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존재

by leolee


늦은 오후였다. 퇴근길의 사람들로 거리는 묘하게 붐비면서도, 바다 쪽으로는 고요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푸산완의 해안 도로를 따라 작은 카페가 줄지어 있었고, 우리는 늘 그렇듯 그중 한 곳, 해가 기울 때 잘 보이는 자리를 골랐다. 유리창에 비친 노을빛이 테이블 위의 커피잔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리란은 오늘도 늦게 도착했다. 회사 일 때문이라며 짧게 웃었지만, 그 웃음이 어쩐지 피곤하게 보였다. 나는 그 표정을 잘 안다. 매일 반복되는 퇴근 후의 만남, 늘 비슷한 대화. 그녀는 일 얘기, 나는 학교 얘기.

하지만 오늘은 문득, 이상하게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나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을까?’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서늘해졌다.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다. 그러나 항상 늦은 오후, 혹은 퇴근 이후였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커피 한 잔, 혹은 간단한 식사.

함께 여행을 간 적도, 친구들과 어울린 적도 없었다.

그건,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01-2.png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란, 혹시… 나에 대해서 누구한테 말한 적 있어?”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컵을 내려놓았다.

“무슨 말이야?”


“그냥… 네 친구들이나 동료들한테. 내가 있다는 걸 말한 적이 있냐고.”


리란은 시선을 피했다.

창문 너머로 사람들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고, 커피 향이 묘하게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런 얘기를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leolee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13년 차 한국어 강사의 개인적인 에세이입니다. *.멤버십 글에서는 13년간 중국인 대상 한국어 교육법과 중국학생들의 한국에 대한 사상에 관한 집필을 하겠습니다.

10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