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은 채 그저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수업이 끝난 후 그날 가르쳤던 내용을 곱씹으며,
어려웠던 부분을 어떻게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긴 했지만, 교육 전문 서적을 찾아보거나 더 깊이 있는 준비는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진도만 나가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의 질문은 점점 복잡해졌다. 초반에는 단순한 단어의 의미를 묻던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문법의 차이나 사용법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선생님, '에'랑 '에서'의 차이는 뭐예요?"
"이 표현은 언제 써요?"
그때마다 나는 솔직히 난감했다. 문법이라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규칙이지, 내가 전문가로서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 말해요."
"그냥 비슷해요."
이 말은 그때 나의 만능 답안이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이 반복되면서 나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걸 대답하지 못할까? 한국인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문법책을 사서 중국까지 배송을 받았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한국어가 생각보다 훨씬 세세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관점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도 느꼈다.
내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표현들이 각기 미세한 차이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한국어가 더 이상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느껴졌다.
수업에서 학생들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들의 질문은 여전히 쏟아졌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조금 더 쉽게 대답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전문적인 답변을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선생님, 이 표현은 왜 이렇게 써요?"
"음...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요."
"그럼 이건요?"
"이것도 비슷한데, 그 상황에서는 이 표현이 더 자주 쓰여요."
이런 식으로 나는 문법책을 보고 나서도 완벽하게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에둘러서 넘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더 발전했다고 느꼈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더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문법책을 펼쳤을 때, 나는 그 두께에 살짝 겁이 났다. 내가 몰랐던 것들이 이렇게 많았나? 책장을 넘기면서 한국어의 다양한 규칙과 예외를 접할 때마다 새로웠다. 예를 들어,
'에'와 '에서'의 차이는 단순한 장소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동작의 흐름이나 정적인 의미가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는 주로 목적지나 상태를 나타내지만, '에서'는 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동작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이러한 세세한 차이는 평소에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마치 매일 걷던 길이 사실은 다른 길과 미세하게 갈라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한국어의 존댓말과 반말의 미묘한 차이였다. 문장 속에서 존댓말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어미의 변화가 아니라,
그 말투에 담긴 심리적인 거리감과 친밀함 때문이라는 설명을 읽었을 때, 내가 평소에 느끼던 불명확한 감정들이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아, 그래서 이 표현이 이렇게 쓰이는 거였구나."
그렇게 문법책을 읽으며, 내가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표현들이 사실은 꽤나 복잡한 규칙과 원리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이 차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고민이 이어졌다. 단순히 문법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문법책에 있는 설명을 내가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면,
그 설명을 다시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야 했다. 나는 책 속에 있는 예문을 가지고 수업에서 쉽게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흔히 혼동하는 표현들을 중심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도록, 나는 그날 이후로 매일 저녁 문법책을 읽고 새로운 설명을 준비했다.
Epilogue
한국어를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가 아닌 '왜'를 마음에 품고 있어야만
더 높은 곳을 갈 수 있을 거라는 것도 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