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삭제되지 않는 기억

by leolee

늦은 오후,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카페 내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잔잔한 분위기였다.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은 아직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해가 저물며 부드러운 주황빛이 스며들었다.


이승기의 ‘삭제’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멜로디와 슬픈 가사가 카페 전체를 감싸며 내 마음까지 흔들었다.

“한 장씩 ~ 너를 지울 때마다 가슴이 아려와…”

가사는 흩어진 기억을 조각조각 모아 내 눈앞에 펼쳐 보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갤러리 앱을 열었다.


팔대관에서의 기억: 행복했던 순간


화면을 넘기던 내 손가락이 멈췄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풍경. 팔대관에서 찍었던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엔 짧은 숏컷의 세라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모델처럼 늘씬한 몸매와 자신감 넘치는 눈빛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날, 우리는 팔대관의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서로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땐 정말 행복했었지.’


사진을 넘길수록 팔대관에서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맑은 하늘 아래,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 그리고 함께 찍은 셀카 속의 웃음소리.

‘그때는 아무 걱정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는데….’

나는 사진 속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순수했고, 그녀와의 미래만을 꿈꾸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 속, 세라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콜라로 닭날개를 요리한다고?"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해 보면 알 거야. 정말 맛있다니까."

그날 그녀는 요리를 가르쳐 주었고, 나는 서툴게 따라 하며 그녀를 웃게 했다. 내가 만든 콜라 닭날개를 그녀가 한 입 베어 물고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맛있다! 너, 요리 잘하잖아!"

그녀의 웃음소리가 떠오르며 가슴이 찡해졌다. 그 순간, 그녀가 내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사진이 바뀔 때마다 우리 사이의 현실적인 벽이 떠올랐다. 그녀 부모님의 반대와 우리의 무력함.

"우리… 앞으로 괜찮을까?"

그녀의 불안한 목소리와 표정이 내 머릿속에 스쳐 갔다. 우리는 사랑했지만, 끝내 이겨낼 수 없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을 느끼며 지냈다.


휴대폰을 바라보던 내 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이 사진들, 지울까?’


노래는 계속 이어서 흘러나왔다.

“너의 사진이 점점 흐려져…”

가사가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사진을 삭제하면 그녀와의 기억도 희미해질까? 아니, 아예 잊혀질까?


내 손은 화면 위에 멈춰 있었지만, 결국 삭제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녀와의 기억은 내 성장의 일부였다. 그녀와의 시간을 지울 수 없듯, 나는 내 과거를 부정할 수 없었다.


커피숍의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쳤다. 잔잔한 음악, 커피의 향, 그리고 이곳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이 나를 안정시켰다.

‘지울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밖으로 저무는 해가 새로 시작될 내일을 예고하는 듯했다.

‘새로운 사랑을 준비해야겠지.’

나는 고개를 들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섰다.

keyword
이전 16화아찔한 순간을 표현하는 '을/ㄹ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