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켈리박' 인물 인터뷰
그저 하루하루 잘 보내는 제 일상에 대한 예찬이랄까요.
저는 매일 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일상 안에서 느껴지는 꿈과 사랑의 대상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의 영감이 되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어떤 꿈을 꾸고 무엇을 사랑하고 있나요? 꿈과 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 또는 운명 같은 일과 인연을 마주하는 걸 떠올리며 마음속에 부푼 기대감을 안겨주지만, 때론 막연한 기대감이 갖는 틈사이로 현실의 막막함과 허망함 감정이 스며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꿈과 사랑은 지금의 아닌 미래와 과거의 기대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여기, 하루하루 보내는 자신의 일상을 예찬하며 그 안에서 느끼는 꿈과 사랑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바로 켈리박 스튜디오의 켈리박 작가인데요. 그는 하루를 온전히 잘 보내기 위해 매일 아침 계획표를 만들고 작업과 생활의 조화로운 균형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마다치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담은 그의 작품을 볼 때면 사소한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 그 안에서 발견하는 꿈과 사랑의 가치를 여러분과 깊게 나누기 위해 그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갑네요(웃음). 먼저 작가님에 대해 간단한 소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A. 네 안녕하세요, 저는 일상으로부터 나온 소재들로 다양한 아트웍 작업을 하고 있는 켈리박 스튜디오의 박규리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웃음).
Q ‘켈리박’이라는 활동명을 사용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저는 이전부터 줄곧 제 이름이 성격에 비해서 너무 여성스럽고 예쁘기만 한 느낌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예전에 유학생활 할 때 외국인들이 제 이름을 두고 ‘큐리’라고 부르던 게 너무 귀여운 느낌이 들었는데 저는 그게 싫었거든요. 물론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귀한 이름이지만 제 성향에 좀 더 잘 맞는 이름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켈리’라는 이름이 떠올랐어요. 뭔가 우아한 느낌과 함께 독립적이고 진취적일 것 같은 여성의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을까 해서 사용하게 되었죠.
Q 작가님께서는 평소에 스스로를 ‘몽상가’ 아티스트라고 소개하시곤 하는데, 그 이름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건지 궁금해요.
A 저는 이전부터 꿈과 사랑이라는 소재를 갖고 아주 많은 작품을 만들어 왔는데요 정말 흔하고 유치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 인생에선 그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삶을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다양한 꿈도, 남녀 간의 사랑뿐만이 아닌 전체적인 삶에 대한 사랑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 가져갈 중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두 가지 단어가 제게 있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해서 ‘몽상가’라는 소개말을 사용하고 있어요.
Q 켈리박의 작업을 대표하는 꿈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작가님께선 하나의 의미로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A 네, 저는 그게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조금 개인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 예술 작업으로 사회에 큰 공헌을 하겠다는 거창한 사명감이라 할 만한 건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제 작업을 대변하는 꿈과 사랑이라는 소재는 그저 하루하루 잘 보내는 제 일상에 대한 예찬이랄까요. 저는 매일 같이 반복되는 그 하루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그 안에서 느껴지는 꿈과 사랑의 대상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의 영감이 되는 것 같아요.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온전한 제 하루를 완성하는 꿈과 사랑들이 그대로 작품에 담기는 거죠.
Q 반복되는 하루를 유지하고 또 되돌아보는 관점을 유지하는 것도 무척이나 어려울 것 같은데요, 지금 보내고 있는 일상에는 만족하고 계시나요?
A 만족하기 위해 날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하루를 시작할 때 그날의 원형 계획표를 작성하고, 마무리할 때면 그날의 점수를 매기곤 하는데 그게 제 일상 속에서 작업과 생활의 조화로운 균형을 맞추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거든요. 요즘은 작업 준비 때문에 가끔씩 생활리듬이 깨질 때가 있어서 80점 정도로 만족하고 지내는 것 같아요.
Q 그럼 어떤 일상을 보낼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시나요?
