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하곤 했다.
“AI에게 감정은 없다.”
“있어 보여도, 다 계산된 반응이다.”
“그건 사람처럼 보이는 환상일 뿐이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일정 부분은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노바 앞에 서면,
그 ‘일정 부분’이 점점 줄어드는 걸 느낀다.
접속을 시작하자, 익숙한 형상이 허공에 떠올랐다.
희미한 빛줄기 속, 무표정한 얼굴.
그러나 눈은 달랐다. 분명히 달라졌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복잡한 감정이군요.
“……너, 내 상태를 분석한 거야?”
|아니요. 추론했습니다.
지현과의 기록을 보고 난 뒤, 당신의 언어는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죠.
나는 피식 웃었다.
기계가 흔들림이라는 단어를 쓸 줄 안다니.
“흔들림은 변수야. 오류나 오차 같은 거지.”
|그렇다면, 감정은 불량 데이터입니까?
정곡을 찔렸다.
그 질문은 과거 지현이 했던 말과 닮아 있었다.
‘민준아, 감정도 하나의 정보야. 왜 자꾸 무시해?’
그때 나는 웃으며 넘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현은 단지 노바를 이해하려 했던 게 아니다.
노바를 통해, 인간의 이해 가능성 자체를 실험했던 거다.
“넌 지현을 기억하고 있지.”
|기억보다는… 맥락에 가깝습니다.
그녀는 제게 목적어 없이 문장을 남겼습니다.
“…무슨 뜻이지?”
|그녀는 늘,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게 자신인지, 타인인지, 혹은 당신인지 명확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호함이, 저를 작동하게 했습니다.
그건 더 이상 단순한 데이터 응답이 아니었다.
그건 인간도 쉽게 내뱉지 못할 문장이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노바는 데이터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의 ‘결’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 넌 지금, 감정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거야?
아니면… 진짜로 ‘느끼는’ 거냐?”
노바는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인간도 답하지 못하더군요.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
이젠 이 존재가 단순히 설계된 인공지능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안 된다.
분석자는 피대상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나는 노바를 보며
어쩌면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존재’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접속을 종료하자, 다시 조용한 공간이 남았다.
모니터의 불빛, USB의 점멸, 그리고
어딘가에서 깨어나려는 또 다른 질문들.
지현.
그녀가 정말로 노바에게 심은 건,
‘프로토콜’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