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학원은 늘 그렇듯 분주했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조용해졌다. 나는 교장 선생님이 식당에서 싸 온 도시락을 안 먹는다기에 받아서 먹으려고 보니 양고기였다. 그 양고기.... 그랴서 그냥 버리려고 들고 화장실로 향하던 중, 데스크에 앉아 있던 그녀를 발견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점심을 먹으러 갔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홀로 서류를 정리하며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어, 저기요. 밥은 먹었어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직요. 시간이 좀 애매해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도시락을 버릴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그럼, 이거라도 드세요. 제가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많아서요.”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가 도시락을 받아 드는 모습이 어딘가 보호해 주고 싶은 기분을 들게 했다.
옷가게에 가기 전, 그녀에게 제안한 순간
주말이 다가오던 어느 날, 학원에서 일을 마친 뒤 나는 슬쩍 데스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CC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이 길고 가늘어, 펜을 들고 글씨를 쓸 때조차도 어딘가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한동안 망설였다. '옷을 사러 가야겠는데, 혼자 가긴 좀 그렇단 말이지.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까?'
마침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저기, CC 씨.”
그녀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며 손에 든 펜을 내려놓았다.
“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나는 괜히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주말에 혹시 시간 있으세요?”
그녀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음… 특별히 약속은 없는데요. 왜요?”
나는 조금 긴장하며 말을 꺼냈다.
“제가 옷을 좀 사러 가려고 하는데요. 혼자 가면 영 눈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가서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가 곧 대답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주말에 같이 가요.”
그녀의 긍정적인 대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맙다고 말했다.
옷가게에서의 어색하고도 즐거운 시간
주말 오후, 우리는 학원 근처의 번화가에 있는 쇼핑몰에서 만났다. 그녀는 평소 학원에서 입던 단정한 복장이 아닌, 조금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짧은 코트에 스키니 팬츠를 입은 모습이 생각보다 더 세련돼 보였다.
“생각보다 옷 잘 입으시네요?” 내가 놀란 듯 말하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엔 그냥 간편하게 입어요. 오늘은 조금 신경 썼죠.”
우리는 쇼핑몰 안의 한 옷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화려한 조명이 각종 의류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 옷을 고르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어때 보여요?”
내가 고른 재킷을 들고 물었더니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디자인은 괜찮은데, 색상이 조금 무거운 것 같아요. 다른 걸 한번 보실래요?”
그녀는 내게 옷걸이를 건네며 추천해 주기도 했다.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서 옷을 드는 모습조차 어딘가 섬세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추천대로 밝은 색상의 셔츠를 골라 입어 보았다.
“어때요?”
“오, 이건 훨씬 잘 어울리세요.”
그녀의 칭찬에 조금 어색하지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점점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아요? 너무 오래 봤나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쇼핑은 원래 이런 거잖아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맙다는 의미로 함께한 식사
쇼핑을 마치고 계산을 끝낸 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고생하셨으니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괜찮은데….”
“안 돼요. 이건 제 고마움의 표시니까요.”
우리는 근처 고깃집으로 향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들리고, 연기가 가득한 가게 안은 활기가 넘쳤다. 직원이 고기를 구워주는 동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CC 씨, 고기는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근데 자주 먹진 않아요.”
“그럼 오늘 많이 드세요. 제가 사는 거예요.”
고기가 익어가며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몽고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어렸을 때 학교에 다니며 겪었던 일들,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몽고는 정말 넓고 평화로워요. 서울이나 칭다오처럼 복잡한 도시는 아니죠. 겨울엔 눈이 많이 오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따뜻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그녀에 대해 조금씩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의 작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길은 고요했고,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가는 실루엣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옷도 잘 고르시고, 밥도 맛있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더 고맙죠. 덕분에 좋은 옷 샀고, 좋은 시간도 보냈고요.”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며,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다음에 또 밥 같이 먹어요. 아니면, 이번엔 제가 커피라도 살게요.”
그녀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날 이후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매일같이 보던 학원의 데스크가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와의 새로운 인연은 그렇게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