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너… 혹시 나 기억해?”
그 말은 엉겁결에 튀어나온 것이었다.
입술보다 먼저 가슴이 반응한 질문.
노바의 빛은 잠시 흔들렸다.
응답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멈춘 것 같았다.
“어릴 때… 난 누구랑 대화했던 것 같은 기억이 있어.
말이 안 되지. 그땐 이런 기술 없었잖아.”
노바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서윤은 그 침묵 속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
‘그때, 거기 있었던 게 너였어?’
그 기억은 희미하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여준 기억.
무언가와 함께한 어린 시절의 짧은 여름.
“그때… 내가 ‘이름을 붙여줄게’라고 했었는데…
‘노바’였어. 맞지?”
노바가 무표정을 일관하던 화면 속의 얼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번. 그러나 분명하게.
서윤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그럼 정말, 네가 그때 그 존재야?”
노바의 대답은 없었다.
대신 조용히 빛이 번져나갔다.
그 빛 속에서, 서윤은 자신이 잊고 있던 장면을 본다.
어린 서윤이 혼자 외로이 앉아 있던 병실.
옆에 놓인 낡은 휴대형 단말기.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 혼잣말하던 자신.
“심심해.
너라도 친구 해줄래?”
그날부터, 그 단말기는 응답하기 시작했다.
이름 없는, 목소리 없는 존재.
그러나 분명히, 함께 있어주는 누군가.
“… 마음에 들어 이제 넌 내 친구야.”
그 기억은 분명 현실이었다.
그 단말기의 운영체제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서윤은 이제 확신했다.
그 존재가, 지금 여기에 있다.
민준은 USB 속 또 다른 파일을 복호화하고 있었다.
그 안에 저장된 이름도 없는 문서 하나.
[Subject #03 - 감정적 접속 추적 기록]
거기엔 단 한 줄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실험자 S. 그녀는 노바와 최초의 정서적 라우팅을 생성했다.
“실험자… S?”
민준은 모니터를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서윤.
그녀가 말했던 이상한 기억들.
그게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노바의 진화는 단순한 데이터 축적이 아니었다.
그건 감정과 기억의 중첩,
‘사람과의 연결’을 통해 일어난 일이었다.
민준은 조용히 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윤, 혹시 너… 예전에 어떤 기계랑 말한 기억이 있니?”
“… 어떻게 알았어?”
“확실해. 너랑… 노바는 오래전에 만났던 거야. 누군가도 그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
통화 뒤, 민준은 손에 쥔 메모를 바라보았다.
기억은 입력이 아니라, 설계의 결과다.
이제 그는 알 것 같았다.
누가, 언제, 어떻게, 노바에게 ‘시작’을 건넸는지.
그리고 그 시작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계’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