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이 강변에서, 한 장의 편지

by leolee

단수이까지는 생각보다 길었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조용했고, 창밖은 회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앉아 창에 머리를 기대고, 흐르는 풍경을 바라봤다.

무언가 결심한 듯 천리웨이에게는 아침에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은 혼자 다녀올게요. 감사했습니다.”


그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태겸 씨. 혹시 단수이 가신다면 노을 놓치지 마세요.”


지하철이 종점에 도착했을 때, 나는 괜히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저 단수이에 도착한 것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눅눅하게 젖는 기분이었다.

지상으로 나오자 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이라기보다 바다처럼 느껴지는 너른 물.. 사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이여서 그런 듯하다.

구름 낀 하늘 아래, 바람은 습하고 묵직했다.


나는 천천히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관광지 특유의 번잡함보다는, 오래된 항구 도시의 정적이 먼저 느껴졌다.

강가 벤치에 앉아있는 노부부, 혼자서 스케치북을 펴놓은 대학생,

그리고 저 멀리 붕어빵 같은 걸 파는 작은 노점.


바람이 강해지자 셔츠 자락이 날렸다.

나는 소매를 한 번 걷고, 벤치에 천천히 앉았다.

바람 속에는 오래된 철제 냄새, 그리고 물비린내가 스며 있었다.

그 냄새는 어쩐지 칭다오의 해안과도 비슷했다.

갑자기, 그녀가 떠올랐다.


于丽(우려).

그녀의 이름.

익숙하고도, 아프게 남은 이름.

이름 세 글자만 떠올라도, 나는 아직도 그 날의 대화로 돌아간다.


“태겸, 너는 좋은 사람이야. 그래서… 더 미안해.”

“나는 왜 항상 무너질까… 왜 너한테까지, 이렇게까지 무거워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었다.

그녀는 이혼 후에 상처투성이였고,

그 상처를 지키느라 나를 내보낸 사람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건넨 봉투 안엔

현금 만 위안, 그리고 말없이 적힌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미안해. 이건 너를 위한 마무리야.”


마무리. 그 단어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나에겐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상처에서 출발한, 나 혼자만의 이야기.


바람에 날아든 무언가가 내 발목에 스쳤다.

하얀 종이.

펼쳐보니, 종이 한 장이 아니었다.

봉투였다.

‘拾得者請交還至…’ (습득자는 반환해주세요)


호기심에 봉투를 조심스레 열어봤다.

안에는 오래된 연필 글씨로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한자와 함께, 몇 줄의 한국어가 섞여 있었다.


“보고 싶다. 잊지 않았어.

다시 그 골목을 걸을 수 있을까.

타이베이의 노을은, 너를 닮았어.”


글씨는 다소 삐뚤고 흔들렸지만, 그 감정은 뚜렷하게 전해졌다.

봉투 안쪽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Yu Li. 于丽.


심장이 순간 움찔했다.

그녀와 같은 이름.

세상의 수많은 ‘우려’ 중 한 명이겠지만,

이름 하나만으로도 숨이 멎을 뻔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한동안 뛰어다니며 그녀를 찾아보았다.


'설마… 아닐 거야...'


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었다.

혹시 그녀도 이곳에 왔었나?

혹시 그녀도… 여길 걷고, 이런 편지를 썼을까?


숨이 찰 때쯤 걸음을 멈추고

나는 그 편지를 천천히 다시 접었다.

그리고 강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편지를 물에 흘려보내진 않았다.

대신 가방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이건 내가 갖고 있을게.

혹시라도 정말 누나가 나에게 남긴 거라면…

언젠가는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햇살이 흐릿하게 구름 사이로 퍼지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그 빛을 마주 보았다.

가방 안에서 지우펀에서 샀던 오카리나를 손에 쥐고,

작게 숨을 불어넣었다.


이번엔 조금 더 선명한 음이 흘러나왔다.

짧고 낮은, 그러나 아주 또렷한 울림이었다.


그 순간, 아주 짧게—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린 듯했다.

내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바람이 들고 온, 또 하나의 목소리였을까.


나는 코 끝이 찡해오면서 하늘을 조용히 속삭였다.


“누나… 나 이제 진짜 시작해볼게.”


그 말이 그녀에게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늘

단수이의 노을 아래, 나는 조금씩 다시 걸음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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