사전에 석분 더미를 치워 달라는 말—을

깜빡 잊고 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원인이 밝혀졌는데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날 이후 늘보 형은 스크린동에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늘보 형을 쉽게 용서하지 못한 이유는, 그의 저의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는 것.

누구보다도 스크린동(棟)을 홀로 삽질로 청소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본인이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오며 가며 빤히 들여다보고도, 내가 방법을 몰라 끙끙거리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다.


말 한마디 없었다.


철저한 무관심과 언급 회피.

이쯤 되니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아는 체했다가 덤터기라도 쓸까 무서워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치사한 인물이다.


이런저런 험담도 들려왔다.

이전까지 물청소하고 온 날이면 그는 곧 채석장을 떠날 사람처럼 불평을 늘어놓았단다.

7년 동안 이어진 레퍼토리라고 했다.


치졸한 인간이 점차 측은해지기 시작했다.

어찌 저리 살꼬?

드라마 국극 ‘정년이’의 대사가 떠올랐다.

가엾은 구슬아기!


가엾은 늘보형!


결국 나는 삽질이 늘었고, 그는 그만큼 줄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스크린동 청소 일은 그가 의도한 대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날마다 녹초가 된 나를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못된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문득 깨달았다. 내 마음이 썩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책 제목을 『유쾌한 삽질』, 부제를 ‘성자가 될 뻔한 청소부’로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삽멍의 시간.

지난 삶의 과오를 되짚고, 새로운 결심과 실행이 이어지면서 완전히 달라진 나로 거듭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깨닫기만 해서는 성자가 될 수 없다.

사람과 삶에 대한 성찰,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건 반쪽짜리 깨달음이다.

다툼의 원인이 100퍼센트 그에게 있었더라도, 나는 그를 미워했고 원망했다.


나의 한계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호태



청소부라는 이름의 정체성


트리플 A형, 예민하고 쉽게 꽁한 성격의 두 사람—늘보 형과 나—은

어느새 대기실에서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었다.

말은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본사 현장담당 '이 반장'이 상황을 알아차리고 영문을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특유의 명쾌함으로 정리했다.

“청소는 청소부인 강(호태) 기사 담당입니다.

다만 청소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콘 내부의 역할 모호함이 문제였던 겁니다.”


그 한마디에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그제야 내 신분을 자각했다.

그래, 나는 청소부다. 내가 할 일은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날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곧바로 스크린동 물청소를 시험해 봤다.


호스를 움켜쥐었지만 수압은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팔이 뒤로 밀리고, 어깨는 끝까지 버텨내지 못했다. 근력이 아직 부족했다.

게다가 계절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물청소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



선순환의 시작 그리고 큰 바위 얼굴


결국 삽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하루 평균 400여 삽을 추가로 퍼 날라야 했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다행히 시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근력과 체력이 눈에 띄게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내 몸이 감당하지 못할 상태였다면, 이 일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불평이 스멀스멀 올라오긴 했다.

그래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한숨, 원망, 욕이 세트처럼 목구멍까지 차올라 툭툭 튀어나왔다.


11월 말, 낙엽이 모두 떨어진 채석장은 한층 더 적막했다.

채굴이 끝난 다섯 개의 바위산은 속살을 드러낸 채 서 있었고,

자연복구를 위해 심어 놓았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수풀이 마르고 초록빛이 사라지자 풍경은 돌과 바위의 거친 숨결만 남겼다.


그중 한 곳, 평소에도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바위가 있었다.

늘 헛것이라며 웃어넘기곤 했지만, 풀과 덤불이 사라진 지금은 그 윤곽이 더욱 또렷해졌다.

움푹 파인 눈매, 돌출된 코, 굳게 다문 입, 입가에 걸린 듯한 바위의 수염.

보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천사처럼도, 선인처럼도, 때로는 고독한 노인처럼도 보이는 자연의 조형물.



큰바위 얼굴(가로 버전).png


그날 나는 그 바위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큰 바위 얼굴.’


그 얼굴은 마치 누군가에게 “너도 언젠가는 너의 얼굴을 닮아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바람은 차가웠으나, 그 바위 앞에서 내 마음은 조금 더 깊어지고, 조금 더 고요해졌다.


11월 14일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나 자신의 변화가 놀라웠다.

화내지 않았고, 원망하지 않았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았다.

암덩어리를 키웠던 끙끙거림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나’가 있었다.


'삽멍의 시간'에 맞이하는 수많은 깨달음.

'성자 = 깨달은 자', 내가 '성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11월의 바람은 그 교만을 단숨에 걷어냈다.

대기실에서 시작된 갈등, 늘보 형과의 오해, 미워하고 상처받는 내 모습.

그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성찰은 컸으나 마음은 좁았고, 사유는 깊었으나 가슴은 실개천이었다.


그날, 앙상해진 채석장의 바위산 앞에서 나는 '큰 바위 얼굴'을 마주했다.

바위 속 그가 침묵으로 나를 꾸짖고 있었다.


“깨달음만 있고 실천이 없다면, 대체 무엇이 달라졌다는 게냐.”
“미움 하나 비우지 못하면서 무슨 성자를 꿈꾸느냐.”


나는 부끄러웠다.

삽질은 했지만 마음의 앙금은 그대로였다.

진창의 작업장에 길은 냈지만 가슴의 진창은 엉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유쾌한 삽질』책의 부제를 고쳐 썼다.

'성자가 된 청소부’가 아니라 ‘성자가 될 뻔한 청소부’로.


그 한 글자 차이가 내 인생 전체를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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