A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직전까지 그날의 하루를 굉장히 잘 보냈다고 생각될 때 가장 행복해요. 작업에 열중해서 많은 작품을 만들어낸 날도 아니고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논 날도 아니에요. 제 작업과 생활의 균형이 알맞게 맞춰진 하루를 보냈을 때, 시간을 되돌려서 그 하루를 다시 보낸다고 할지라도 변함없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가장 큰 행복감을 느껴요.
Q 혼자서 일을 하시다 보니 아무래도 스스로 몰아붙여야만 하는 상황이 많을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일하면서 어떨 때 가장 힘들다고 느끼시나요?
A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은 제가 2년에 한 번씩 여는 개인전을 준비할 때마다 늘 반복적으로 찾아와요. 아무래도 오롯이 제 이름을 걸고 준비하는 작업이다 보니까 물리적인 작업량 자체가 많고 큰 규모의 전시에 대한 부담감과 사람들 반응에 대한 막연한 걱정들이 한 번에 찾아오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는 정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고요.
Q 그렇다면 작가 켈리박으로서 기억에 남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작업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A 지금은 잠시 중단됐지만, 어찌 보면 지금의 제 모습을 갖게 해 준 ‘The Bag Project’라는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엔 ‘예쁜 가방에 예쁜 그림을 그려내면 사람들이 좋아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나중에는 직접 의뢰를 받아서 그분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주는 형식으로 작업했어요. 자기 집 강아지 이야기나 본인의 인생 슬로건처럼 정말 사적인 메시지를 전달받아서 커스텀해드리니 많이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게 어떻게 보면 가방이라는 일상적인 물건에 저마다 느끼는 꿈과 사랑의 대상을 담아줄 수 있었던 경험인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프로젝트가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작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Q 작가님은 본인의 작업물이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갖길 바라시나요?
A 저는 사람들이 제 작품을 한눈에 봤을 때 바로 ‘예쁘다’, ‘예뻐서 갖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원래는 저도, 제 작품도 깊은 서사와 진지한 의미를 항상 내포하고 있지만 그걸 강요하거나 봐달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깊고 심오한 의미에서 나오는 감탄도 좋지만 애초에 저는 단순 명료하게 행복한 밝은 삶을 지향하거든요. 제 작업도 그랬으면 좋겠고요.
Q 작가님께선 작품 활동 외에도 책을 내시거나 개인 브랜드와 유튜브 채널 운영까지 하면서 정말 많은 일을 소화하고 계시는데, 각기 다른 작업들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나가고 계세요?
A 목표나 성과가 아닌 삶의 밀도를 쌓아가는 과정에 집중하려고 해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재밌다고 느끼고 있는데 그럼에도 가끔씩 매너리즘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결과만을 위해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 보면 금방 지쳐서 지속할 수 없거든요. 그럴 때 저는 다른 일을 해요. 예를 들어 작품을 그리다가 지치면 유튜브 편집을 하고, 편집하다가 지치면 브랜드와 관련된 일을 하는 거죠. 또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작업의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물론 어떠한 분야건 결국 권태롭고 지치는 순간이 다시 찾아오겠지만, 그런 딜레마를 극복하는데 환기를 더해주는 각기 다른 일들의 상호작용이 좋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Q 물리적인 시간의 제한으로 다양한 일들을 소화하기 어려울 땐 어떻게 조절하시는지 궁금해요.
A 그럴 땐 일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두고 과감히 조절하면서 밸런스를 맞춰가려고 해요. 결국,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작품 활동이고 그 외 유튜브나 개인 브랜드 운영 같은 일은 후순위니까요. 예전에 제가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한 주에 한 번씩은 꼭 영상을 올리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다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개인전 날짜가 다가올수록 물리적인 한계와 마주하게 되니 그 약속을 깨야만 하는 순간이 생기더라고요. 여가시간을 쪼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가장 중요한 제 작업 시간을 쪼개서 다른 일을 하는 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었기에 정말 부끄럽지만, 거짓말쟁이가 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포기했죠. 명확한 우선순위에 있는 일을 지켜내는 게 제 작업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데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누구나 저마다의 꿈을 갖지만, 현실적인 이유에 단념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명백히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호기심이 많다는 건 무언가 계속 궁금하고 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많다는 뜻이잖아요. 반대로 호기심이 없으면 물욕도 없고 시도해보고 싶은 것도 없고 자칫하면 모든 것에 다 냉소적이거나 염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꿈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건 내 안에서 호기심이 존재하느냐 혹은 사라져 버리느냐가 가장 큰 요건인 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 저도 호기심이 점점 줄어들어서 큰일이에요(웃음).
