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눈 대화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호태야.”
박성현이었다.
“갔다 왔어?”
호태가 묻자마자 말했다.
“응.”
“나한테 얘기한 대로 했니?”
잠깐의 공백 뒤에 호태가 물었다.
“응. 세 시간.”
“세 시간?” "오래도 했다."
호태가 되물었다.
“교무실 앞에서.”
박성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호태가 웃으며 말했다.
“팔 안 아파?”
“허리는 괜찮고?”
곧바로 덧붙였다.
“야, 말도 마라.”
박성현이 웃었다.
“애 기죽이지 않으려고 했다가 내가 죽을 뻔 봤다.”
“에고.”
호태가 혀를 찼다.
“녀석도 참, 극성이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호태가 다시 물었다.
“근데 애들 표정은 어땠어?”
“뭐, 일단 미안해 죽을라 그러지.”
박성현이 말했다.
“근데 있잖아, 애들 표정은… 뿌듯해 보이더라.”
“뿌듯?”
호태가 되물었다.
“응.”
박성현이 웃음을 삼켰다.
“무슨 각오 다지는 얼굴 있잖아. 결심 같은 거.”
호태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다음 질문이 나왔다.
“학교 쪽에서는 뭐래?”
“음… 다들 놀라더라.”
박성현이 말했다.
“야, 생각해 봐라.
머리 허연 아줌마가 다짜고짜 무릎 꿇고 세 시간을 벌서고 있는데.”
“선생님들?”
호태가 물었다.
“안절부절.”
박성현이 웃었다.
“그 모습 참 볼 만했어.
내가 내색은 안 했는데, 속으로는 얼마나 웃겼는지.”
“그래서?”
호태가 재촉하지 않고 물었다.
“그 덕분에 말이야.”
박성현이 말을 이었다.
“아이들 규정 위반 처벌이 수능 후로 미뤄졌어.”
호태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냐, 진짜.”
박성현이 말을 받았다.
“안 그랬으면 수능 점수 낮아졌을 거고,
그게 애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겠어.”
잠시 침묵.
박성현이 덧붙였다.
“요즘 세상에, 안 그래?”
호태가 웃으며 말했다.
“성현아, 너 이번에 다시 봤다.”
“짐작은 했었다만,”
그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기상천외한 방법까지 동원할 줄은 몰랐다.”
“야.”
박성현이 웃었다.
“아이디어랄 게 뭐 있냐.”
“그래도.”
호태가 말했다.
“그런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 나한테도 좀 알려줘라.”
“뭐, 특별한 거 있겠어.”
박성현이 말했다.
“우선은 자식 사랑이고.”
잠깐 멈췄다가,
조금 느리게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더 있다면…”
“자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었어.”
“자리?”
호태가 물었다.
“응.”
“어른이 있어야 될 자리.”
박성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우리 세대는 말이야.”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잖니.”
“내가 주부라도,”
그녀가 웃으며 덧붙였다.
“나름 꽤 반듯한 아줌마 아니냐.”
호태가 웃었다.
“그렇고 말고.” "너야말로 진짜 어른이지."
"내가 바로 인정하잖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박성현이 말했다.
“저 녀석들 평생 담배는 쳐다도 안 볼 거다.”
“하하.”
호태가 짧게 웃었다.
“성현아.”
그가 말했다.
“내가 그래서 너 존경하는 거 아니냐.”
“에이.”
박성현이 손사래 치는 소리를 냈다.
“오버는.”
“아니다.”
호태가 말했다.
“오늘 큰 일 했다.” “이제 편히 쉬어라.”
“응.”
박성현이 답했다.
“너도.”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호태는 수첩을 펼쳤다.
이미 적혀 있던 줄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 어른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켰다
다만,
그는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