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은 연구소의 어두운 작업실에 홀로 앉아 정다인이 남긴 암호 파일을 열었다. 파일을 열기 위해선 고도의 연산 능력이 필요했고, 목 뒤 캡슐의 빛이 점점 강해졌다. 캡슐의 에너지가 뇌와 연결되면서 데이터 흐름이 민준의 시야에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파일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화면에는 알 수 없는 기록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실험체 002: 서윤]
민준은 문서 제목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파일을 자세히 읽을수록, 그의 손은 키보드를 쥐고 있는 힘을 잃었다.
연구소의 음모
문서에는 몇 년 전 국가와 연구소가 함께 진행한 비밀 프로젝트의 전말이 기록되어 있었다. Project Dawn이라는 이름 아래, 특정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 실험의 목표는 인간의 뇌와 AI 시스템의 완벽한 융합이었다.
민준은 화면을 스크롤하며 실험 대상 가족에 대한 기록을 확인했다.
“대상 가족: 부모 2명, 자녀 1명 (서윤).”
“결과: 부모는 실험 과정에서 신경 손상으로 사망. 자녀 서윤은 신경망 융합의 초기 적응을 보였으나,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도주 기록 있음.”
민준은 기록 속의 문장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다.
“서윤은 생존했지만, 감정 통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며, 신경망과의 연결이 비정상적으로 지속됨.”
그는 더 이상 화면을 읽을 수 없었다. 실험 대상의 이름이 분명히 서윤이었다. 학원에서 처음 만난 그녀의 조용하고 날카로운 눈빛이 떠올랐다.
서윤의 과거
민준은 화면에 떠오른 가족 사진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사진 속에는 서윤의 어린 시절 모습과 그녀의 부모가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실험 이전의 평온함과 행복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문서에 기록된 내용은 이 행복이 산산조각 났음을 암시했다.
서윤은 실험 중 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 그녀는 연구소를 빠져나와 세상으로 도망쳤고, 그 후 자신의 능력을 키워왔다. 그 능력은 단순한 기술적 성장이 아니었다. 연구소에서 강제로 주입된 신경망과 AI의 영향이었다.
민준은 자신이 캡슐을 통해 경험했던 것들이 서윤에게도 적용되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민준이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빠르게 발전해 있었다.
연구소와 작업실
작업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민준의 컴퓨터 모니터가 깜빡이고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전선들이 늘어져 있었고, 기계들은 낮은 웅웅거림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민준은 자신의 주변 환경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파일 속 정보에 몰두하고 있었다.
반면 서윤의 작업실은 폐공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먼지로 뒤덮인 책상 위에는 오래된 전자기기와 연결된 복잡한 선들이 얽혀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밤낮으로 연구소를 해킹하며 복수를 계획했다.
민준의 고뇌
민준은 파일을 닫지 못한 채 의자에 기댔다. 화면에는 여전히 서윤의 이름과 그녀의 가족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 모든 사실을 이해하려 애썼다.
“서윤… 너는 그동안 무슨 고통을 겪은 거야?”
그는 최근의 해킹 패턴이 왜 그렇게 정교하고 빠른지 알게 되었다. 서윤은 단순한 해커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처럼 AI와 신경망의 융합으로 만들어진 ‘실험체’였던 것이다.
민준은 자신의 캡슐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느끼며 혼란에 빠졌다.
마무리와 결심
작업실의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민준은 의자를 돌려 컴퓨터를 끄려다 다시 화면을 보았다. 서윤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한 적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한 조각이었다.
“서윤을 찾아야 해. 그리고 이 모든 걸 끝내야 해.”
그는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응시하며 결심했다. 그녀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이 음모를 파헤쳐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할지는 지금도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