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길었다.
유난히 길고, 이유 없이 마음이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리란과의 짧은 대화를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마음은 고요했다. 아이들이 웃던 얼굴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고, 그 미소가 오늘 하루의 피로를 다 씻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노트를 덮고 불을 끄자, 방 안의 정적은 마치 내 마음의 안쪽 어둠을 확대하듯 번져갔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고, 바다의 냄새도 희미했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이 눈에 띄었다.
한참 동안 읽지 않았던 대화창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내 메시지는 ‘나 요즘 칭다오에서 지내고 있어. 애들 잘 있지?’였고, 그 뒤로 대화는 쉴 새 없이 이어져 있었다.
‘야, 집 계약했어.’
‘이번에 회사에서 승진했어.’
‘차 바꾸려고 하는데, SUV가 나을까 세단이 나을까?’
단 몇 줄의 대화들이, 묘하게 나를 조용히 찔렀다.
나는 잠시 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태겸, 요즘 어때?’
누군가 나에게 남긴 오래된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문장 하나가 유난히 반짝였다.
나는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뭐, 여전히 학생들 가르치고, 그냥… 지내지.’
그 짧은 문장을 쓰는 데 몇 분이 걸렸다.
‘그냥 지내지.’ — 그 안에는 수많은 뜻이 숨어 있었다.
가르친다는 건 여전히 좋아하지만, 돈은 늘 빠듯하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그래도 버티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문장을 보며, 문득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대화창은 곧 환하게 불이 켜졌다.
‘아직 칭다오지?’
‘대단하다, 거기서 그렇게 오래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아.’
‘나도 이제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어.’
‘다들 한 번 모여야 되는데, 언제 한국 들어와?’
그들의 말 하나하나는 분명 따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온기 속에서 멀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들은 이미 집을 가지고, 차를 가지고,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내 집??
여전히 낯선 도시의 월세방에서, 내 이름이 적힌 부동산 월세 계약서 한 장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불을 켜고 거울을 봤다.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어디선가부터 낯설게 보였다.
눈 옆으로 희미하게 늘어난 주름, 말없이 굳어진 입술.
‘나는 뭘 위해 여기 있는 걸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자라났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말한다.
“언어는 꿈을 향한 다리야.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 배우는 거지.”
하지만 문득 생각했다.
혹시, 이미 다리가 끝난 곳에서 아직 다리 위에 있다고 착각하며 서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