Q 지금처럼 작가님의 일상의 원동력인 호기심이 줄어들 때면 어떤 방법을 통해 극복하시나요?
A 물은 미지근한 온도가 좋다고 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한 분야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 때, 그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경험을 하려고 해요. 한 때 제가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자 정말 단조롭고 조용한 일상만 보냈던 적이 있는데, 어느 순간 두려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 내면에는 깊은 고요함이 있어서 극단적인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거기에 그냥 갇혀버릴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가서 쇼핑했어요. 뭔가 이해하기 힘드실 수도 있겠지만(웃음), 백화점에서 쇼핑한다는 건 미니멀 라이프와 정반대에 있는 극단적인 행위잖아요. 억지로라도 그런 경험을 통해 밸런스를 맞추면서 극복해 왔던 것 같아요.
Q 이제 작가님의 방향성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작가 ‘켈리박’으로서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나요?
A 저는 가수 김동률 같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왜 그냥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노래 있잖아요. 누구나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노래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또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아도 결코 촌스럽지 않은 좋은 음악으로 회자될 수 있는 노래, 그런 작업을 하는 분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저 역시 깊고 심오한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업보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 미술을 하고 싶어요.
Q 그럼 인간 ‘박규리’로서 꿈꾸는 이상적인 일상의 모습은요?
A 지금도 저는 반려견 감자와 보내는 하루하루 일상을 오롯이 잘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 일상을 잘 가꿔나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뛰어난 성공을 거두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지고 명예를 얻어서 더 좋은 집과 좋은 음식을 먹으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도 너무 훌륭한 모습이지만 기존에 제가 가져온 온전한 일상을 무너뜨리면서 이뤄야 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처럼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요.
Q 앞으로 작가 켈리박으로서 그리고 인간 박규리로서 갖는 조화로운 일상을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갖고 살아가실 예정인지도 궁금해요.
A 앞서 말한 호기심도 정말 중요하지만, 요즘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키워드는 바로 체력이에요(웃음).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귀하다는 것만 생각하고 아주 빈틈없이 채워진 계획대로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다양한 운동을 시도해 봤는데 저는 등산이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서 꾸준히 다니며 체력 관리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고 해요.
Q 마지막 질문이네요. 앞으로 10년 뒤 혹은 그 이상의 먼 훗날에 작가님은 어떤 모습을 갖고 살아가길 바라시나요?
A 계속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특별한 삶이라는 게 꼭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추앙받는 걸 뜻하는 건 아니에요. 물론 다른 면에서 굉장히 특별한 거지만, 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나가는 삶이 더 특별하다고 느껴져요. 가끔씩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 중에서 공부에 매진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손녀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젊은이들 못지않게 개성 있는 스타일을 드러내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지나온 삶의 무게에 대한 책임감을 갖되 어린아이처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그의 일상의 장면을 보며 느낀 게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 안에서도 특별한 꿈과 사랑을 발견하는 건 우리의 시선과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요. 이른 아침 눈부시게 들어오는 햇볕에 따스함을 느끼며 활기찬 하루의 시작을 돋우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를 위한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 또, 나의 일상을 지탱하는 작업에 몰입하는 순간과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휴식의 시간을 즐기고 감사하는 것. 그동안 쉽게 지나쳤던 하루를 완성하는 순간들이 어쩌면 꿈과 사랑이 닿아 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옷, 가방, 공간,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꿈과 사랑을 그려내는 캔버스가 되는 그녀의 작업처럼, 여러분들도 무심코 지나치는 작고 사소한 순간에도 꿈과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일상을 이뤄나가시길 바랍니다.
해당 인터뷰는 24/7 series 에디토리얼 콘텐츠로 기고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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